(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③국민연금 한승양 팀장(상)

  • 등록 2001-03-27 오전 11:53:00

    수정 2001-03-27 오전 11:53:00

[edaily] 국민연금은 채권시장의 “큰 손”중에서도 가장 큰 손이다. 국민연금의 채권투자 규모는 23조5000억원. 우리나라 전체 채권시장 규모를 300조원이라고 할 때 7.7%에 달하는 규모다. 국민연금의 위력은 현재보다 미래에 있다. 국민연금 펀드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국민연금에서 채권투자를 담당하는 한승양 팀장이다. 그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시절 채권을 알게 된 이후 운용역을 거쳐 채권팀장까지 채권시장의 모든 영역에서 경험을 쌓은 백전노장이다. 국내 최대의 펀드인 국민연금 채권운용을 맡으면서 시장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투명한 원칙”과 “새로운 투자기법”을 부르짖는 정통 채권맨이다. 국민연금의 존재는 채권시장이 좋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지난해 채권수익률이 급락, 대부분의 채권펀드가 “이보다 좋을 순 없다”며 호황을 구가할 때 국민연금은 예보채 입찰에도 참여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연금에 들어오는 자금의 성격상 예보채를 투자할 때가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만기가 1년인 투신권 펀드에서도 5년짜리 예보채를 겁없이 사들였지만 국민연금은 수익률이 맞지 않으면 사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나갔다. 올들어 채권수익률이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예보채 입찰이 어려워지자 국민연금이 움직였다. 적정 수익률이 됐다는 생각이 든 것. 국민연금의 “예보채 입찰에 관심이 있다”는 말 한마디에 예보채는 “유찰” 위기에서 벗어났다. 한승양 팀장은 “시장에서 은근히 국민연금이 어떤 역할을 해주길 바라지만 연기금이 해야할 일은 따로있다”며 “외국 유수의 연기금 펀드처럼 훌륭한 연기금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수익성과 투명성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교보증권 채권팀장 자리를 그만두고 98년 국민연금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금운용 담당자를 공채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한 것인데 12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쳤다. 월급은 절반으로 줄어들었지만 한 팀장은 “펀드다운 펀드를 운용해보겠다”는 의욕으로 충만했다. 민간인으로서 준공무원 조직에 들어가 갈등이 없지 않았지만 “최고의 펀드, 최고의 펀드매니저”라는 꿈을 이뤄가는 재미로 버텨나갔다. “토요일, 일요일이 가장 힘든 날입니다. 할 일이 없거든요.” 주말 여유시간마저 “일”을 하고 싶어하는 한 팀장의 채권철학을 들어봤다.(인터뷰 하편 기사 하단에 약력참조) -격동의 80년에 대학에 들어가셨군요 ▲제가 좀 늦게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원래는 자연계열이었습니다. 아버님께서 학자이신데 일제시대, 한국전쟁, 군사정권 등 암울한 시절들을 거치시면서 자식들은 정치나 사회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직업을 택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과, 특히 의대를 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 적성과는 상관없이 고2때 이과를 선택하고 서울대 치대에 지원했었습니다. 그러다 “난 도저히 자연계열은 적성에 맞지 않는다. 문과로 다시 시험을 보겠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시험을 봤죠. 그리고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합격한 후 2학년 전공결정 때 국제경제학과를 선택한 겁니다. 격동의 80학번, 자본주의의 최첨단 증권시장에 입문 -80학번이시면 공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절은 아니었을 텐데요. ▲그렇죠. 그 때 지금 한창 잘 나가시는 유시민씨, 심재철 의원등의 주도 하에 데모도 많이 했어요. 학교입학 후 두 달만에 5.18이 발생해서 10월까지 놀았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으니까요. -공부하면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은 있습니까. ▲당시 제가 다니던 국제경제학과(당시 무역학과)는 학교 내에서 데모를 제일 많이 하던 곳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운동권 활동을 열성적으로 했던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그 쪽 관련책을 곁눈질해서 많이 보게 됐어요. 지금 부총리이신 한완상 교수, 이영희 교수의 책을 많이 읽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80년대 대학을 다니신 분이 자본주의의 최첨단이라고 할 수 있는 증권시장에 입문한 것이 독특하다면 독특한데요. ▲당시에는 채권이 뭔지도 몰랐어요. 80년대 중반이후 주식시장이 부상하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가끔 80년대의 비극이라고도 표현하는데 그 때 수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증권회사가 좋다니까 무작정 몰렸습니다. 