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위기 못지않은 어려운 시대 탓인지, 지난 10월 초,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국문화 페스티벌에 대한 기사는 상당히 의미 있는 전시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읽은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10월 9일 시작된 이번 한국문화페스티벌은 벨기에 브뤼셀 한복판의 종합예술기관인 보자르(BOZAR) 예술센터에서 열렸다. (불어를 사용하는 벨기에서 미술을 뜻하는 말은 BOZAR가 아니라 Beaux-Arts이지만, 특별히 같은 발음이 나는 말로 신조어를 만들어 문화센터를 지칭하고 있다.)
정문 옆에 현대자동차 '싼타페'와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아자동차 '시드'의 새 모델이 전시되기도 해 문화 마케팅에도 일조를 했다. 현관에선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어린이들이 청사초롱을 들고 입장객에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입장객들을 맞았다. '벨기에 한국페스티벌'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한 인파가 꼬리를 물고 들어섰으며, 대형 포스터에는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은은한 미소로 그들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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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미소”전은 이번 페스티벌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다. 벨기에인들에게 생소한 한국불교가 국보와 보물급 불상, 불화를 통해 오랜 전통을 드러낸 것이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번에 마련한 ’부처의 미소’전은 한국 불교미술의 걸작 중 걸작만 모았다”면서 “이 가운데 국보 83호 미륵반가사유상은 불교문화가 한반도에서 시작된 지 2세기 만에 성취한 놀라운 걸작으로, 독립적인 예배 대상으로 반가사유상이 제작된 곳은 한반도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엇보다 한쪽 다리를 무릎에 올리고 한쪽 손에 얼굴을 기대어 사유하는 자세를 자연스럽게 구현한 금동반가사유상은 당시 금속주조기술과 인체조형미학의 정점을 대표한다”고 덧붙였다.
최 관장은 “세계에 알려진 한국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스포츠 강국 등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면서 “그러나 한국은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이어온 유서 깊은 문화를 가진 나라이며, 한자문화권이면서도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독특한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일궈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벨기에 “부처의 미소”전 유감
하지만 다양한 볼거리가 제공되고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또 전시기간도 긴 이번 전시회가 흔히 말하듯 2% 부족한 전시회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든다. 박물관장이 한 말들, 이를테면 “한국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스포츠 강국 등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은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이어온 유서 깊은 문화를 가진 나라이며, 한자문화권이면서도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독특한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일궈왔다”는 등의 말은 식상한 외교적 발언이지만, 개막식 연설이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체 전시회의 미학적, 학술적 의미를 묶어줄 핵심 주제가 없는 것이 우선 눈에 띈다. 쉽게 말해 이번 전시회도 여러 유물들을 복잡하게 갖고 나갔고, 또 음악도 공연되고 문학가들도 갔지만 핵심이 없는 것이다.
불교문화를 전시하기 위해서는, ‘종교와 미술’이라는 더 큰 주제로 올라가야 한다. 종교와 미술이라는 전체 주제 하에서 ‘불교와 미술’을 다루고, 다시 그 밑에서 ‘부처와 미소’를 다루어야 했던 것이다. 텅빈 성당들이 매물로 나와 급기야는 뮤직홀로 개조가 되기도 하는 종교 무관심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유럽에서 불교미술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없다.
학술적 접근이 없이 백화점식 전시를 기획했기 때문에 벌어진 가장 안타까운 현상은 다름 아니라, 최광식 박물관장을 비롯해 많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의 오묘한 미소”라는 인식이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전시회를 기획했다면, 비록 한국불교 미술전이긴 했지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전시하는 기획이 필요했다. 게다가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벨기에 브뤼셀은 로댕이 젊은 시절 고생을 하며 조각을 공부하던 곳이기도 하다.
<생각하는 사람>과 <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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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죄에 대한 생각은 복음을 전하는 기독교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것으로 13세기에 교리로 정해진 가톨릭의 고해성사와 관련된 서구인 특유의 사고 유형이다. 면죄부라는 가톨릭의 치욕스러운 과거도 여기서 나왔다. 나아가 죄에 대한 생각과 고해성사는 서구 문학사에서 고백문학이라는 하나의 장르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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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 현대와 고대가 함께 전시되어야, 죄 개념을 중심으로 사고했던 서구의 사유와 심리분석적이면서 내면 독백조인 서구 문학의 큰 갈래를 이해할 수 있고, 그와 전혀 다른 문화적 전통에 자리잡고 있는 동양과 한국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반가사유상>만 전시하는 경우, 종교와는 무관한 조각전이 되고 만다. 그래서 이번 벨기에 한국전의 “부처의 미소”는 오묘한 미소라는 두리뭉실한 환영을 강조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대체 뭐가 오묘하다는 것인가?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동양의 불상은 그 기원을 간다라 미술에 두고 있으며, 그 간다라 미술은 그리스 조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른바 그리스 조각의 엄격양식이나 고대 로마의 숭고미 등도 모두 오묘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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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은 판화가 지니고 있는 오묘한 뜻을 해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도상학자들이 달려들었는가.
이러한 서구의 사유 전통은 17세기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들라투르는 물론이고 19세기 말의 조각가 마이욜, 초현실주의자인 데키리코의 이른바 ‘피투라 메타피지카’로 불리는 형이상학 회화로 연결되며 현대로 이어지고 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만 놓고 보더라도, 모델로 삼았던 단테는 물론이고 몽테뉴의 <수상록>과 장 자크 루소의 그 유명한 회고록인 <고백> 역시 같은 사유의 전통 속에 자리잡고 있다.
반면 고백문학이 극히 드문 한국 문학의 특성은 어디에 있는가? 왜 반가사유상은 고려와 조선에서는 그 맥이 끊겼는가? <생각하는 사람>의 저 고통스러운 모습과 <반가사유상>의 여인의 미소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움 역시 함께 보아야만 둘 모두를 이해할 수 있다.
예산을 많이 쓴다고, 다양한 볼거리를 들고 나간다고 해서 좋은 전시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놓고 죄에 대한 팡세와 인간 조건에 대한 사유의 치열한 표현을 함께 생각하려고 할 때 좋은 전시가 이루어질 것이다. 백화점식 전시회가 아닌 이러한 익사이팅한 전시를 할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