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이 논이 13년 만에 농원으로… 여기가 ''무릉도원''

경상남도 통영 산방산비원
  • 등록 2008-04-17 오전 10:43:03

    수정 2008-04-17 오전 10:43:03

[조선일보 제공] '안평대군(安平大君·1418~1453년)이 박팽년(朴彭年)과 함께 말을 타고 복사꽃(복숭아꽃) 만발한 오솔길을 올라갔다. 구름과 안개가 서린 첩첩산중 복숭아밭이 노을에 반짝였다. 안평이 말했다. "(이곳이)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안평대군 일행은 시를 지으며 산을 내려왔다. 그러다 안평이 잠에서 깨었다. 꿈이었다. 안평은 안견(安堅)을 불러 꿈에서 본 풍광을 그리도록 했다.'

조선 최고 화가로 꼽히는 안견이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린 배경이다. 지난주 찾아간 '산방산비원(山芳山秘園)'을 돌아보며 몽유도원도가 떠올랐다. 꿈을 구체화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안평대군이 꿈을 그림으로 구체화시켰다면, 자신의 고향을 널리 알리겠다는 꿈을 10여 년에 걸쳐 농원으로 실체화시켰다는 점이다.

▲ 산방산비원의 오후. 인간세상이 아닌 듯 고요하고 평온하다. 이따금 두꺼비 우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산방산비원은 경남 거제 둔덕면 산방산(山芳山) 기슭에 오는 19일 새로 문 여는 야생화농원이다. 이 부근은 흔히 '청마마을'이라 불린다. 청마 유치환(柳致環·1908~1967) 선생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청마는 통영에서 활동했지만 산방산에서 멀지 않은 둔덕면 방하리에서 태어났다.

산방산비원을 만든 김덕훈(68) 원장은 청마와 인연이 각별하다고 느낀다. "제가 청마의 생가(生家)에서 태어났습니다. 청마는 태어나고 세 살 때 가족과 통영으로 이사했죠. 그의 가족이 살던 집을 우리 할아버지가 사셨어요."

김 원장이 10년 넘게 정성껏 가꾼 산방산비원을 올해 개장하는 건, 올해가 청마 탄생 100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이다. 오는 18일 청마기념관이 정식 개관하고, 18일부터 20일까지 '청마 탄생 100주년 기념 문학제'가 열린다.

김덕훈 원장도 청마처럼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났다. 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20여 년 전 고향에 왔다가 깜짝 놀랐다. 산기슭을 깎아 만든 다랑이논에 억새가 우거져 있었다. 젊은 농부가 없는 건 어느 시골이나 마찬가지나, 농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다랑이논이라 나이 많은 땅주인들이 아예 농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김덕훈 원장은 황폐해진 다랑이논에 야생화농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야생화 농원은 김 원장의 오랜 꿈이었다. 그는 경남 일대에서 야생화와 수석, 난(蘭)으로 꽤 이름 난 사람이다. "나무와 풀을 잘 가꾸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는데, 그 영향을 받은 모양입니다."

입구에서 바라다 본 농원은 그리 규모가 대단해 보이지 않다. 다른 수목원이나 농원처럼 한 종류의 꽃이나 풀, 나무를 한 곳에 집중적으로 심어놓지 않아 첫눈에는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다. 개인 인터넷사이트에 사진 찍어 올리기가 유행하면서, 요즘은 어디나 소위 '사진발'이 좋아야 사람이 몰린다. 그런데 이곳은 예쁘게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이곳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산방산비원 웹사이트를 둘러봤다. 솔직히 '좀 별로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산방산비원은 실제로 보면 훨씬 좋은 곳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규모에 놀란다. 1995년부터 조금씩 사들인 땅이 3만여 평. 높은 산으로 폭 에워 싸인 지형이라 바깥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넓다. 메울 곳은 메우고 깎을 곳은 깎으며 농원의 터를 잡았다. 다랑이논 형태를 그대로 살려 계단식 연못이나 화단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전국 곳곳에서 우리 풀과 꽃과 나무 1000여 종을 찾아다 심었다. 김 원장은 "수국이 약 200가지, 비비추 50가지, 수련 30가지가 있고, 중국 우한(武漢)에서 희귀 연꽃 11종도 들여와 연못에 띄웠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산책로 돌계단 틈새에서 돌단풍이 한창이고, 연못에는 수련과 창포가 물가 군데군데 나 있다. 마치 오래 전 그곳에 뿌린 듯 자연스럽다. 꽃과 나무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심고 조경했다.