그 후에 일이 잘 풀리지 않은 사람도 참 많았거든요. -증권회사를 택한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일단은 그곳이 자본주의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었고 또 금융의 증권화가 도래하는 시기였으니까요. 막 간접금융에서 직접금융시대로 넘어가려는 시대였지만 그때 한국의 직접금융이 너무 초기 단계라서 이 분야는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쌍용투자증권 부설 쌍용경제연구소에서 2년 반 정도 근무했습니다. -애널리스트로 말입니까. ▲네. 그런데 그 때는 애널리스트와 이코노미스트 등에 대해 뚜렷한 개념이 없었어요. 저는 증권연구실에서 금융시장 전반에 관한 연구, 경제분석 같은 업무를 담당했죠.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스트레티지스트였죠. 거기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한 2년 반 하다보니 지겹더라구요. 마침 그 무렵 채권에 눈을 떴어요. 이거다 생각하고 연구소장님께 채권팀으로 보내달라고 한달 정도 계속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채권계에 발을 내딛은 겁니다. ”채권시장처럼 가능성이 큰 시장에 몸을 바치고 싶었다” -채권팀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채권시장은 주식시장과 더불어 자본시장을 이끄는 수레바퀴중 하나이면서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큽니다. 그런데 주식시장에 비하여 너무 낙후되어 있었어요. 미국이나 유럽시장을 보니 채권시장이나 채권매니저들의 위력이 대단하더라구요. 이 낙후된 분야에 몸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그럼 교보증권으로 옮기면서 채권을 시작한 겁니까. ▲아닙니다. 쌍용경제연구소에서 쌍용투자증권 채권부로 옮겨 3년 정도 근무했죠. 거기서 참 많이 배웠습니다. 특히 3개월 정도 미국 월스트리트에 OJT를 다녀왔는데 그걸 계기로 정말 여러 가지를 배웠고 채권시장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하게 됐어요. 채권을 계속하고 싶었는데 회사방침이 근무순환 방침이어서 영업부로 발령이 난 게 계기가 되어 교보로 옮겼고 거기에서 채권팀장을 맡았죠. -채권시장 경력이 한 11년은 되시는 군요. 듣기로는 국민연금이 처음으로 운용전문인력을 공채할 때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입사하셨다는데. ▲IMF 외환위기가 막 발생한 직후인 98년 2월에 공고가 났습니다. 그 때는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서 국민연금에서 기금운용전문가 채용공고를 낸 거죠. -경쟁률은 어땠습니까? 운용팀장을 뽑는 것이었나요? ▲120명정도 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운용팀장이 아니라 매니저, 즉 운용역을 뽑는 것이었습니다. ”채권시장의 2세대로서 진정한 펀드운용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국민연금으로 옮기시면서 월급도 많이 줄었을 텐데. 자리를 옮기신 이유는. ▲급여는 정확히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증권회사에서는 운용의 한계를 느꼈어요. 증권회사에서는 운용이라는 것이 단기 트레이딩이 전부였는데 이게 진정한 의미의 운용은 아니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증권회사 사람들의 꿈은 진정한 운용을 해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진국처럼 자신의 펀드를 가지고 전략과 포트폴리오를 짜서 운용하는 것 말이죠. 또한가지는 그동안 나름대로 갈고 닦았던 채권관련지식을 공익을 위하여 바치고 싶었어요 . 제가 채권을 시작하기 전에 그 분야에서 일하시던 분들이 바로 한국 채권시장의 1세대시죠. 저는 2세대쯤 되겠죠. 그 당시 운용은 주먹구구식이었어요. 운용이라고 해야 호가, 매매단가계산, 가격체결 그 정도가 전부여서 단가계산하는 것이 커다란 노하우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단가계산하는 법도 가르쳐주지 않으려는 분위기였죠. -계산법을 안 가르쳐준다? ▲네. 채권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후에 계산프로그램이 생겼죠. 샤프계산기인가? 그 계산기에 수식을 입력해서 마음대로 계산하는 선배들이 정말 부럽더군요. 그런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게 언제입니까? ▲80년대 후반입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증권시장이 펀더멘털을 중시하지도 않았고, 금리를 예측해서 채권을 사고 판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국고채도 없었고 그나마 회사채가 거래됐지만 대개 발행시장에서 소화된 게 대부분이었어요. 무보증사채도 없어서 회사채종류가 은행보증/기타보증 두 종류만 있어서 발행사의 신용도와 관계없이 호가가 두가지 밖에 없었어요. 은행이나 투신 같은 운용기관은 바이 앤 홀드(buy and hold:만기보유) 전략만 사용했구요. 채권을 매집해서 편입하기만 해놓는 시스템말입니다. 그런 것만 보고 배우다가 미국에 갔더니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대단했죠. 운용툴이 좍 펼쳐져 있고 프로그램이 저절로 움직이는데다 포지션을 가지고 매매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포지션을 가지고 운용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의 트레이딩이라고 하는 기법은 증권회사에서 맨 먼저 도입한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IMF 외환위기이후 채권시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어요. 