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직, 직장 내 괴롭힘 첫 인정…“사용자 책임 인정”

대법 “사용자, 골프 캐디에 1.8억 배상”
특고,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을 길 열려
시민단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불인정 한계”
  • 등록 2024-05-26 오후 1:21:59

    수정 2024-05-26 오후 1:21:59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특수고용직인 골프장 캐디의 직장 내 괴롭힘을 처음으로 인정하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는 사업주에게 특수고용직 등에 대한 보호 의무와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며 높게 평가하면서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부정한 점은 한계로 짚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6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지난 17일 캐디 배모씨의 사망 사건이 대해 유족 측이 골프장 운영사인 건국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총 1억80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유지했다.

배씨는 2019년 7월부터 건국대가 운영하는 한 골프장에서 일하던 중 상사로부터 지속적 괴롭힘을 당하다 2020년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유족들은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고양지청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으나 노동청은 “배씨가 특수고용직으로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유족들은 건국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배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아니지만 건국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배상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가해자가 무전으로 배씨에게 모욕적 발언이나 공개적 질책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후 배씨가 항의 취지로 인터넷 게시판에 글까지 남겼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글을 삭제한 디 배씨를 카페에서 탈퇴시켰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의 판단 역시 같았다. 재판부는 “골프장 캐디는 특수형태근로자로 사업주인 피고는 이 사건 골프장의 경기보조원이었던 망인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고 가해자의 불법행위를 알 수 있었음에도 망인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망인을 위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 역시 상고를 기각하며 이러한 판결을 확정했다.

직장갑질119는 이번 확정 판결로 특수고용직의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받을 길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그간 프리랜서·특수고용직들은 직장 내 괴롭힘에 노출되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었다. 직장갑질119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월 2일부터 13일까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프리랜서·특수고용직 14.3%는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번 판결을 통해 특수고용직들 역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회사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포괄해 사용자에게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로 그 보호 대상과 범위가 확장됐다는 것이 단체의 설명이다.

다만 재판부는 배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받아들이진 않았다. 직장 내 괴롭힘은 인정됐지만 근로기준법상 보호받는 근로자는 아니라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해 직장갑질119는 “배씨는 법인으로부터 받은 태블릿PC를 통해 구체적 지휘 감독을 받으며 일했고 캐디피에 포함되지 않는 사실상 무급노동을 강요받기도 했다”며 “그럼에도 이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번 판결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직장갑질119 대표 윤지영 변호사는 “사업주에게 종속되어 일하는 특수고용노동자, 배달노동자는 일반 근로자와 다를 바 없다”며 “이들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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