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하정민기자] 아흔을 바라보는 한 억만장자가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를 놓고 도박을 시작했다.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41대 부자이자 보유 재산만 89억달러에 이르는 미국 억만장자 커크 코커리안은 실적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는 GM 주식에 대한 대량 매입 의사를 밝히며 세계 자동차업체를 놀라게 했다. 그는 10년 전인 1995년 크라이슬러에 대한 적대적 인수를 시도한 바 있어 이번 지분 투자가 GM 인수를 위한 전초전이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커코리안이 이끌고 있는 투자회사 트라신다는 4일(현지시간) GM 주식 2800만주를 주당 31달러에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트라신다는 이미 2200만주(3.9%)의 GM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매수가 성사될 경우 커코리안의 GM 지분율은 8.84%로 높아지고 그는 GM의 3대 주주가 된다.
공교롭게도 커코리안이 지분매입 의사를 밝힌 지 하루 뒤인 5일 GM의 회사채는 정크본드로 추락했다. 그간 `위기의 기업`들을 사들여 엄청난 투자수익을 거뒀던 커코리안이 이런 미묘한 시기에 GM 지분을 매입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늘어나고 있다.
커코리안은 아메리칸 드림의 산 증인이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 갖은 고생을 겪은 후 미국을 주름잡는 거부로 변신했다`는 전형적인 성공 스토리를 갖고 있다.
아르메니아 출신 이민자를 부모로 둔 그는 1917년 캘리포니아 프레스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가정부와 과일재배 등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결국 커코리안은 16세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권투에 입문한다. 커코리안은 퍼시픽 지역의 아마추어 웰터급 챔피언에도 오르지만 체격이 너무 왜소해 프로 전향에는 실패한다.
2차 대전 때 영국 공군으로 참전한 경력이 있는 커코리안은 1945년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항공 사업을 시작한다. 항공회사를 설립한 그는 라스베가스로 가기를 원하는 고객들을 실어나르며 돈을 모았다. 그는 단발비행기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15년 후 이 항공사를 매각할 때 100만달러를 받았다.
이 돈은 커코리안이 세계적 거부의 반열에 오르는 `종잣돈` 구실을 했다. 커코리안은 1962년 100만달러도 채 안 되는 돈으로 네바다 사막의 땅 80에이커를 사들여 라스베가스 거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1967년에는 카지노를 매입한 커코리안은 이를 라스베가스 최대 규모 카지노인 `MGM 미라지`로 키워냈다.
MGM 미라지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갑부된 커코리안은 이후 화려한 투자실적으로 기업 사냥꾼의 명성을 떨친다. 그는 1960년대 트랜스인터내셔널 항공에 300만달러를 투자한 후 이를 1억4900만달러에 매각한 바 있다. 미국 영화사 MGM 투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트라신다를 통해 MGM 지분을 세 차례나 팔고 사들였으며 지난해 MGM 지분을 일본 소니에 매각, 무려 31억달러를 벌어들였다.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크라이슬러 투자도 빼놓을 수 없다. 커코리안은 1990년 크라이슬러가 대대적인 실적 부진에 빠지자 크라이슬러 주식 2200만주를 매수했고 이듬해 600만주를 추가로 매입했다. 1992년 커코리안은 크라이슬러 대표직을 요구했으나 이사회에 의해 묵살당하자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1995년 크라이슬러가 66억달러의 현금을 확보하자 커코리안은 주주들에 대한 현금 보상을 요구하며 추가로 주식을 매입했고 몇 달 후 전격적으로 적대적 인수를 선언했다. 양측의 싸움은 크라이슬러가 커코리안에게 이사 자리를 줌으로써 일단락됐지만 크라이슬러 경영진은 그와 싸우느라 경영에 제대로 전념할 수 없었다.
크라이슬러가 독일 다임러와 합병한 후에도 양측의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커코리안은 1998년 다임러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할 때 이에 찬성했으나 이후 "다임러가 합병 당시 약속을 어겨 투자자들을 속였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통상 합병을 할 경우 인수 업체에 프리미엄을 주고 사들이는 것이 관례지만 대등 합병을 함으로써 주가가 떨어져 큰 손해를 봤다는 것. 커코리안은 2000년 제기한 이 소송에서 패소했지만 항소를 제기해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커코리안의 이런 전력 때문에 GM과 커코리안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커코리안은 GM 추가 투자 의사를 밝힌 후 "단순한 투자로 GM의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분위기다.
GM의 3대 주주로 떠오른 커코리안이 크라이슬러 때와 마찬가지로 이사회에 진출할 것이며 이사회에서 GM이 자회사를 매각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이란 분석이 많다. 커코리안은 크라이슬러 이사로 재직할 당시에도 주주배당을 늘렸고 트라신다의 직원을 크라이슬러의 이사진으로 앉히는 등 경영에 깊이 관여한 바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커코리안의 지분 매입이 GM 경영진에게는 `악몽`이 되겠지만 주주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콜니체르 자산운용의 존 콜니체르 회장은 "커코리안으로 인해 GM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며 경영악화의 원인이 되고 있는 노조에 대해서도 더욱 강경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업에서는 성공만 거듭한 커코리안이지만 그의 개인사는 별로 행복하지 않다. 세 번 결혼한 그는 모두 이혼했고 세 번째 부인과의 이혼 소송은 두고두고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단골 스캔들로 남았다.
1997년 커코리안은 무려 48세 연하의 테니스 스타 리사 본더와 결혼했지만 한 달 만에 파경을 맞았다. 1986년 테니스 장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리사가 아기를 가지자 정식 결혼했지만 이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특히 이혼소송 중 커크의 불임 사실과 리사의 불륜이 드러났고 리사가 딸의 양육비로 매월 32만달러의 엄청난 양육비를 요구한 것 또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커코리안과 리사의 이혼을 갑부들의 이혼 중 가장 `치졸한` 이혼으로 꼽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