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바늘의 마법? 아니, 요즘 엄마들 사이 대유행인 양모 펠트 작업의 일부다. 양모 털을 ‘뜯어’ 섬유(부직포)를 만드는 법, 꿰매는 대신 찔러 덧대는 기술 등 몇 가지 간단한 펠팅 기법만 배우면 초보생도 1시간 안에 베레모, 파우치, 스카프, 코사지, 토드백까지 완성할 수 있다. 펠트뿐 아니다.
퀼트에서 진화한 ‘크레이지 퀼트’를 비롯해 유기농 바느질, 돌아온 십자수까지. ‘건강과 환경’ 두 마리 토끼를 쫓는 로하스(LOHAS)족의 트렌드? 분명한 건 알뜰주부 혹은 현모양처의 취미 수준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늘로 명상하고, 수다떨고
“내일이 바느질 모임 하는 날이다 생각하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바느질 수다 떨며 스트레스 해소하는 맛,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조각보 짓는 일은 제게 명상이자 퍼포먼스예요. 조각조각을 이어가며 흩어진 내 마음, 상처나고 딱지 진 내 마음을 곱게 탄생시키죠” 바느질 커뮤니티에 올라있는 글들. 일러스트레이터 조인숙씨<사진 가운데>도 비슷하다. 그림 작업이 힘들고 지루해지면 바느질감을 집어든다. 민소(6)를 낳고 나서 재봉틀 바느질에 재미를 붙였는데, 요즘은 머리를 맑게 하고 싶거나 조용히 명상하고 싶을 때 재봉틀 앞에 앉는다. “정형화되지 않아서 좋아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민소의 낙서를 모아놨다가 옷감에 먹지를 대고 본을 떠서 가방 만들 때 장식으로 달고, 옷에도 그려 넣어요.”
엄마가 바느질을 하면서 민소도 달라졌다. 수줍음 많던 아이가 그림으로 자기 생각을 적극 표현한다. 무심코 한 낙서를 가지고 엄마가 가방을 만들어주자 기가 바짝 살아서는, “우리 엄마가 만들어줬어요. 가방 속에 주머니가 이렇게 많아요” 하면서 동네 자랑을 하고 다닌다.
▲ “내 이름은 민소. 원피스랑 모자는 엄마가 만들어주셨죠." | |
미운 남편 생각하며 ‘펠팅’하기
양모 펠트 마니아들도 마찬가지. ‘핸드메이드 양모펠트’의 저자인 김희진씨가 지난해 오픈한 ‘펠트하우스’(felthouse.co.kr)카페 회원만 무려 4000여 명이다. 서울 청담동 등 전국 매장으로 펠트를 배우러 오는 여성들을 가르치기 위해 배치된 강사만 수십명.
김씨는 펠트 인구를 2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옷감을 직접 만든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죠. 퀼트나 뜨개질과 달리 기본 펠팅 기법만 알면 빠른 시간 안에 물건을 완성할 수 있어서 성미 급한 엄마들이 좋아해요.”
▲ 미키 인형부터 모자까지 모두 펠트 소품으로 단장한 일곱 살 다정이. 펠팅 기법을 활용한 물건은 솔기없이 완성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 |
느리게 산다는 것의 즐거움
이혜원씨가 운영하는 재활용공작소 다시(cafe.naver.com/ddasi.cafe)에는 시집 안간 직장여성부터 40대 주부들까지 구성원이 다양하다.
이 커뮤니티의 특징은 말 그대로 DIY바느질 마니아들이 모였다는 것, 그리고 손바느질만 고집한다는 것이다. 물에 빨아 줄어든 스웨터, 팔꿈치에 구멍 난 셔츠, 싫증난 청바지, 얼룩이 진 티셔츠들로 전혀 새로운 핸드메이드 물건을 만들어낸다.
“2주에 한번 정모(정기모임)를 하는데 각종 아이디어가 속출해요. 면주름치마의 경우 허리는 잘라 헤어밴드로, 폭은 그대로 잘라 가방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고요, 청바지 시접으로 링 모양 귀고리를 만드는 사람도 있죠.” 지난 9월엔 전시도 열었다. “느리게 산다는 것, 버려진 걸 살려내는 기쁨, 나도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장 큰 매력이죠.”
바느질이 슈퍼맘이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크나큰 오해! “박음질만 할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단다. “돈도 별로 안 들어요. 옷감 외에 부속품을 구입해야 하는데, 동대문 시장에 가면 똑딱이 단추 100개에 5000원, 지퍼 하나에 500원, 리벳 한 쌍에 50원밖에 안 해요. 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