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홀딩스와 자회사 극동건설이 법정관리 신청했을 때 이미 신평사의 신용등급 하락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웅진홀딩스의 파산 선언은 시장의 예상을 뒤엎고 갑작스럽게 이뤄진 만큼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컸기 때문이다. 신평사들은 부랴부랴 웅진홀딩스의 신용등급을 D등급으로 하향조정했다.
국내 신평사들이 지속적으로 웅진그룹의 위험성을 경고하기는 했지만 선제 대응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이데일리는 지난달 4일부터 10일까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은행 등 금융시장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16회 이데일리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Survey of Credit Ratings by Edaily)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신평사 등급신뢰도는 5점 만점에 3.13점을 기록했다. 지난 15회때 3.24점보다 하락했다.
신용평가사들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걷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난 9월 발생한 웅진사태로 결국 상승세가 꺾이면서 2년 만에 등급 신용도 점수가 반락했다.
웅진 사태가 예측 불가능한 돌발이슈였다는 점에서 신평사에 대한 일부 동정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신평사들의 신뢰성에 치명적인 흠집이 가해진 게 사실이다. 단순히 단발성 이벤트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사안이 갖는 의미가 크다.
경고는 했다...하지만 등급은 불변
웅진그룹의 위험성은 어제 오늘 언급 됐던 게 아니다. 극동건설에서 파생된 리스크가 웅진그룹 전체로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는 오랫동안 시장에서 제기됐던 부분이다. 하지만 웅진코웨이의 매각 결정으로 이러한 우려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 국내 신평사 가운데 한국기업평가와 NICE신용평가가 웅진홀딩스에 대해 A-와 BBB+의 등급을 부여한 상태였다.
한편으로는 웅진그룹의 부도사태가 시장에 준 충격에 비해서 등급 신뢰도 하락폭이 크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SRE 자문위원은 “A등급의 회사가 파산신청을 한 게 꽤 오랜만에 있는 일인데 생각보다 하락폭이 크지 않다”며 “신평사들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그룹이 전격적으로 결정하면서 신평사들에 대한 비판 정도가 예상보다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웅진그룹의 법정관리 신청이 신평사의 예상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일부 동정론이 형성된 것이다.
주니어 크레딧애널리스트들이 느끼는 실망감은 시니어들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7년차 이상 시니어 크레딧애널리스트들의 신뢰도 점수는 지난회 2.72점에서 2.89점으로 오히려 오른 반면, 1~6년차 주니어 크레딧애널리스트들의 점수는 지난회 3.57점에서 이번회 3.19점으로 대폭 하락했다. 이번 16회 SRE의 경우, 주니어 비중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들의 부정적인 의견이 강하게 설문 결과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한 SRE 자문위원은 “웅진그룹의 경우 평가사들이 나름대로 지속적인 경고를 했다”며 “하지만 A-등급을 받던 그룹이 순식간에 D등급으로 전락하면서 다소 경험이 적은 주니어들이 입은 충격이 시니어들보다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주니어 실망감 더 컸다”
특히 이번 SRE에서는 1~6년차의 주니어급 크레딧애널리스트들의 참여도가 부쩍 늘었다. 지난 회 28%(30명)에서 이번 회에는 36%(40명)로 눈에 띄게 증가한 모습이다.
한 자문위원은 “젊은 크레딧 애널리스트들이 SRE 참여 의사를 강력하게 밝혔다”며 “새로운 의견들을 담기 위해서 젊은 크레딧 애널리스트 20여 명을 설문 참여 리스트에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참신한 시장의 의견은 받아들이되 업무 전문성은 더욱 높아졌다. 회사채 관련 업무가 81% 이상을 차지한다는 응답자 비율이 지난 회 44%(47명)에서 이번 회에는 52%(58명)로 대폭 증가했다. 또한 신용평가사 업무수행 과정을 보통 이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응답한 설문자도 95%로 지난 회(96%)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SRE 어떻게 진행되나
SRE는 금융시장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국기업평가, NICE신용평가, 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들이 지난 6개월동안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시장의 만족도와 개별기업 신용등급의 적정성에 대해 평가하는 설문조사이다.
이데일리는 지난 2005년 이후 매년 4월과 10월 두차례에 걸쳐 SRE를 실시했고 올해 16회를 맞이했다. SRE 설문지는 신용평가에 대한 신뢰도, 신용평가사들의 업무평가, 신용평가사들의 서비스 만족도, 개별기업 신용등급 적정성 등과 관련해 총 6개 항목, 22개 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SRE에는 설문에 대한 신뢰도와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각개 금융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단이 참여한다. 자문단은 설문대상자 선정과 설문지 확정 등 전 과정에 참여하고 있으며, 설문조사를 통해 얻어진 결과를 토대로 자문단 회의를 열어 심도있는 분석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16회 SRE 자문단에는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에서 활동중인 현직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10여명이 참여했다.
또한 ‘신용등급의 적정성에 대해 이견이 있는 40개 기업 항목’(이하 워스트 레이팅)은 시장의 관심과 이슈를 고려해 이데일리와 자문단이 협의를 통해 매번 갱신하고 있다. 아울러 이번 16회의 경우 독자신용등급의 도입 지연과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신용평가 결과에 대한 공시 강화와 관련된 질문을 새롭게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