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계약할 때 정OO이 자기 아들이랑 같이 왔더라고요. 아들 보여주면서 ‘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등기부 등본 상에서도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아서 계약을 했는데, 이제 와서 상황을 보니까 그게 아니었던 거죠.”
“지난해 11월에 재계약을 했는데 전세 사기가 너무 많아서 불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전세 보증보험을 들어달라고 했는데 정OO가 직접 나와서 ‘괜찮다. 내가 건물 한두 개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계약을 연장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부터 연락이 두절됐어요.”
“정OO 아들 명의로도 건물이 여러 채인데 자꾸 사고가 터지니까 건물 관리인한테 (아들이) ‘돈이 없다. 감옥 가면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정OO는 나중에 적반하장 식으로 ‘돈이 없는데 어쩌라는 것이냐’,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나라가 잘못한 것’이라는 식으로 나왔습니다.”
최근 경기도 수원 일대에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수원 전세사기 의혹’ 사건의 피해자들이 이데일리에 털어놓은 말이다. 수원과 화성 등 수도권에서 부동산업을 하던 정모씨는 가족과 법인 등 명의로 수백여 채의 전세방을 돌리다 지난 8월 돌연 잠적했다. 이후 경기 전세피해지원센터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400건을 넘어섰고, 경찰에 접수된 고소장도 130여건이 접수되는 등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임차인들은 대부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까지 전세 대출을 받은 상태이기에 매달 수십만원의 전세 대출 이자를 감당하느라 고통받고 있다. 이데일리와 만난 세입자들은 5000만원에서 1억 8000만원까지 전세 대출을 받았다고 했다. 정씨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임차인들은 고스란히 빚더미에 올라 앉게 된다.
15일 경기도에 따르면, 경기 전세피해지원센터에는 지난 13일까지 정씨와 관련해 접수된 임차인 피해 신고는 208건이다. 신고인 대부분은 사회 초년생인 20~30대 청년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가 확산되자 경기도는 국토교통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정씨 일가의 소유 주택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앞서 피해자들이 모여 자체 조사한 정씨 일가 주택은 총 671가구이며, 예상 피해액이 확인된 가구는 394세대로 약 475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피해 임차인들의 자체 조사일 뿐, 실제 정씨 일가와 법인 등이 가진 주택은 명확히 알려진 바 없다. 정씨가 가진 법인만 18개여서 추가 피해 주택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에 도에서는 선제적으로 정씨 일가 주택과 임차인 현황을 파악해 대응할 방침이다.
경기도가 추정한 피해자는 약 760여명이다. 도는 자체적으로 피해 세입자들에 긴급 생계비 100만원을 지원하고, 문제가 생긴 건물에 경기주택도시공사에서 긴급 관리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미 일부 정씨 일가의 건물은 2~3달 전부터 관리인단이 전원 퇴사하고, 이미 관리비로 지급한 수도 요금이 체납되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경찰은 정씨 부부와 그 아들에 대해 출국금지와 출금 금지를 조처하고 이들의 행방을 파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