시가평가제도입, 인터넷기법의 활용등으로… -국민연금에 입사하고는 몇 분이서 같이 운용을 했나요. ▲1년간은 저 혼자 했습니다. 그 후 반년간 둘이 하다가 99년 11월에 기금운용본부가 생겨 자산운용조직으로 면모를 갖추었고. 지금은 채권운용팀에 5명이 있습니다.(미들, 백오피스 제외) 상반기중 4-5명을 충원할 계획입니다. 국민연금 입사 초기, 인프라 구축에 주력 -초기 홀로 운용할 때는 지금처럼 딜을 활발하게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 당시에는 채권운용에 배정된 자금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실제 딜보다는 운용관련 인프라 구축에 힘을 많이 쏟았어요. 무보증회사채 매입근거를 마련하고 선진운용기법도 도입하고 그전에는 매입만 있었어요. 제가 운용을 맡으면서 처음 매도를 한 거죠. 결제방식도 개선하고 운용관련 규정도 만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운용을 하게 된 것은 기금운용본부 출범 이후입니다. - 그 당시 채권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처음에 제가 맡았을 때는 3조5000억이었고 본부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6조5000억이었습니다. 지금이 23조5000억이니까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익성, 안정성, 직접투자의 원칙 -기금운용이 운용본부로 통합되면서 많은 부분이 채권으로 바뀐거군요. ▲본부를 설립하면서 내건 운용방침은 수익성, 안정성이었습니다. 같은 fixed income 이라면 가장 수익이 높고 안정한 방법을 하겠다는 거죠. 그러면 예금을 들 이유가 없습니다. 요즘 국고채 금리가 떨어져서 좀 그렇지만 당시에는 예금과 채권의 금리차가 엄청났어요. 또 우리는 채권의 경우 간접투자는 안하고 직접투자만 합니다. 공사채형 수익증권과 은행금전신탁을 안하는 이유는 시가평가제하에서 시장위험을 무릅쓰면서 굳이 수수료를 줘가면서까지 들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이건 저희 뿐 아니라 캘퍼스(CalPERS) 같은 해외유명 팬션(연금)펀드들이 동일합니다. 사족이지만 지난 2년간 국민연금의 채권운용수익률이 국내에서 제일 높습니다. 부실채권도 전혀 없구요 국민연금 포트폴리오 “국고채 55%, 회사채 45%” 우량 ABS에 투자 -채권운용규모가 23조나 되는데 그 포트폴리오가 어떤지 좀 알려주시죠 ▲절대치로 봐서 현재의 23조는 그렇게 많은 돈이 아닙니다. 보험료수입과 운용수익이 급증하고 있고 올해부터는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예탁되던 자금이 없어져 국민연금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돼 있어요. 국민연금의 성격상 그중 상당부분은 채권에 투자할 수밖에 없고 현재는 국공채에 55%를, 회사채에 45%를 투자하고 있습니다. 회사채중 절반이상이 우량ABS이구요. -회사채의 투자등급은 어디까지입니까? ▲실질적으로 A등급이상에만 투자합니다. 규정상으로는 BBB등급에도 투자할 수 있습니다. 내부기금운용규정에 의하면 예외투자로 투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사장님의 승인을 받으면 BBB등급 회사채 투자가 가능합니다. 저희가 보수적으로 A급 이상에만 투자한 결과 부실채권이 전혀 없게 된거죠 “가장 중요한 투자전략은 저평가 채권을 발굴하고 고평가 채권을 매도하는 것” -그런 거대규모의 자금을 움직이면서 생각하신 큰 밑그림은 뭡니까. ▲기본적인 운용방침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운용수익을 올리는 겁니다.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원칙은 디폴트 프리(default free)이구요. 그 원칙 하에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짜서 여러 가지 전략을 구사하고 있죠. 그 중 가장 중요한 전략은 저평가채권을 발굴하여 매입하고 고평가채권을 매도하는 것입니다. 이 점이 다른 금융기관의 운용전략과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단순한 의미의 딜링은 아니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사실 저희는 금리의 변동에 따른 단기트레이딩을 그다지 많이 하지 않습니다. 물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터닝포인트에는 과감히 매매도 합니다. 지난 2월의 금리 급락기에는 많이 팔았어요. ABS 6조원 보유, 수익성 측면에서 주목하는 채권 -국민연금에서 주목하고 있는 채권은 어떤 것인가요? ▲저희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채권은 ABS 입니다. 우리나라 채권 중 ABS가 안정성과 수익성이 가장 높아요. 하지만 유동성이 낮아서 거래가 잘 안되니까 그동안 우리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죠. 기금의 성격상 장기보유전략을 지향하는 국민연금으로서는 ABS가 가장 좋은 상품이지요. 기억에 남는 게 99년말부터 우리나라 시장에서 ABS가 본격적으로 발행되면서 여러분들을 설득하여 99년 12월에 규정을 바꾸고 그달에 처음으로 5000억을 투자한 것입니다. 초기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결과 낮은 가격에 매입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약 6조원 정도의 ABS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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