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은 마천루 밀집지역으로 외국계 기업, 금융사 등이 빌딩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고 도쿄타워도 지척이다. 신한은행 현지법인 본점이 입주한 32층짜리 `시로야마 트러스트 타워`에 약 한달 전 문을 연 신한은행 일본법인, SBJ 은행이 입주해 있다.
◇ 신한은행, 씨티 이어 사상 두번째 외국계 은행
건물 엘리베이터 입구에서는 들고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한다. 도무지 은행 영업점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분위기. 하지만 9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고층 오피스 빌딩에 일본인 고객들이 번호표를 쥐고 창구 앞 의자에 앉아 끈기 있게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담한 규모의 지점에 마련된 약 15개의 대기석은 꽉찼다.
SBJ 전필환 부장은 "초기에 비해 기다리는 고객이 많이 줄어든 것" 이라고 했다. 9월 14일 개장 직후 몇주간은 빌딩 복도에까지 고객들이 길게 줄을 서서 종일 북새통이었다. 점잖은 오피스 빌딩에서 이런 광경이 펼쳐지자 건물주 측이 SBJ에 항의를 해오기도 했다.
성황은 개업 기념 특판예금 때문이다. 다른 일본 은행들보다 0.1~0.2% 포인트 금리를 더 주는데, 워낙 초저금리 일본 고객들은 여기 민감하게 반응했고 개업캠페인은 대성공이었다.
은행 인가를 받았으므로 SBJ에 예치한 예금은 1인당 1000만엔까지 예금자 보호를 받는다. 일본인들이 `신한`이라는 이름을 알 리 없지만 신문 광고를 보고 금리 매력에다 예금자 보호도 된다고 하자 1000만엔 가량 시험삼아 맡겨본 것이다.
10월말 현재 이용자 1만2000여명, 신규고객의 97%가 일본인이다. 일단 소매영업의 가능성을 시험해 본 신한은행은 예상을 넘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자 다음 단계로 나갈 예정이다. 현재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지역에 3개 지점이 있는데 오사카와 도쿄에 지점을 한개씩 더 내고, 곧 요코하마에도 신규 점포를 열 계획이다.
인가를 얻는데 2년 걸렸다지만 이는 본격적인 실무 작업에 걸린 기간이고, 사실 일본에 은행을 내는 것은 신한은행의 매우 오래 된 꿈이다. 재일교포들이 은행을 설립하려고 수차례 시도했다가 여의치 않자 자금을 본국(우리나라)로 들여와 세운 것이 오늘의 신한은행. 20여년만에 재일교포들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박 부사장은 "어렵게 얻은 인가인 만큼 빠른 속도로 영업을 확장하는 것보다는 감독리스크에 빠지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는 것에 보다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SBJ가 생기기 전까지 일본 유일의 외국계 은행법인이던 일본 씨티은행은 최근 일본 금융당국으로부터 1개월간 신규 소매영업을 정지당하는 중징계를 맞았다. 돈세탁과 조직범죄 거래를 감시할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씨티가 영업정지를 당한 것은 2004년에 이어 벌써 두번째.
이렇게 일본 금융당국은 감독이 엄격하고, 조금이라도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가차없이 중징계를 내린다. 외국계 은행으로서 후발주자인데다 갓 출발한 신한은 당국과의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평판리스크를 지지 않도록 섬세하게 신경을 써서 이같은 부분을 관리하고 있다.
◇ 외환은행, 원화예금으로 현지고객 공략
외국계 은행 지점이 일본 현지에서 주재원이나 한국기업, 교포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영업하기는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존 영업방식에 머문다면 한계도 그만큼 분명하다. 수요가 정해져 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가 안좋아지면 이것이 고스란히 지점 실적으로 반영이 된다.
주재중 외환은행 도쿄지점장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교포와 주재원 현지상사라는 기존 영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상품과 방식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궁리의 결과물 중 하나가 원화장기예금이다. 이 상품의 타깃은 현지 일본인이다. 저금리 국가여서 돈을 벌만한 투자처가 별로 없고, 그런 탓인지 보통 개인들도 환차익을 노리는 환거래를 적지 않게 한다. 1년만기 3.5%로, 엔화 예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원화 정기예금은 이같은 환차익 투자자들을 타깃으로 한다. 한국과의 거래가 있는 기업들이 갖고 있는 원화자산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물론이다. 출시 한달여 만에 90억여원을 유치, 가능성을 봤다.
주 지점장은 "국민소득 규모 등 한국의 경제 체력보다 월등한 체력을 갖고 있는 금융시장 선진국에 나와서 영업하기는 쉽지 않고, 일본계 은행과 자금조달 비용 등에서 핸디캡이 많아 좋은 비즈니스 기회가 있어도 참여하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많다"며 "그러나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고 영업을 하고 있으며 원화 정기예금을 출시한 것도 이같은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 도쿄지점 역시 리먼 사태가 가라앉은 이후 이제 내년부터 어떻게 해외영업점에서 수익을 올릴 것인가를 고심하는 중이다. 최근 일년간은 리스크 관리에 역점을 뒀고, 다행히도 도쿄지점에서는 큰 부실이 한건도 없었다.
한국계 금융사에 유일한 재일교포 출신으로, 합병 전 서울은행 때부터 지점장을 맡아 최장수 점포장인 윤건인 하나은행 도쿄지점장은 "경쟁을 하기에 좋은 여건은 아니지만 골프장이나 부동산 투자와 같은 부문의 자문 업무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밖에도 마진이 높은 개인 무담보 소액신용대출, 즉 카드론 업무에 관심을 갖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