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분당에서 벤처를 하는 친구가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 동네에 사는 학생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학생에서 몇 가지 주의를 주었다. “아직 작은 회사이고 자리잡은 회사가 아니니 큰 기대는 말아라. 일손은 딸릴 테니 이 일 저 일 가리지 말고 해라, 대신 몇 년간 참고 일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워낙 취업이 급박했던 그 학생은 알았다고 했는데 기분이 찜찜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늦은 시간에 울면서 그 학생이 전화를 했다.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요, 할 일도 너무 많고 힘이 들어요, 비전도 없는 것 같구요.” 참 딱한 일이었다. 전화상으로 달랬는데 다음 날 물어보니 3일만에 회사를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우선 친구에게 미안했다. 말은 안 하지만 “그 학생이 네 제자냐, 학생 한 번 잘 교육시켰더구나” 라고 빈정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학생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었다. “네가 그리는 이상적인 회사는 도대체 어떤 회사냐? 네 맘에 꼭 드는 회사가 있으면 내게 한 번 보여 달라, 힘이 든다고 했는데 세상에 힘이 들지 않는 일이 어디 있느냐, 비전이 없다고 했는데 비전을 회사가 주는 거니, 아니면 네가 찾는 거니…”
한국은 드라마 천국이다. 그만큼 재미있다. 그래서 드라마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직장에 대해 상상을 하게 된다. 멋진 빌딩과 사무실 (그렇게 괜찮은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외제 차에 명품 옷으로 휘감고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친절한 상사와 다정한 동료들과 웃고 떠들면서 전문적인 일을 (주로 기획, 마케팅, 이벤트, 광고 등) 하는… 연구소와 공장에서 밑바닥을 박박 기는 대부분의 직장과는 완전 반대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직장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하고 환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취직하기도 힘들지만 취직하고 들어간 회사의 모습은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회사는 여러분을 재미있게 해 주는 곳도 아니고, 그럴 만큼 여유가 있는 곳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는 곳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다. 좋은 직장은 맘에 들지 않고 자극을 주고 나를 힘들게 하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만약 여러분이 다니는 직장이 재미있어 죽겠다든지, 너무 좋기만 한다든지, 일이 정말 마음에 든다면 그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다. 그럴 리가 없기 때문이다. 원래 일이란 그런 것이다. 노래를 좋아해 가수가 된 사람도 노는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지겨워한다. 일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도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이란 원래 재미없는 겁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지냅니까?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것이 인생 아닙니까?
물론 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노는 것보다 일 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냉정하고 거품 없이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일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일할 때 열심히 하고, 놀 때는 놀라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