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란치, 88올림픽 당시 남북 분산개최 제안

30년 지난 외교문서 25만여쪽 공개
사마란치, 北 거절 예측하고 ‘88올림픽분산개최’ 제안
패럴림픽 호주에서 열릴뻔…“中, 열차로 서울올림픽 참가 추진”
전두환 정권, 대선 前 김현희 서울행 성사에 안간힘
  • 등록 2019-03-31 오후 12:09:45

    수정 2019-03-31 오후 2:15:45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사회주의 국가의 대회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88 서울 올림픽’의 남북 분산개최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북한이 분산개최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하면서도 제안을 한 것이다.

외교부는 31일 이같은 내용 등이 포함된 30년 경과 외교문서 1620권(25만여쪽)을 원문해제(주요 내용 요약본)와 함께 일반에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주로 1988년과 그 전해에 작성된 것으로,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과 88서울올림픽 등과 관련한 사항들이 포함돼 있다.

사마란치 위원장은 1984년 9월 방한해 한국 고위인사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이 일부 종목의 남북 분산개최안에 대해 부정적이자 “북한은 결코 이 제안을 수락하지 못할 것”이라며 “한국은 ‘안된다’고 하지 말고 ‘IOC가 공식적으로 제안해올 때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용의가 있다’ 정도로만 답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그는 “사회주의국가들이 LA대회 보이콧 이후 서울대회에 오고 싶어하고, 올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단 한 가지 장애물이 북한”이라며 “그래서 한 가지 핑계를 찾고 있는데 만약 북한이 2∼3개 종목 개최를 수락하지 않으면 서울에 갈 구실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마란치 위원장의 예측대로 북한은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서울올림픽은 160개 국가의 참여로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북한을 비롯해 알바니아·니카라과·쿠바·에티오피아·세이셸 등이 불참했다.

이번에 공개된 1985년도 외교 문서. 사마란치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88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사회주의 국가들의 참여를 독료하고자 북한에 분산개최를 제안한 정황 등이 담겨 있다. (자료=외교부)
88서울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이 패럴림픽에 대한 우리 당국의 이래 부족으로 호주에서 개최될 뻔했던 일도 새롭게 밝혀졌다.

1983년 초 호주는 우리 정부에 1988년 장애인올림픽을 자국에서 개최할 의사가 있다고 타진했고, 처음에 우리 관계 당국은 시설 부족 등을 들어 개최권을 호주에 넘기려고 했다. 장애인 보호 등에 대한 국제적 이미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재검토가 이뤄졌고, 1년이 지난 1984년 초에야 우리가 패럴림픽도 치르기로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

또 중국이 서울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단을 열차에 태워 한국에 보내려 했으나, 북한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중국 외교관의 증언이 담긴 문서도 이번에 공개됐다.

전두환 정권이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을 정략적으로 활용하고자 범인 김현희를 대선(1987년 12월 16일) 전에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던 정황도 재확인됐다.

당시 김현희가 붙잡혀있던 바레인에 특사로 파견된 박수길 당시 외교부 차관보는 바레인 측과의 면담 뒤 “늦어도 (대선 전날인) 15일까지 (김현희가 한국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12일까지는 바레인 측으로부터 인도 통보를 받아야 한다”고 보고했다.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늦어도 15일까지 도착’이라는 표현은 다분히 대선(12월 16일)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여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정부의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막판에 이송 일정이 연기되자 박 차관보는 “커다란 충격”이라며 “너무나 많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서 바레인 측을 압박하기도 했다.

전두환 정부가 KAL 858기 폭파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정황은 2006년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확인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음모 폭로공작(무지개공작)’ 계획 문건 등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이밖에 남극기지 건설, 1978 한일대륙붕 협정,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 등과 관련한 문서들도 이번에 공개됐다.

공개된 외교문서의 원문은 외교사료관(서울 서초구 남부순환로 2572)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이 가능하다.

외교문서 공개목록과 외교사료해제집 책자는 주요 연구기관 및 도서관 등에 배포되며 외교사료관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지금까지 총 26차례에 걸쳐 2만6천600여권(약 370만 쪽)의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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