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간 밥’ 빛나는 월정사
공양간 요리를 만들고 있는 봉평 보살(이름은 묻지 말고 이렇게만 불러달라 하는 수줍은 강원도 토박이 중년 아주머니다)은 “월정사는 오대산의 가장 큰 절로 찾는 이들이 아주 많기 때문에 일반인도 즐길 수 있는 사찰 요리를 많이 준비한다”고 했다. 불교에서 금하는 육류 대신 버섯과 양배추, 향 강한 파·마늘 대신 ‘천가(나팔꽃 나물)’를 넣어 맛을 낸다. 이날 점심 공양에는 커리와 우엉 겉절이, 김치, 물미역 무침, 근대 된장국 등이 함께 나왔다. “조미료를 넣지 않아 심심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향긋한 커리와 아삭한 우엉 겉절이가 나름 잘 어우러져 입에 착착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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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에 있는 산사에서는 신선초랑 곰취 장아찌를 담근다는데…’. 사찰음식을 끈질기게 연구해온 북촌생활사박물관 이경애 관장이 출발 전 귀띔해준 게 생각나 “신선초·곰취 장아찌는 혹시 없나요?”라고 넌지시 물었다. 봉평 보살은 “신선초? 그건 귀한 거라 아무 때나 달란다고 내주는 게 아닌데…”라면서도 냉장고에서 장아찌 통 두 개를 꺼내 신선초와 곰취 장아찌 몇 개를 맛보게 해줬다. 4월에 30여 명 직원들이 산에 올라 직접 딴 신선초에 간장을 끓여 세 번 부어 만든 장아찌는 8개월 남짓한 세월을 묵었는데도 쌉쌀한 향이 남아있고 질긴 듯 오물오물 싱싱하게 씹힌다.
“내륙지방에서 신선초(산마늘, 혹은 맹이나물이라고도 불린다)가 나는 곳은 오대산뿐일걸요. 울릉도에서도 나고, 얼마 전에는 인공재배에도 성공했다고 하지만 오대산 신선초가 향이 가장 짙어요. 산이 깊어 ‘곰추(곰취)’도 오대산 것이 가장 향긋하다고들 해요. 봄에 많이 따다가 일부는 쌈 싸먹고 나머지는 장아찌를 담가 놓고 1년 내내 조금씩 내지요.”
깻잎 싸먹듯이 밥에 얹어 덥석 먹어서는 짠 간장 맛 탓에 신선초 향을 제대로 느끼기 힘들다. 잘게 찢어 밥 한 숟갈에 손톱만한 크기로 얹어 먹어야 간이 딱 맞는다. ‘하늘이 내린 귀한 음식’이라는 뜻의 ‘신선초’는 한의학에서 위염, 변비, 불면증 등에 좋고 월경 불순, 고혈압, 동맥경화 등에도 효과를 보인다고 일컬어진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지장암이라는 비구니 사찰이 있는데 공양간 음식으론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지요. 월정사보다는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신선초나 곰취 장아찌도 더 쉽게 맛볼 수 있고요.”
월정사 마당서 만난 한 불자(佛子)의 조언을 따라 지장암으로 향했다. 지장암은 전나무로 유명한 오대산 중에 특이하게도 소나무가 사방을 두르고 있는 아담한 비구니 사찰이다. 원주 스님의 안내에 하얗게 쌓인 눈 위에 놓인 20여 개의 장독대로 향했다. ‘된장 04’, ‘더덕 장아찌 02’, ‘오이 장아찌 04’…. 내용물을 표시하는 흰 스티커 옆에 붙은 숫자는 장아찌나 장을 담근 해란다. 그렇다면 더덕 장아찌는 5년이나 됐다는 뜻인데, 무르거나 상하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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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많은 중생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스님이 고추장이 잔뜩 묻은 더덕 장아찌를 하나 들어 먹어보라고 권한다. 다섯 번의 ‘사계(四季)’을 겪으면서 느릿느릿 고추장이 배어 들어간 더덕은 놀라울 정도로 아삭하다. 다른 반찬 없어도 밥에 슥삭슥삭 비벼 먹으면 밥 한 공기가 뚝딱 사라진다. 고추장은 맵다기보다는 고소한 편이다. 아삭한 장아찌와 벌건데도 맵지 않은 고추장의 비결은 비구니 스님들이 대대로 전해준 ‘비법’이란다. 소설가 윤대녕이 산문집 ‘어머니의 수저’에서 장아찌에 대고 읊조린 ‘독 속에 은둔하는 자들’이란 표현이 어쩜 이렇게 딱 들어맞을까. 원주실 아래 새로 마련해 깔끔한 공양간에 밥 때를 맞춰 찾아가면 마음 넉넉한 스님들이 이 귀한 장아찌들 중 일부를 맛보게 해준다.
