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상 25시)오바마와 한미 FTA 협상

  • 등록 2008-11-12 오전 10:09:14

    수정 2008-11-12 오전 10:09:14

[이데일리 박상기 칼럼니스트]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대선 기간 내내 한미 양국간 자동차 부문 무역불균형 문제를 여러 차례 공식 언급하며 한미 FTA 재협상의 필요성을 거론, 쇠고기 재협상 때보다 한층 더 심각한 한미간 갈등 증대 우려를 낳았었다.

GM을 비롯한 미국 `BIG 3` 자동차 메이커들의 경영악화가 최근의 경제 위기와 맞물린 상황에서, 유력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오바마가 자동차 부문 불공정 교역 협정내용을 트집잡으며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을 일관되게 피력하여 “한미 FTA 재협상”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이제 막 인수위원회를 가동한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한 핵심 측근이, 최근 우리 통상 교섭 책임자에게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토록 전화로 요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미 FTA의 향방에 무성한 예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동안 한미 FTA 재협상 여부 논란은 여당과 야당간의 국회 공방으로 이어져, 조속한 국회 비준을 통해 미국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는 여당과 이 참에 아예 잘못된 한미 FTA 협정을 재협상을 통해 뜯어 고쳐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이 대두되어 자칫 또 한번의 국론 분열 조짐까지 보이는 등 사태의 추이가 심상찮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전해진 이 뜻밖의 비준 동의 요청 소식에 여당의 주장이 다소 힘이 실리는 양상이다. 이유인 즉, 당초 미국의 신 정부 및 의회의 비준 동의 의지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비준 동의를 해 놓고 미국측을 압박한다는 전략은 미국 의회내의 냉랭한 비준 거부 분위기가 알려지면서 설득력을 잃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당과 통상교섭본부의 일관된 선(先) 비준동의를 통한 미국 압박전략은 이제껏 한미 FTA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해 온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의 비준 동의 찬성으로의 입장 급선회로 객관적 타당성을 얻어 국회내 비준동의 반대 세력 압박 및 회유가 한결 손쉬운 상황으로 바뀐 것 같다.

더욱이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국가간 협정인 한미 FTA를 파기함으로써 야기될 수 있는 한국 등 주요 교역국과의 통상 마찰 및 불필요한 외교분쟁으로의 확대는 오바마 당선자가 천명한 “경제위기타개” 및 도하 개발 어젠다(DDA)를 비롯한 여러 나라와의 협정이 추진 중인 상황에서 일단은 피하고 봐야 한다는 상황 논리가 상당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안심하긴 이르다. 아니 문제의 시작은 지금부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우선, 미국 경제 위기 타개책으로 내 놓은 오바마 정권 인수팀의 정책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들어 올 돈은 줄어 드는데 쓸 돈은 폭발적으로 늘어나 있는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이 9월 연설에서 언급한 “사상 초유의 조치가 필요한 유례없는 위기”를 공감한다는 오바마 정부가 내놓은 위기 극복 4대 어젠다의 핵심은 ‘고소득층 증세, 중산층 감세’정책이다. 언뜻 보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획기적인 정책이다. 또한, 세금 감면 등 경기 부양책을 통한 소비 회복, 중산층 구제, 실업 구제, 자동차 등 주요 산업에 대한 직접 지원 확대 등 구체적 실행 방안 역시 상당히 역동적이다. 일면 경제 회복이 가시권에 들어 온 것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주세원인 기업이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재원충당을 위한 막대한 수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해 세원을 충당해 나갈 것이며, 이미 연방 재정 적자규모가 위험 수준을 넘어 신용불량 국가로 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달러라는 기축 통화 발행국이라고는 하나 실물경제가 뒷받침되지 않는 연방 재정 지원의 한계와 잠재된 위험성을 고려한다면, 오바마 정권의 경제 구제 정책의 실효성은 상당히 퇴색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빠른 시일 내에 미국뿐만 아니라 혈관처럼 서로서로의 생명줄이 연결 되어 있는 세계 경제의 조속하고도 건실한 회복과 성장 없이는 오바마 정권의 획기적 정책 역시 자칫 또 하나의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국 얘기는 이 정도로 하고, 그렇다면 이런 정황이 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몇 가지만 살펴 보기로 하자.

