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워치)금리인하 무용론 홍보하나

  • 등록 2004-11-11 오전 9:48:17

    수정 2004-11-11 오전 9:48:17

[edaily 강종구기자] 벼랑끝에 걸린 경제가 구해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번지수가 틀렸다. 한국은행은 "우리는 별로 도움이 안돼요" 라고 말했다. 11일 금통위가 끝난 후 이런 식의 감상문을 쓰게 되려나. 한국은행의 최근 행보가 수상하다. 스스로에게 주어진 최고의 정책수단인 콜금리의 능력을 스스로 깎아 내리느라 여념이 없다. "콜금리를 내려봐야 실물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워낙 많이 들어서 이제는 귀담아 들리지도 않는 말이지만 최근 한은의 콜금리 무용론은 조직적인 느낌마저 준다. 10일 발표된 `10월 금융시장 동향`보고서. 8월 콜금리 인하 이후에도 기업과 가계의 대출은 실질적으로 줄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은행들도 보수적인 대출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중소기업 등 신용위험이 높은 대출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결국 8월 이후 은행의 신용창출 능력은 더 떨어졌으니 금리인하의 약발이 없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를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통화승수 추이다. 통화승수는 주요 통화량이 한국은행의 본원통화의 몇 배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신용창출이 원활이 이루어지면 통화승수는 높아지고 그렇지 않으면 낮아진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올들어 단 한번도 금융시장을 설명하기 위해 통화승수를 들고 나온 적이 없었다. 금융시장 동향이나 실물경제의 단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심하게 말하면 `별 의미가 없다`고 폄하돼 왔다. 어쨌든 통화승수는 한국은행의 콜금리 인하 무용론을 아주 적절하게 이해시켜 줬다. 올들어 꾸준히 상승하던 유동성(M3)기준 통화승수는 콜금리 인하가 단행됐던 8월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뒤 9월과 10월 내리 하락했다. 본원통화가 늘어난 것에 비해 유동성은 덜 늘었다는 뜻이다. 통화승수가 들어오는 바람에 최근 수개월동안 제공되던 자료중 한가지 빠진 것이 있다. 보고서의 페이지수가 고정돼 있는 것은 아닐텐데 계절변동 조정기준 전기비 통화증가율이 생략됐다. 연속적인 통화의 증감추이를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인데 한은 관계자의 설명대로라면 "변동성이 너무 크게 나타나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어" 빠졌다. 계절조정을 한 전기비 통화증가율은 최근 몇달동안 아주 급격한 하락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바로 전달과 비교한 변동율을 연율화하다 보니 아무리 3개월 이동평균값으로 스무딩을 한다고 해도 전년동기와 비교하는 것에 비해 훨씬 더 드라마틱해 보였다. 그런데 이번달에는 달라졌다고 한다. 관계자는 "계절조정을 하기 전 M3는 연율로 전월에 비해 10% 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9월 M3 평균잔액이 1277조원이니 10조원 가까운 통화가 증발됐다는 것인데 추석이 있었던 9월에 11조원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두달 연속 큰 폭의 증가세를 기록한 셈이다. 지난해 이후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한은의 다른 관계자는 "M1이 늘어난 것은 금융권내에서의 자금이동 때문이고 M3가 증가한 것은 전에 비해 정부부문의 환수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물경제로 돈이 간 것은 아니며 따라서 의미가 없는 증가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도 전기비 통화증가율 추정치를 빼고 통화승수를 집어 넣은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가 있다면 설명을 달아 주면 되는 일 아닌가. 또 통화승수 역시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다. 1000조가 넘는 M3를 37조원 정도인 본원통화로 나눈 값이 승수인데 본원통화는 한국은행의 통화량 조절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하면 본원통화가 감소하고 발권력을 동원해 화폐를 찍어내면 본원통화는 직접적으로 증가한다. 본원통화는 올해초 38조원 정도였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7월 36조원 근처까지 떨어졌다가 9월에 37조원대로 올라섰다. 10월에도 5000억원 이상 늘었다. 9월과 10월 통화승수의 연속 하락은 M3보다는 본원통화의 증가에 기인한 것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금리변동이 기업활동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분석 보고서를 냈다. 기업들이 외환위기 이후 금리하락으로 수지나 투자 그리고 자금조달 면에서 엄청난 수혜를 입었으나 앞으로 추가적 금리하락이 투자를 유발하는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내용이었다. 오히려 GDP가 늘어나거나 환율이 내려야 투자가 더 크게 늘어난다는 설명도 보탰다. 금리하락이 기업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한 이 보고서는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분석의 가치를 인정받고도 남음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향후 금통위원들의 통화정책 결정에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물론 한국은행 집행부가 콜금리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콜금리 결정은 금융통화위원 7분의 몫이다. 재정정책과 외환정책과의 조화도 고려할 것이고 중국과 미국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싼 거대한 경제흐름도 참고할 것이다. 금융통화위원은 정부뿐 아니라 한국은행 집행부에도 독립적이라고 믿는다. "콜금리 내려봐야 효과가 있나요 뭐" 요즘은 한국은행내 어느 누구와 얘기를 해도 이런 얘기를 듣는다. 그럴 때마다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한국은행이 갖고 있는 최고의 경기 및 물가 조절 수단을 스스로 무시하면 누가 한국은행의 정책을 인정해 줄까 싶어서다. 연말이 갈수록 한은 밖의 콜금리 인하 기대는 높아만 가고 있다. 지난달 이후 환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국제유가도 고점을 지나 상승세가 꺾인 듯 하면서 더욱 그렇다. 채권시장에서도 "이달은 아니어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향후 경제전망이 어둡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내년 경제전망을 최근 준비하고 있는데 숫자가 안나와도 너무 안나온다"며 "정말 걱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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