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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목사는 일제강점기인 1921년 간도 명동촌에서 독립신문 기자로 일했던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 여사의 3남2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문 목사는 기독교 선교 중심지였던 이곳에서 형 문익환 목사, 윤동주 시인 등과 함께 성장했다. 특히 명동촌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독립운동가 김약연 목사의 영향을 받아 신학자로 성장하면서도 사회적 관심을 잃지 않았다.
문 목사는 1961년 귀국한 뒤 모교인 한국신학대학 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후 1976년 명동성당에서 ‘3.1 민주구국선언문’ 사건으로 투옥돼 2년 가까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석방 후에는 민중운동에 참여했고 동일방직 및 와이에이치(YH) 노조 투쟁을 돕다 다시 투옥되기도 했다.
문 목사는 1991년 미국으로 돌아가 노년을 보내며 성서연구에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아들 창근·태근, 딸 영혜·영미(이한열기념관 학예실장)씨 등이 있다. 빈소는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