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가 추진한 국토균형발전 전략의 골자는 수도권 진입규제와 행정기관의 지방이전이었다. 하지만 상황논리에 휩쓸리면서 수도권 규제는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행정기관의 지방이전도 시늉만 내는데 그쳤다.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당시 신민당 김대중후보가 대전으로 행정수도를 옮기겠다고 공약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어 1977년 2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울시 연두순시에서 통일 때까지 정부 기능을 수도권 남부지역으로 옮기겠다고 밝혔고, 1977년 말에는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백지계획안(공주시 장기면)을 마련했다.
◇ 박정희 전 대통령 수도이전 추진
박 전 대통령이 수도 이전을 검토한 데는 수도권 과밀 해소와 안보 논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 계획은 백지화됐다.
박 전 대통령은 수도 이전계획과 별도로 과천·대전 등으로 정부기능을 분산하는 계획도 추진해, 1977년 경기 과천에 정부 제2청사·신도시 건설을 결정했다.
과천 정부청사는 1979년 4월 기공식을 가졌고, 1982년 6월부터는 정부부처의 입주가 시작됐다. 하지만 과천은 정부기능의 분산이란 효과보다는 서울의 광역화만 초래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행정기관 이전과 함께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기 위한 직·간접 규제도 추진했다. 우선 1971년 서울 인구억제책 및 개발 규제를 목적으로 개발제한구역이 지정됐고, 1973년 기업 본사 및 정부투자기관 지방이전 시책, 대도시 인구집중 방지대책 등이 나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 이후 역대 정부는 다양한 지역균형 발전정책들을 폈지만 규제와 완화를 반복하면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5공화국 때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제정하고, 수도권 규제범위를 경기·인천까지 확대해 수도권 억제정책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82년 88올림픽을 서울에 유치한 뒤 이 같은 정책을 완화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아울러 전 대통령은 1985년 중앙행정기관을 대전으로 옮기는 중앙행정기관 및 외청배치계획안을 추진했으나 부처간 갈등으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6공화국은 88올림픽을 전후해 수도권 비대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자 1989년 `지역균형개발기획단` 설치해 지방 균형발전을 모색했다. 그러나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오히려 수도권 주택난을 해소하겠다면서 수도권 5개 신도시건설을 추진, 수도권을 더욱 비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 수도권 규제와 완화 `반복`
그러나 세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규제완화 정책으로 돌아서면서 수도권 집중을 초래했다. 특히 준농림지 개발을 허용하는 바람에 난개발을 불렀다. 또 중앙기관 대전청사 이전 역시 공무원들 중 가족과 함께 대전으로 이사한 비율이 30% 안팎에 그치면서 인구 및 중앙권력 분산효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국민의 정부` 역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수도권 분산 의지에 따라 강력한 균형발전정책을 모색했다. 집권초기 중앙행정부서 권한을 지방을 넘기는 방안을 추진했다. 또 2000년에는 지역균형발전기획단을 발족해 국가 중추기능을 수도권 밖으로 옮기는 방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중앙정부권한 이전은 이양 대상 사무 625개 중 138개만 지방으로 넘기는 데 그쳤다. 무엇보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국인투자에 대한 입지규제 완화, 그린벨트 규제 완화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수도권 집중은 계속됐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꺼내 든 카드가 신행정수도 건설이다.
신행정수도 건설은 2004년 여야 합의로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공포되는 등 어느 정도 진전을 이뤘으나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좌초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결국 당초 보다 규모가 줄어든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다시 추진됐으며 2007년 7월20일 착공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