우선, 미국 경제 회복을 위한 막대한 재원요구는 결국, 아시아와 중동을 잇는 오일 루트 제공에 대한 부담금 가중, 미국 국채 매도 제한 및 추가 확보, 주한미군으로 대변되는 군사지원 비용의 한국측 부담금 추가증대, 해외 파견 미군 지원 및 대체 협력 부담 증대 및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비용 분담 및 전가가 불가피해 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팍스 아메리카 시스템 유지에 필요한 예산과 자원의 축소는 결국 가장 친미국적 국가와 기업에 우선 배정될 수 밖에 없고, 결국 미국의 요구에 가장 능동적으로 응하는 국가가 아니고선 지금까지의 군사, 외교, 무역 관계 유지가 어렵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의 살림살이 비용을 어떻게든 떠넘길 수 밖에 없게 되고 여기에 불응할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보복조치가 취해 질 수 있음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러한 보복조치 중에서 가장 손쉬운 것이 한때 우리를 비롯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슈퍼 301조로 대표되는 갖가지 국수적 무역제제 조치들일 것이다. 더욱이 한미FTA협상에서 우리측의 수정 및 조정요구가 거의 무시된 채 미국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타결된 무역구제 조항들은 향후 대미 통상 분쟁 발생시 미국의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판단과 조치에 맥없이 무릎 꿇은 채, 자칫 선처만을 바라는 굴욕을 감수할 수 밖에 없도록 제정되어 있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거기다 아직까지 세계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막강한 금융자본과 예전같이는 않으나 아직까지 그 위세가 등등한 IMF, WTO 등의 국제기구를 통한 합법적이고 간접적인 압력 행사의 연계를 감안하면,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으로 자립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 우리나라로선 미국의 이러한 암묵적 통제력에서 벗어나기에 역부족이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구상하고 있는 각종 대내외 정책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앞으로 미국을 상대로 우리가 이제껏 해 온 그 어떤 외교통상협상 보다 더욱더 지난한 협상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런 협상을 준비하고 이끌어갈 인력과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단순히 자동차 수입 관세 사안이 모든 것인 양 근시안적인 태도로 상황을 그릇되게 보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인 대외협상시스템의 체질과 역량을 바로잡고 키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개선안을 정부당국에 제안하고 싶다.

첫째, 행정 관료 및 실무 경험 없는 학자 출신 위주의 비실용적 통상협상팀 및 협의체 구성 원칙을 탈피하여 실무 경제 현장의 탁월한 민간 전문가들을 대거 발탁 및 기용하는 정책을 즉각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이번 오바마 인수위측 인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국은 대부분 실물 경제와 사업에서 잔뼈가 굵고 상당한 업적을 성취한 사람들만이 물망에 오르며 그들 가운데서 도덕적인 인물만을 엄선해 중용하는 걸 볼 수 있다. 순수 관료 출신들은 외교 및 국방 등 특정직에 한정되는 걸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현재와 같이 관료 주도의 협상팀과 시스템으로선, 미국과의 향후 다양한 통상협상에서 결코 실질적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둘째, 지난 촛불 집회가 이끌어 낸 쇠고기 재협상에서 이미 입증 되었듯이 정부의 부족한 대외협상력을 보완 혹은 재고해 주는 바른 소리 언론 및 여론에 대해 전향적 태도 변화를 촉구한다. 결코 우리 국민과 여론은 정부의 적이 아니다. 이들이야 말로 우리 정부와 협상팀이 궁지에 몰렸을 때,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가장 순수한 의도로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가 인정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합법적인 힘을 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모쪼록 초강대국과의 힘겨운 외교협상에서의 마지막 보루는 다름 아닌 우리 국민임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박상기 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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