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은 왜 인류학자를 고용했을까?

美 대기업, 소비자 기호·심리파악 위해 사회과학 적극 활용
  • 등록 2005-08-24 오전 10:44:28

    수정 2005-08-24 오전 10:44:28

[이데일리 김경인기자] 미국에서는 자녀 교육을 위해 발달 초기에 컴퓨터를 사줘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정반대로 생각한다. 그들은 자녀들이 일찌감치 만다린어를 학습하기 원하며, 사용 통제가 힘든 컴퓨터는 `주의를 산만케하는 방해물` 정도로 여긴다.

최근 아시아 7개 지역의 100개 가정을 방문 조사한 인류학자 제네비브 벨은 컴퓨터를 대하는 태도가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는 이같은 조사 결과를 동료 인류학자들이 아니라 반도체업체 인텔의 직원들 앞에서 발표했다.

소비자의 취향과 관점이 다르다면? "그들을 다루는 전략도 달라야만 한다".

소비자들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사회과학을 이용하는 미국 대기업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전통적인 양적 연구로 밝히지 못한 일종의 통찰을 사회과학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제네비브 벨은 인텔에서 인류학자들로 구성된 한 연구팀을 진두 지휘하고 있다. 그 팀은 전세계에서 기술이 사용되는 서로 다른 양태들을 관찰·분석해, 개발팀의 제품 설계에 반영되도록 돕는다.

컴퓨터를 대하는 중국 부모의 태도에 대한 벨의 발견은 인텔의 중국용 PC 런칭으로 이어졌다. 올해 인텔이 출시한 중국 가정교육용 PC에는 터치 스크린이 장착돼 있어, 만다린어 쓰기를 학습할 수 있다.

다음 관건은 컴퓨터 사용을 어떻게 통제하는지 여부. 개발자들은 당초 소프트웨어 기반의 PC 잠금장치를 고려했으나, 벨은 중국에서 `열쇠와 자물쇠`가 지니는 `귄위의 상징`으로서의 중요성에 대해 조언했다.

이에 따라 인텔은 소프트웨어 잠금장치 대신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잠금 매커니즘을 사용했다. 부모들이 방의 다른 장소에서도 컴퓨터 사용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

잠재적인 소비자에 대한 정보 수집에 사회과학을 사용하는 것은 새로운 접근은 아니다.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복사기 제조업체인 제록스는 1979년 인류학자 루시 서치맨을 고용해 고객들의 직장을 방문하고 업무 행태를 관찰하게 했다.

제록스 작업장 기술 그룹의 피터 톨미 프랑스 지역 매니저는 "표준 마케팅 연구와 통계 데이터들은 종종 좌절스러울 정도로 피상적이다"라며 사회과학적 리서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회과학적 소비자 연구는 최근 IT 대기업들에 사이에서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벨은 "인류학자들이 갖는 잇점은 소비자에 대한 편견없고 신선한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떤 현실을 판단하고 분석하는데 있어 항상 민족지학적인 스토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전적으로 그 사람이 속한 세계에 귀를 기울이면 핵심적인 특수성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그는 최근 한 말레이시아 남성과 휴대폰에 대한 인터뷰를 한 뒤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기도하기 위한 메카의 방향을 찾기 위해 날마다 휴대폰의 GPS 기능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 1700년된 문화적 행위에 기술이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MS) 또한 소비자의 시각을 이해하기 위해 사회과학적인 방법을 차용하고 있다. 영국 제품 플래너인 쉐넌 뱅스는 글로벌 연구팀을 이끌며, 세계 IT 전문가들의 니즈(needs)를 분석하고 있다.

뱅스는 "아무리 실험실에서 열심히 연구를 수행한다 해도 소비자들의 고통 지수나 본인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필요성 등을 발견할 수 없다"며 직접적인 관찰에 기반한 분석을 강조했다.

뱅스가 이끄는 MS 연구팀은 최근 하루를 꼬박 경찰차 안에서 보냈다. 이는 경찰 관리들의 일상을 파악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 그들은 하루의 동반 관찰을 통해 경찰들이 범죄 장소를 약 30분간 수기로 묘사해, 후에 컴퓨터로 옮긴다는 것을 알게됐다.

관찰 조사를 통해 발견된 이같은 사실들은 개발자들에게 일종의 피드백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중 고려할 만한 사항들은 MS 오피스의 다음 버젼에 반영될 것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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