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또 어찌 날지"…때이른 폭염 위협에 노출된 사람들

쪽방촌·건설현장 등 안전 사각지대 폭염에 비상
복사열 높고 환기 안되는 쪽방촌 폭염에 취약
폭염 안전수칙 잘모르는 건설현장도 위험
지난해 온열질환자수 4526명…이 중 48명 사망
지자체들, 9월말까지 폭염피해 예방 비상체제 가동
  • 등록 2019-05-26 오후 3:40:40

    수정 2019-05-26 오후 4:56:17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쪽방촌(왼쪽)은 건물과 건물의 간격이 좁아 환기가 전혀 되지 않는 구조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골목(오른쪽) 한 구석에 먹다 남은 막걸리병과 컵라면 등이 쌓여있다. (사진=신상건 박순엽 기자)


[이데일리 사건팀 기자] “폭염 때문에 집안이 한증막과 다름 없습니다. 아직 5월 밖에 안됐는데 이러니 여름은 어떻게 보낼지 정말 걱정이네요.”(동자동 쪽방촌 주민 60대 최모씨)

예년보다 폭염이 두 달 일찍 찾아오면서 안전 사각지대인 쪽방촌과 각종 건설현장 등에도 비상이 걸렸다. 서울시 등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비상체제를 가동하며 폭염 피해 예방을 위해 총력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여름(6~8월)을 나야 하는 취약계층들의 우려도 적잖다.

고령 기초생활수급자 많은 쪽방촌 폭염에 무방비 …위생도 문제

때 이른 폭염 탓에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과 용산구 동자동 등 서울 시내 쪽방촌에도 여름이 일찍 찾아온 모습이다. 26일 찾은 영등포동과 동자동의 쪽방촌에서는 주민과 노숙인들이 집 밖에서 나와 길거리 그늘에서 더위를 식혔다. 일부 주민은 땅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연신 물을 뿌렸다. 쪽방촌은 대부분 2평 남짓한 좁은 방에다가 건물과 건물의 간격이 좁은 탓에 환기가 전혀 되지 않는다. 대부분 집을 값싼 목재나 합판 등으로 만들어 불에 타기 쉽고 복사열도 높아서 더위에 취약하다.

익명을 요구한 영등포동 쪽방촌의 70대 노인은 “쪽방에 별도의 취사 시설은 없다”며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2평 남짓한 방안에서 휴대용 버너를 놓고 즉석밥을 데워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는다”고 말했다. 이어 “집안에 선풍기가 한 대 있다. 하지만 끼니를 해결하려면 좁은 공간에서 버너를 사용해야 해 매번 온몸을 땀으로 뒤덮는다”며 “씻을 공간도 딱히 없어 요즘에는 근처에 있는 노숙인 자활센터나 교회 등에서 끼니를 해결한다”고 귀띔했다.

쪽방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60세 이상의 기초생활수급자들이다.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기초생활지원비 40여 만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부족한 생활비는 폐지를 줍거나 공공근로를 통해 채우지만 건강하지 않은 주민들은 이마저도 어렵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 60대 강모씨는 “이 동네엔 창문 없는 방이 많아 여름에 골목에서 골판지나 돗자리를 깔고 사람들이 줄 지어서 잔다”며 “지난해 지자체에서 생수 몇 병을 줬다. 기업들도 한 번씩 와서 아이스커피를 주고 가지만 지속적인 지원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당뇨 합병증 때문에 일을 못해 기초생활지원비를 받아 사는 형편이다. 지자체 등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폭염을 대비할 방법은 없다”고 덧붙였다.

쪽방촌은 폭염을 피하기도 쉽지 않지만 위생도 문제다. 쪽방촌 일부 주민들이 청소를 하지만 먹다 남은 막걸리병과 컵라면, 찢어진 음식쓰레기 봉투 등 정리되지 않은 쓰레기들이 흐트러져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건설현장, 안전수칙 감독 인력 희박…근로자들 “잘 몰라”

건설현장도 열악한 환경은 마찬가지. 공사 기간 사수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폭염에도 공사를 멈출 수 없다. 폭염 대비 시설이 잘 갖춰진 일부 대규모 현장도 있지만 하도급으로 진행되는 소규모 건설 현장의 경우 폭염 안전수칙을 지키는 현장은 많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안전수칙에 따르면 폭염특보가 발효되면 건설 현장은 △폭염경보 때는 1시간에 15분, 폭염주의보 때는 1시간에 10분 휴식시간 제공해야 하고 그늘막 등을 설치해야 한다.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징역 5년 이하 혹은 벌금 5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를 감독하는 인력이 없을 뿐더러 현장 노동자들도 안전수칙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구로구의 한 건물 건축 현장에서 근무하는 50대 이모씨는 “폭염 안전수칙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며 “일당을 받는 입장으로서 폭염 탓에 일이나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폭염 안전수칙을 운운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라고 전했다.

영등포구의 한 도로건설 현장에 근무하는 60대 박모씨도 “안전을 위해 안전모와 긴팔, 긴바지까지 입어야 하니 더위에는 쥐약이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집에서 얼려온 아이스팩을 목에 두르고 일한다”며 “아직 5월인데 아이스팩을 꺼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올해 여름이 얼마나 더울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올해 여름 화재 진화나 구조·수색 등에 나서야 하는 소방대원들의 여건도 녹록지 않다. 경기도 시흥에서 근무하는 소방관 김모씨는 “지난해 여름에도 폭염 탓에 혼났는데 벌써 더우니 두렵다”며 “화재 의심 신고만 들어와도 복장을 갖춰 출동해야 한다. 지난해 아이스조끼가 지급됐는데 소방관 수보다 적은데다 출동을 다녀오면 아이스조끼를 계속 냉동실에 얼리는 등 과정이 필요해 사실상 큰 필요성을 못느꼈다”고 전했다.

온열환자, 실내보다 실외 많아…떄이른 폭염특보 주말내내

사람이 더위에 오랜 시간 노출될 경우 온열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온열질환은 열로 인해 발생하는 급성질환이다. 두통, 어지러움, 근육 경련 등의 주된 증상이며 더위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폭염으로 접수된 온열질환자 수는 4526명이다. 이 가운데 48명이 사망했다. 이는 2011년 감시체계 운영 이래 가장 많은 사망자 수다. 연령층은 40∼60대 중·장년층이 가장 많았고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간대는 오후 3시였다. 발생장소는 실외가 3324명(73.4%)으로 실내 1202명(26.6%)보다 많았다.

기상청은 올해 여름 평균기온이 대체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역대 가장 일찍 찾아온 폭염특보는 예년보다 두 달이나 서둘러 왔다. 지난 주말 내내 30~33도를 웃도는 날씨에 전국 곳곳이 폭염특보였다.

이렇다보니 지방자치단체들은 폭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상체제를 가동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3개반 총 16명으로 구성된 폭염 상황관리 전담팀(TFT)를 오는 9월 30일까지 운영한다. 경기도도 같은 기간 폭염 상황관리 전담팀과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한다. 소방청도 소방 폭염 종합대책을 마련과 함께 폭염 대응체제를 운영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여름철 자주 발생하는 폭염 등 재난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것”이라며 “감염병과 식중독 예방활동에도 만전을 기해 시민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여름을 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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