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한국제약협회는 1988년부터 써 오던 이름을 ‘제약바이오협회’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합성의약품과 바이오의약품을 아우르는 대표단체로서의 위상을 명확히 하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지만 ‘제약’이라는 명칭을 고수하다가는 ‘전통만 남은 오래된 단체’로 인식될 것을 우려한 협회의 고뇌가 담긴 결정이라는 해석이다. 2000년대 들어 암·자가면역질환 같은 난치성 질환 바이오의약품이 속속 개발되면서 점차 바이오의약품만이 첨단, 최신 의약품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정부도 제약업 지원대책을 논할 때 ‘제약업’ 대신 ‘바이오산업’이란 말을 쓸 정도다.
제약사 “부가가치 높고 기술력 있어야 개발 가능”
제약협회에 따르면 192개 협회 회원사 중 54곳(28%)이 바이오의약품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이미 많은 회원사들이 바이오의약품을 연구 중이거나 생산하고 있는데도 협회 이름이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제약사들이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기술장벽이 높아 부가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영국 시장조사업체인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약 10개 중 휴미라·엔브렐·레미케이드·맙테라(자가면역질환치료제), 란투스(인슐린), 아바스틴(항암제) 등 6개가 바이오의약품이다.
바이오의약품과 합성의약품의 이분법으로 보면 1967년에 세워진 녹십자(006280)는 처음부터 바이오기업이었다. 녹십자는 혈액분획제제, 혈우병치료제, 면역제제, 백신 등 녹십자의 주력제품 모두가 바이오의약품이다. 매출에 비해 R&D에 소극적이라는 평을 듣는 유한양행(000100)은 앱클론, 바이오니아, 테라젠이텍스, 오스코텍 등 바이오기업에 대한 투자나 인수를 통해 그동안의 격차를 만회하고 있다.
문제는 바이오에 대한 적극적 관심은 일부 제약사에 국한됐다는 것이다. 시대 분위기에 편승해 2년전에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뛰어든 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바이오든 합성의약품이든 신약개발은 대규모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는데 ‘바이오가 유행이니 우리도 하자’는 식의 접근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시험삼아 2~3년 해 보고 만족할 결과물이 안 나오면 사업철수 결정이 날 지 누가 아냐”고 말했다.
바이오사 “당장 필요한 총알은 제약업에서 얻어야”
제약협회에 속해 있지 않은 바이오 전문기업 중에는 제약업에 진출한 기업들이 상당수 있다. 비티오제약, 셀트리온제약, 레고켐제약은 각각 표적항암제 전문 연구기업 크리스탈(083790)지노믹스, 바이오시밀러 전문 기업 셀트리온(068270), 항체-약물 복합제 전문기업 레고켐바이오(141080)가 중소제약사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한 케이스다.
바이오 전문기업이 제약사를 인수하는 이유는 매출 확대 전략때문이다. 바이오기업의 경우 대부분 자체 생산시설을 갖추기보다 연구개발을 주력으로 해 기술수출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 보니 투자를 유치해 기업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수출의 경우 수백억~수천억원의 규모로 이뤄지지만 성사되기가 쉽지 않다. 이 경우 합성의약품은 안정적인 매출원이 될 수 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바이오의약품과 합성의약품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 명실상부한 제약전문기업이 될 수 있다”며 “특히 제너릭 의약품은 전세계 시장규모가 430조원에 달할 만큼 크기 때문에 이 시장을 놓치고서는 발전할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