■강원 영월 금몽암 강원도식 공양
단종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에 자리잡은 포근한 분위기의 보덕사. 거기서 400m쯤 더 들어가면 길 끝에 금몽암이라는 아주 작은 비구니 사찰이 나온다. 규모는 작지만 역사는 500년에 달하고 풍파 많은 시간 속에서도 불타거나 무너지지 않아, 아담한 사찰의 오래된 목조는 묵은 향기를 위풍당당 뿜어낸다. 금몽암 공양간은 진한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자칭 ‘완벽한 영월 토박이’인 공양주 수덕화 보살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소박하되 푸짐한 강원도식 공양으로 유명하다.
겸손히 내놓은 밥상은 흰 식기에 담긴 풋풋한 외양과 달리 내용물이 알찼다. 울타리 콩과 밤을 아끼지 않고 넣은 ‘강원도식 영양밥’에 청국장 김칫국을 넉넉히 넣어 비벼 먹으니 염치 불구한 ‘쩝쩝’ 소리가 절로 난다. 젓갈과 파·마늘을 넣지 않아 정갈하게 익은 김치와 고소한 두부 구이, 땅콩 무침을 살짝 곁들여 먹은 후에는 구수한 숭늉까지 내주었다. 평일에는 공양간과 함께 있는 부엌에서 요리를 하지만 동지나 석가탄신일 같은 ‘큰 날’에는 마당에 있는 가마솥에 장작으로 불을 뗀다고. 올해 동지(12월 22일)에도 가마솥에서 붉은 팥죽이 부글부글 끓을 것이다. (033)372-0004
■전남 영암 망월사 토종무 반찬
망월사 정관스님은 전라남도에서도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밑반찬을 맛나게 만들기로 소문난 분. ‘스님표 장아찌’나 토종무로 만든 ‘무왁저지’가 특히 유명하다.
정관 스님 표 ‘무왁저지’는 일단 깨끗이 씻은 무를 껍질째 큼직큼직하게 썬 후, 커다란 가마솥에 들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기름이 끓을 때쯤 무를 넣고 볶아 익혀서 만든다. 무에 기름이 스며들 때쯤 고춧가루, 깍둑썰기로 썬 홍당무, 네모나게 자른 다시마, 저민 생강과 물에 불린 표고버섯을 함께 넣고 고춧가루 물이 재료에 밸 때까지 다시 볶아준다. 그 후 생수와 국간장을 입맛에 맞는 비율로 섞어서 재료가 자박하게 잠기도록 가마솥에 붓고 30~40분간 푹 졸이면 무왁저지가 완성된다. 정관스님은 “무를 졸일 때 장작불을 계속 은근하게 지펴줘야 하고, 물을 부은 후엔 휘젓지 말고 솥바닥부터 뚜껑 쪽의 무조각까지 고르게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061)473-1491
■경남 산청 금수암의 ‘퓨전 사찰음식’<사진>
경남 산청군 지리산 자락의 금수암에서 사찰음식을 만드는 대안스님은 ‘퓨전’을 표방한다.
대안스님은 “원래 사찰음식은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드는 손맛으로 먹지만, 현대인의 입맛을 고려해 오븐이나 전자레인지를 이용해서도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사찰음식을 개발했다”며 “깨나 참기름, 소금, 들깨가루 같은 양념을 넣지 않고도 재료의 맛을 충분히 살려서 고소하고 달큰한 맛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금수암은 수시로 대안스님에게 직접 퓨전 사찰음식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강좌도 연다. (055)973-6601
절밥, 저도 먹을 수 있나요?
‘독실한 신자도 아닌데, 그냥 밥만 먹고 와도 될까?’잘 모르는 절에 가서 밥을 먹으려면 왠지 주눅이 드는 게 사실. 그러나 많은 사찰은 생각보다 인심이 후하다. 거의 모든 사찰은 공양간에서 돈을 받지 않고 밥을 준다. 베풀어주는 음식을 감사히 먹는다는 마음으로 예(禮)를 갖춰야 한다. 식사 시간즈음‘밥북’혹은‘밥목탁’소리가 나면 공양간으로 가서 밥을 받은 후 식사를 준비해준 공양간‘보살’께 합장 인사한다. 밥을 남기지 말고 조용조용 먹되 자기가 먹은 그릇은 자기가 씻는다. 공양간에 시주함이 있으면 약간의 돈을 넣어 성의를 표시하면 좋지만, 의무는 아니다. 불교에서는 밥 먹기 전에 다음과 같은‘오관게(五觀偈)’를 깊이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진부 IC로 나오자마자 ‘월정사’ 표지가 계속 나온다.
문의: 월정사 (033)332-6661 www.woljeongsa.org, 월정사 지장암 (033)332-6668
‘공양간 밥 맛있는 절’ 추천=북촌생활사박물관(www.bomulgun.com) 이경애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