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제공] 대통령 복권과 17대국회 개원을 계기로 여권이 집권2기의 진용개편에 나설 채비다. 1기 내각이 한나라당이 장악한 국회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했다면 2기 내각은 과반수 여당의 전폭적인 지원사격 속에 한층 여유로운 국정운영을 기대하고 있다.
경남지사를 지낸 김혁규 열린우리당 당선자가 2기 내각을 총괄할 국무총리로 사실상 낙점을 받았지만, 개혁과 보수 양쪽으로부터 김 당선자에 대한 비토여론이 확산되는 추세여서 국회인준 과정에서도 난항이 예상된다.
"김혁규 총리론"은 "이라크 파병재검토"와 함께 17대 국회의 여야 관계를 가늠할 시금석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혁규 총리" 놓고 달아오르는 온라인 논쟁 = 한나라당이 "배신자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과 달리 열린우리당 지지층의 비토 논거는 "개혁총리론"으로 집약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논객들은 15∼16 양일간 "서프라이즈"에 "모질이 김혁규의 자살" "김혁규 총리기용 강행의 이유"이라는 찬반 양론을 각각 올리기도 했다.
특히 지난 12일 김 당선자의 창원 발언("부산시장과 경남지사 보선에서 우리당 후보가 당선되면 (노무현 대통령이) 엄청난 선물을 줄 것이다. 만약 안되면 내가 건의해서라도 경남발전을 10년 앞당기도록 하겠다" "경남도정 100년사에 지금같이 좋은 기회는 없었다. 정부 주요 요직에 경남인들이 대거 포진할 것")은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Bud White"는 "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은 "국민통합"이었지, 영남 패권주의 부활 아니었다"며 "암튼 이야기하는 걸로 봐서는 김혁규는 대한민국 총리나 대통령이 경남 지사 정도로 보이는 모양"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독고탁"은 "타도에 살았거나 수도권에서는 소식을 접하기 힘들어 "김혁규 지사가 어떤 일을 했지?"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한마디로 "뛰어난 도백"이다. 행정력과 리더십과 청렴성을 고루 갖춘 개혁적 인물로서 3선 도지사에 이르도록 성공적인 업무를 수행한 사람"이라고 김 당선자를 옹호했다.
두 사람의 논쟁 이후에도 네티즌들은 "경남도지사로의 역량은 보지 않고 한나라당이라는 출신 성분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혁대통령은 안정총리를 기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며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네티즌 중에는 노 대통령이 참여정부를 출범하며 인터넷에서 각료후보 추천을 받았던 것을 상기시키며 김중배 전 MBC 사장, 한승헌 전 감사원장, 한완상 한성대 총장 등 대안적 인물들을 총리후보로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후보시절 노 대통령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김선주 <한겨레> 논설주간이 "정치도의"를 내세워 김혁규 비토론에 가세한 것도 눈길을 끈다.
김 주간은 16일자 칼럼(김혁규 총리내정 옳지 않다)에서 "사람빼가기의 원조라는 한나라당이라지만 김혁규만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아무리 욕심이 나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정치도의상 옳지 않은 일을 해선 안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김 주간은 "아직 집권초반이고 김 전 지사를 중용할 기회는 또 있다. 집권 2기 초반부터 힘을 뺄 필요는 없다"며 김혁규 총리카드를 거둬들일 것을 촉구했다.
◇열린우리당 "네티즌 생각은 잘 알지만..." = 네티즌들의 관심은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에 쏠리고 있다. 집권1기 내각을 이끈 고건 총리는 한나라당의 협조 속에 어렵사리 총리 인준을 받았지만, 김 당선자의 경우 열린우리당 동료의원들이 전폭적으로 협조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총리인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정동영 의장과 신기남 상임중앙위원 등 당 지도부는 "김혁규 총리론"에 묵시적 동조를 보내는 분위기다.
정 의장이 이날 상임중앙회의에서 "총리는 대통령과 호흡이 맞아야 하는데, 한 여론조사에서 김 당선자의 총리지명에 찬반 비율이 50 : 30 정도로 나왔다"며 "50%가 김 당선자를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건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하자 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은 "그 정도면 괜찮다"고 동의했다.
당의장을 승계하게 되는 신 위원은 "누구나 찬반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근거없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배신자" "철새"라고 너무 쉽게 얘기하는 것 아니냐?"고 한나라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신 위원은 "(도지사에) 그대로 남아있는 게 훨씬 쉬운 길이었는데, 망국적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결단을 내린 사람을 너무 몰아세운다"고 김 당선자를 두둔했다.
반면, 당내 소장파들사이에서는 "김혁규 총리론"에 대한 옹호와 거부감이 상존하고 있다. "김 당선자가 외부의 생각과 달리 합리적·개혁적"이라는 호평이 많았고, 물의를 빚은 창원 발언에 대해서도 "선거용 발언으로 지나친 면이 없지 않지만, 총리가 된 후에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신뢰감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얘기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말로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는 이도 없지 않았다.
