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서두에는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나오는 구절의 한 부분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입 베어 문 순간, 나는 내 몸에 뭔가 다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떨었다..... 이제야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콩브레의 모든 일들이 뚜렷한 형태로 내 찻잔에서 배어 나온 것이다.”
미각은 과거의 기억 속에 있있던 지난 시간을 되돌리게 하고 그 시절 행복했던 시간으로 감정이입을 시킨다. 단순히 미각에 의존한 것이 아닌 마들렌을 보는 순간부터 감정이입이 시작됨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색채 자극이라는 것이 하나의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닌 다른 감정도 동시에 수반하고 있는 공감각적인 작용을 하기에 시각, 미각, 후각 등이 동시에 작용하여 지나간 시간 속에 빠져들게 한 것이다.
과거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수업 첫시간에는 항상 색채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진행하곤 하였는데,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색, 그리고 좋아하는 색, 싫어하는 색에 대한 조사를 하게 하고 그 이유까지 자세하게 파악해 제출하고 발표하도록 하였던 기억이 있다.
사실 이 과제의 목적은 디자이너로써 과거 경험이나 한가지 색에 집착하여 객관성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는 목적이 크다. 이는 다양한 클라이언트들 그리고 다양한 적용 분야들에 따라 그 색은 내 취향이나 선호도가 아닌 철저히 객관성을 나타내고 상품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에바헬러는 ‘색의 유혹’ 서문에서 “색과 감정의 관계는 우연이나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라, 일생 동안 쌓아가는 일반적인 경험, 어린 시절부터 언어와 사고에 깊이 뿌리 내린 경험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색채 심리는 사람의 마음과 색채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즉, 음악으로 슬픔이나 기쁨을 표현하는 것처럼 색을 통해서도 우리의 심리를 표현하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과연 어떤 방식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일까? 에바헬러가 말한 것처럼 색은 경험의 산물로써 소통의 코드로 작용한다. 이는 앞의 색의 기억을 통해서 나타나는 자기의 감정과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환경 안에서 체화되는 다양한 경험들은 사람과 사람, 나자신과 연결된 복수의 회로에 의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색을 통한 감정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여러 테스트 방식 중 객관성을 인정받고 현재까지 활용되는 막스 뤼셔(1923~)는 8가지 기본 색상을 통해 숨겨진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테스트는 조절심리학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1949년 공개된 이후 29개의 언어로 번역돼 색에 대한 비밀을 알고자 하는 이들의 호기심을 일부 해소시켜 주었다.
이 색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순서대로 임의 나열하고 나열된 순서에 의거해 두 개씩 묶어 4그룹으로 완성한다. 완성된 그룹의 색 구성은 1·2번의 색은 삶의 목표를, 3·4번의 색은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삶을 상황을 5·6번의 현재 억압받는 잠재적인 성향을 상징 7·8번의 색은 완전히 거부된 감정들을 상징하고 있다.
해석은 각 색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에 기초하는데 △파랑-만족감, 조화 △녹색-자존심, 고집, 관찰력 △빨강-자신감, 적극성 △노랑-내면의 자유, 낙관주의, 진취적 △회색-중립 △갈색-육체적 욕구, 감각적특성, 게으름 △검정-공격성, 부정 △보라-허영심, 자아중심적 태도를 상징한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언어를 통해 입으로 말하거나 글이나, 그림을 통해 말하거나 몸짓으로 말하거나 앙리 마티스처럼 음악을 댄스처럼 색으로 표현하여 마치 3차원의 입체성을 평면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멀티랭귀지처럼 말이다. 결국 사람과의 관계성에 있어 효과적인 소통의 방법이 다분히 한가지가 아닌 여러 매체를 통해서 가능하며, 그 안에서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의 소통의 방식에 대한 것임을 직시하여야 한다. 현실을 회피하고자 벌이는 무수히 많은 범죄는 작금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서투른 방식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