'사진발'이 살지 않는 건 이처럼 인위적 아름다움을 가능한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꽃 피우거나 잎에 단풍 드는 시기가 조금씩 다른 야생화를 적절히 섞어놨다. 언제나 볼거리가 있다. 김 원장은 "15일 간격으로 꽃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돌단풍이며 라일락, 꽃잔디, 철쭉, 명자나무, 왕벚꽃, 수선화, 진달래 따위가 한창이다. 연꽃이 곧 찾아올 여름에 만개하려 대기 중이고, 멀리 울릉도에서 찾은 까실쑥부쟁이는 가을이면 예쁜 무늬를 잎사귀에 피울 것이다.


김 원장은 "형형색색 꽃으로 눈요기하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풍경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농원은 김 원장이 자부심 가질 만한 풍광을 품었다. 농원 앞 바다는 산으로 둘러싸이고 섬으로 막혀 잔잔하고 평화로운 호수 같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산방산이 진면목을 드러낸다. 언제나 물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계곡을 타고 바람이 불어와 상쾌하다.

바람이 왕벚꽃나무 꽃잎을 하늘에 날렸다. 따뜻한 오후 햇빛에 꽃잎이 반짝거렸다. 안평대군은 이 광경을 보고서 뭐라고 할까, 궁금했다.

::: 산방산비원 언제 갈까요?
 
언제 가도 좋답니다. 왜냐하면…

꽃 피우거나 잎에 단풍 드는 시기가 조금씩 다른 야생화를 적절히 섞어놨기 때문에 언제나 볼거리가 있습니다. 김 원장은 "15일 간격으로 꽃이 나온다"고 설명합니다. 지금은 돌단풍이며 라일락, 꽃잔디, 철쭉, 명자나무, 왕벚꽃, 수선화, 진달래 따위가 한창입니다. 연꽃이 곧 찾아올 여름에 만개하려 대기 중이고, 멀리 울릉도에서 찾은 까살쑥부쟁이는 가을이면 예쁜 무늬틀 잎사귀에 피울 테지요.

▲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여기처럼 어울리는 곳도 없다. 설명을 듣고 나면 꽃 하나, 풀 하나도 소중하게 보인다. 단체관람객의 경우 예약하면 김덕훈 원장이나 다른 직원이 차근차근 재미있게 안내해준다. 1시간부터 4시간짜리까지 다양한 관람 코스도 알려준다. 개별 관람객이면 계절별로 피는 꽃과 풀을 표시하고 설명한 지도를 달라면 된다. 입장료 어른 1만원, 아동 5000원. 농원 내 샌드위치, 김밥 등 스낵과 음료를 파는 매점이 있다. 농원 한가운데 있는 건물에서는 녹차(1만원) 등 전통차를 판다. 경주 커피전문점 '클라라 & 슈만'에서 볶은 커피원두로 드립커피(1만원대)도 내려 팔 계획이다. 문의 (055)633-1221, www.bee-one.co.kr

▲ 통영에서 거제대교를 넘어 오른쪽 둔덕면 방향으로 튼다. 하둔에서 양갈래길을 만나면 왼쪽을 선택한다. '청마생가'란 팻말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보인다. 청마생가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산방산비원이 왼쪽에 있다. 거제대교를 넘으면서부터 '산방산비원' 간판이 여럿 세워져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 산방산에 올라보자. 거제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산이다. 한산도와 욕지도, 비진도 등 다도해 절경이 펼쳐진다. 8부 능선까지 등반 가능하다. 2~3시간 걸린다. 둔덕면 하둔에서 해안을 따라 1018번 지방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해안길 드라이브 코스로 이어진다. '홍포-여차 해안도로'가 백미다. 14번 국도를 타고 조금만 가면 해금강이다. 진시황제를 위해 서불이 불로장생초를 구하러 왔었다는 전설이야 믿거나 말거나지만, 전설이 생길만하다 싶게 경관이 훌륭하다. 문의 거제시 관광과 (055)639-3198

▶ 관련기사 ◀
☞노랑·분홍… 화려한 고산식물 만나러 가요
☞봄기운 받은 식물원… 야생화들 꽃망울 터트리네
☞벚꽃이 진다… 야생화가 핀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이즈나, 혼신의 무대
  • 만화 찢고 나온 미모
  • MAMA 여신
  • 지드래곤 스카프 ‘파워’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