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용익의 록코노믹스]스태그플레이션의 도피처가 된 ‘요트 록’

  • 등록 2020-05-02 오후 1:14:15

    수정 2020-05-02 오후 1:14:15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요트 록(yacht rock)’이란 장르가 있다. 말 그대로 요트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며 들으면 딱 좋은 분위기의 록이다. 적어도 그런 상상을 하는 데 어울리는 배경음악이다. 록을 기반으로 하지만, 소울, 재즈, 리듬앤블루스(R&B), 디스코 등의 요소를 녹여 대중적이고 가볍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도 특징이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토토의 “Africa”, 크리스토퍼 크로스의 “Sailing”, 더 두비 브러더스의 “What a Fool Believes” 등이 있다.

요트 록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10년 전 반전(反戰)을 외치던 사람들은 기성세대가 돼 집과 차를 소유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면서 이런 음악을 들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당시 미국의 경제 상황은 좋지 못했다. 석유 파동으로 경기가 침체되면서도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났다. 정치적으로는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전쟁 패배로 사회 분위기는 침체돼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캘리포니아 해변을 연상케 하는 경쾌한 요트 록이 인기를 끈 것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1970~1980년대 요트 록은 워터게이트 스캔들, 베트남전 종전, 에너지 위기, 경기 침체 등의 뉴스로부터 행복한 도피처가 됐다”고 설명했다.

저널리스트이자 방송인으로 유명한 케이티 퍼크릭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너무 많은 격변과 불만이 있었기 때문에 요트 록이 번성할 수 있는 완벽한 시기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요트 록이라는 용어는 사실 2005년부터 쓰였다. 당시 방영된 온라인 비디오 시리즈 제목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 이전에는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라든지, 더 넓은 범위에서 ‘어덜트 오리엔티드 록(AOR)’, ‘소프트 록’ 등의 이름으로 주로 불렸다.

그러나 지금은 요트 록이 하나의 장르 이름으로 자리잡았다. 스포티파이, 판도라 등은 요트 록 장르를 별도로 제공하고 있다. 위성 라디오 시리우스는 여름마다 요트 록 채널을 운영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휴가 계획이 무산됐다면, 요트 록을 들으며 현실에서 도피해 보면 어떨까.

Toto “Af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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