최근 노 대통령과 독대를 한 조경태 당선자는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마침 얘기가 나와서 "김 당선자를 총리로 미는 게 부산 재보선에서는 큰 도움이 안되고,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지만 총리지명에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혁규 총리론"에 소장파는 고민중 = 조 당선자는 "나도 처음에는 한나라당에서 넘어온 김 당선자가 기회주의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만나보니 상당히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조 당선자는 이어 "내가 영남사람이라서 지지하는 게 아니고, 사람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스타일인데... 다른 대안적 인물들과 자질을 비교해봐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라고 추켜 올렸다. 조 당선자는 "김 당선자가 반개혁적인 인물이라면 내가 제일 먼저 나서서 "총리에서 물러나라"고 하겠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청와대 비서관으로 노 대통령을 보좌했던 김현미 당선자도 "지금은 정권을 막 시작해서 활기차게 일을 벌이고 추진할 단계"라며 "14일 대국민 담화에서도 드러났듯이 대통령은 경제 살리기에 포인트를 맞추고 있으니 실물경제에 밝은 인물이 총리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 당선자는 "개혁총리론"에 대해서는 "재야의 명망 있는 어르신들을 총리로 기용할 시기가 있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재선의 임종석 의원은 "네티즌들 사이에 여러가지 의견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지방분권·국민통합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안정감 있는 CEO형 총리를 바라는 것 같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임 의원은 "정부의 개혁과제 로드맵에 따라 당이 국가보안법 개폐, 언론·사법개혁 등을 주도하고, 정부에서는 경제회복과 사회통합에 주력할 것"이라는 역할분담론을 폈다. "과반수 의석"에서 드러난 개혁의 목소리도 높지만,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안정감과 신뢰를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논리이다. 임 당선자는 "개혁추진 과정에서 열린우리당의 힘이 약하면 보다 개혁적인 인물이 총리가 되는 게 좋겠지만,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반면, 3선의 신계륜 의원은 "대통령이 김 당선자를 미는 참뜻을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신 의원은 "내가 상황을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만나본 젊은 의원들은 김 당선자에 대해 탐탁치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대통령도 국정운영에 대한 고민이 있겠지만, 이것이 정당한 가에 대한 의문도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민노-민주, 일단 "비토론"에 무게 = 노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호평했던 한나라당이지만 "김혁규 총리" 카드에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배용수 수석부대변인은 "상생의 정치를 하겠다면서 야당이 강력히 반대하는 인물을 총리에 기용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행여나 거센 비판을 야기한 "김혁규 총리카드"를 고집한다면 "상생의 정치"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논평을 냈다.
원내대표 경선에 나간 3명의 후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반김혁규 투쟁"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김문수 의원은 "김 전 지사의 총리지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 당선자의 자질을 철저히 검증할 별도의 청문특위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영남권을 지지기반으로 한 안택수 의원도 "노 대통령이 김 전 지사를 총리로 내정하지 못하도록 거당적으로 반대하고 "김혁규 총리"가 부당하다는 여론을 환기시켜야 한다"고 강경 입장을 드러냈다.
반면, 경선에서 우위를 점한 것으로 알려진 김덕룡 의원은 "총리지명을 강행하면 상생의 정치를 운운하면서 뒤로는 야당의 옆구리를 찌르는 정치를 하는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새로 출발하면서 야당에 싸움을 걸어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민주노동당은 김 당선자의 총리내정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당선자 사이에서는 명분없는 당적이탈, 도지사 시절의 행적 등을 문제 삼으며 "총리 인준에 동의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의원단 대표를 맡고있는 천영세 당선자는 "경남지사로 선출되고 얼마 되지 않아 정계에 입문했고, 한나라당 탈당도 명분이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천 대표는 김 당선자의 총리발탁 배경에 대해 "김 당선자는 노무현 정부가 부산경남 지지율을 높이겠다는 목적으로 공을 들인 인물"이라며 "국정전반을 관장하는 총리로서 덕목이 부족한 인물"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조승수 당선자는 "경남도지사로 있으면서 외국계 담배회사의 공장설립을 성사시키는 등 해외투자유치를 위해 물불 안가는 모습을 보였다"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자체단체에 도입하려는 모습은 자체단체장의 태도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 당선자는 "국정전반을 관장하는 총리는 사회의 어두운 부분까지 보듬고 가야하는데 김 전지사는 그렇지 못하다"고 평했다.
민주당도 지난 14일 회의에서 "김혁규 총리인준"을 논의했다. 당내에 김 당선자의 행정수완을 높이 평가하는 의원들이 많지만, 열린우리당에 구원(舊怨)이 쌓인 터라 호락호락 총리인준을 해줄 것 같지는 않다.
한화갑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김 당선자가 개인적으로 나와 교분이 있는 사이지만, 총리 지명을 받을 사람으로 창원 발언은 적절치 못하다"고 말했다. "영남대통령-영남총리" 구도에 대해 "노 대통령이 말로는 지역화합을 외치면서 영남정권을 공공연히 표방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고 장전형 대변인은 전했다.
장 대변인은 "역대 영남정권이 비록 허울뿐인 "대독총리"라도 호남출신 인사에게 총리를 배려한 적이 많았다"며 "대통령이 여러가지를 생각해서 김 당선자를 영입했지만, 그를 총리에 앉히는 순간 역풍이 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