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th SRE][서베이]승자의 도루는 성공했을까

한기평 등급전망 전면 개편
  • 등록 2012-11-13 오전 10:07:00

    수정 2012-11-13 오전 10:07:00

[이데일리 임명규 기자]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프로야구에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지켜야 할 매너가 있다. 큰 점수차로 앞선 팀 주자가 도루를 하지 않거나, 홈런 친 타자가 과도한 세레머니를 자제하고 그라운드를 신속하게 도는 행동이 대표적이다. 사실상 승부가 결정된 상황에서 지고 있는 팀이나 홈런 맞은 투수에 대한 예의다. 만일 어길 경우에는 상대방을 향해 빈볼이 날아들기도 한다.

신용평가 시장에서 만년 1등이 도루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쟁사들은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과연 승자의 굳히기 도루는 성공했을까.

지난 8월말 한국기업평가는 크레딧 시장을 상대로 등급전망(Outlook) 제도를 전면 개선하겠다고 선포했다. 등급전망이 신용등급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실상 유명무실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했다. 7년간 SRE를 통해 끊임없이 지적해온 부분을 드디어 해결한다는 점에서 시장의 기대치도 한층 높아졌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시장의 불신은 더욱 커졌다. 신용평가사의 일회성 이벤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묵은 등급전망 도려내기

한기평이 내놓은 등급전망 개선안은 6개월마다 한번씩 제대로 운용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등급 전망 제도는 향후 1~2년 이내에 등급의 변동 가능성이 낮은 경우 ‘안정적’, 등급의 상향 또는 하향 가능성이 있을 때는 ‘긍정적’이나 ‘부정적’ 등의 표현을 부여하는 것이다.

신용평가사가 ‘긍정적’이나 ‘부정적’ 전망을 제시했다면 등급 조정까지 따라줘야 전망 자체도 신뢰를 얻게 된다. 하지만 등급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제도의 취지와 달리 장기간 긍정적 전망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7월 말 현재 한기평이 부여한 24개 ‘긍정적’ 전망은 평균 1년2개월 동안 유지됐고, 9개 ‘부정적’ 전망은 평균 5개월간 부여됐다. ‘긍정적’ 전망이 1년 넘게 유지된 기업은 11곳, 2년이 넘은 곳도 3개사가 있었다.

신용등급을 한번에 바꾸기 부담스러울 때 등급 전망을 대체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등급과 등급 사이의 반(半)등급 정도로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결국 한기평은 반년마다 등급전망 ‘긍정적’ 또는 ‘부정적’ 기업을 체크해 조정 여부를 시장에 알리고, 2년 이내에는 반드시 등급 변경 여부를 결정한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기존에 등급 전망이 장기간 유지된 기업에 대해서도 일괄 등급 조정이 이뤄졌다. 한기평은 지난 9월13일 대한항공과 SK케미칼, GS네오텍, 한진, 동부메탈, 이랜드리테일 등 ‘긍정적’ 전망을 오랜 기간 유지하던 기업들을 모두 ‘안정적’으로 돌려놨다. 등급 전망을 부여할 당시에 비해 사업이나 재무구조 측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게 한기평의 분석이었다.

2년2개월간 ‘긍정적’ 전망을 줬던 현대로템은 현대차 그룹의 높은 지원가능성과 독점적인 철도 차량 사업구조를 감안해 A에서 A+로 등급을 높여줬다. 20개월 넘게 긍정적이었던 SK텔링크와 LG유플21러스는 아직 사업전망과 현금창출 면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등급 조정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양승용 한기평 평가기준실장은 “등급전망 제도의 도입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 방향성 제시 기능을 충실화하려는 것”이라며 “모니터링 요소와 검토 기간을 명확히 제시하라는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신평사간 싸움은 커져가지만

한기평의 발빠른 조치에 다른 신용평가사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NICE신용평가와 한국신용평가 입장에서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마치 기업의 눈치만 보고 등급 전망을 제대로 조정하지 않는다는 시장의 오해를 걱정했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한기평은 등급 전망을 조정하기 전에 기업과 소통하는 과정을 사실상 생략했다”며 “우리도 정해진 규정에 따라 등급전망 제도를 운용하는데,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다른 신평사들도 무시할 상황은 아니었다. 한기평처럼 등급 전망의 일괄 조정까진 아니라도 일부 기업에 대한 교통 정리에 돌입한 것이다. NICE신평과 한신평은 지난 10월18일 나란히 SK케미칼의 ‘긍정적’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복귀시켰다. 두 신평사는 현대로템에 대해서도 A(긍정적)에서 A+(안정적)로 한 단계 높은 등급을 부여했다. 한기평이 조치한지 한달여 만에 똑같이 조정한 것이다. 또 다른 신평사 관계자는 “개별 기업별로 사업이나 재무구조 변화 등 등급 변동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해 조치한 것”이라며 “한기평의 등급전망 일괄 조정과는 상관없다”고 일축했다.

(단위: 명)


◇ 시장 평가는 ‘기대이하’

16회 SRE에서 신용평가사의 등급전망과 감시(Credit Watch) 제도가 제대로 운용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대다수 설문자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설문대상 111명 중 ‘제대로 운용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15명(13%)이었고, ‘잘 안되는 편’이라는 대답은 38명(34%)에 달했다. 설문자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등급전망 제도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제대로 운용되고 있다’는 답은 단 한명도 없었고, ‘잘 되는 편’이라고 답한 설문자는 13명(12%)에 불과했다. 중립적 의견을 보인 45명(41%)을 빼면 반대 방향으로 상당히 치우친 모습이다.

등급전망에 대한 신뢰도 점수는 더욱 적나라하게 시장의 불신을 드러냈다. 이번 SRE에서 5점 만점에 2.50점으로 지난 15회 2.71점보다 더 떨어졌다. 16회가 진행되는 동안 등급전망 신뢰도 점수가 평균 2.7점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크게 실망스러운 수치다.

응답자 중 크레딧 애널리스트들의 평가는 더욱 박했다. 등급전망 제도가 제대로 운용된다는 답변은 아예 없었고, 잘 되는 편이라는 답도 전체 65명 중 5명(8%)에 불과했다. 제대로 운용되지 않거나 잘 안되는 편이라는 답변은 39명(60%)에 달했고, 중립은 21명(32%)이었다. 신뢰도 평균도 2.26점으로 지난 회보다 0.33점 내려갔다.

제도 지속가능성 ‘의문’

신용평가사의 등급전망 제도가 지속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시장의 시각은 어두웠다. SRE 응답자중 절반 가까운 51명(46%)이 등급전망의 지속성에 의문 부호를 달았다. 39명(35%)은 ‘조치가 미미해 지속성에 의문이 있다’고 답했고, 12명(11%)은 ‘신용평가3사가 공동 보조를 취하지 않아 효과와 지속성이 의문스럽다’고 응답했다.

장기적으로 신용등급 질서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는 답변은 35명(32%)으로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SRE자문위원은 “등급전망 ‘안정적’ 비중이 90%를 넘어서는 등 전반적인 유효성이 크게 떨어져 있다”며 “시장의 기대와 관심이 확인된 만큼, 획기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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