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환의 크레딧스토리)신용위기와 정보투명성

  • 등록 2004-11-01 오전 10:00:00

    수정 2004-11-01 오전 10:00:00

[edaily] 최근의 난치병 연구를 보면 병의 본체가 아닌 매개체나 전달물질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꼭 난치병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금융시장의 치명적인 질병인 `신용위기`에 대한 예방이나 처방도 마찬가지다. 모든 신용위기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것은 바로 정보의 투명성문제. 위기의 본질은 아니지만 위기의 전달과 확대과정에서 촉매와 같은 역할을 한다. 정보투명성만 잘 관리해도 신용위기의 대부분은 사전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신용위기 이후의 정보투명성 관련 제도 개선 신용위기에서는 `외양간 고치기`가 매우 중요하다. 위기의 원인을 찾아내고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보투명성과 관련한 제도개선은 그야말로 필수 코스다. 미국 엔론사태 이후 `외양간 고치기`의 하일라이트는 기업과 투자자 사이의 정보비대칭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사반스-옥슬리(Sarbanes-Oxley)법의 제정이었다. 이후 Sarbanes-Oxley법은 기업 투명성에 대한 국제기준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의 공정공시제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서 발생한 신용위기에서도 비슷한 경험들이 있다. 95년 고려시멘트 부도(덕산 사태: 친족 계열사에 대한 과도한 지급보증공여와 축소보고)를 계기로 은행의 여신거래정보가 본격적으로 집중 관리되기 시작했고, 외환위기 이후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DART)이 도입되었다. 지금은 지난해 카드위기의 도화선이 되었던 기업어음(CP)의 거래정보를 집중관리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한창 진행중이다. 회계제도 역시 이러한 위기를 겪으면서 지속적으로 보완되어 왔다. 덕산사태는 주석사항과 회계감사 검토의견 강화의 계기가 되었고, 외환위기는 결합재무제표와 연결재무제표의 도입 및 강화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연결재무제표를 주재무제표로 하자는 움직임이 활발한데 이 역시 SK글로벌 및 카드사태와 무관하지 않다. ◇ 평소엔 `묵인`하다 위기 터지면 `패닉` 그러나 정보투명성 이슈에 대한 시장의 자세는 참으로 묘하다. 평소의 시장은 정보투명성 이슈에 대해 관대한 수준을 넘어서 아예 언급을 기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가도 일단 문제가 터지면 갑자기 태도가 돌변, 마치 전염병자 대하듯 극단적인 반발을 보이곤 한다. 이러한 모순된 기회주의적 태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왜 이러한 극단적 현상이 빚어질까?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SK글로벌의 해외부문 부실은 갑작스러운 이슈가 아니었다. 해외현지법인 재무정보의 비공개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있어 왔다. 그런데 만일 SK글로벌이 선선히 정보공개를 했다면 시장이 과연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었을까? 패닉에 따른 비용증가와 자금조달 차질로 경쟁에서 밀려났을 것이다. 다른 신용카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공개 수준이 높았던 외환카드가 먼저 디스카운트 되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기업은 정보공개 요구를 무시하기 마련이다. 결국은 관성에 빠져서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조차도 희박해진다. 이러한 관성은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특별한 계기`가 만들어지기까지 정보투명성 이슈를 거의 자각하지 못한다. 어떤 선지자가 이를 지적하더라도 절대적인 권위가 있거나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시장은 이를 무시하고 그냥 잊혀지고 만다. 나중에 경고가 현실로 들어나더라도 선지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이런 구조에서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겠는가? 신용평가도 별로 다르지 않다. 정보투명성이 부족하다고 신용등급을 조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신용평가사는 특수한 지위를 바탕으로 시장보다 높은 수준의 정보를 제공받고,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면서도 신용등급에는 엄정하게 반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이 자료제출을 거부하면 신용평가조차도 속수무책이다. ◇ 위기이후 제도개선, `투명성 제고` 역할 그러면 특별한 계기는 무엇인가? 가장 화끈한 것은 역시 신용위기다. 숨겨진 모순이 터져 나오고 기업부도라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면서 모든 타성이 순간에 사라지고 그 동안 잘 설명되지 않았던 온갖 모호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단계에서의 정보공개는 순환적인 자학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의심스러워 디스카운트하고, 밝혀지면 놀라워 또 디스카운트하고, 그래도 의심스러워 다시 디스카운트하는 불신의 악순환이다. 일단 신용위기가 발생하고 나면 불신은 산불처럼 자꾸만 번져간다. 이때 방화선의 역할을 하는 것이 당국의 단호한 대응과 제도 개선이다. 이처럼 위기가 있으면 원인을 찾아 제도를 보완하고, 또 다른 구멍이 생기면 또 다시 막는 것이 바로 금융제도의 발전 과정이다. 제도개선으로 정보투명성이 높아진 사례를 간단히 살펴보자. 전자공시시스템 도입 전에는 감사보고서 변조사례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누구도 그런 무모한 시도를 하지 않는다. 계열사간 거래를 통한 이익조작은 가장 보편적인 분식 수단이지만 연결재무제표로 들여다보면 대부분 헛수고가 된다. CP시장의 정보투명성 제고에 주목하는 이유의 하나도 단기자금시장이 불투명한 자금거래의 온상이 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 사이에 많은 기업들이 대손상각을 통해 불투명한 부분을 대거 정리한 것도 증권집단소송제도의 도입에 대한 사전적 대비로 보고 있다. ◇ IR 한번 없이 채권발행 가능..`개선해야` 위기 이후의 제도 보완은 어쩔 수 없이 이미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치루고 난 후의 뒷북이기 마련이다. 역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사전적인 예방이다. 그러나 정보투명성 관리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투명성 정도를 계량화할 객관적인 지표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신용평가시장에서 정보투명성의 지표화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쉽지 않은 과제다. 정보투명성 이슈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은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정보의 비대칭은 접촉의 빈도와 질을 개선함으로써 풀어야 한다. 우리의 금융현실을 짚어보자.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는 반드시 상당한 IR과정(로드쇼)을 거친다.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는 충분한 기업설명자료가 제시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왜 국내 회사채 발행에는 이런 과정이 없는 것일까? 공시자료가 충분히 제출되기 때문이라는 것은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회사채 발행절차는 사실상 공시자료(유가증권신고서) 제출 전에 모두 끝난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공모 및 청약은 대부분 형식절차에 불과하다. 과거 보증회사채시장의 관성과 회사채시장의 후진성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회사채발행절차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신용(Credit) IR에 대해서는 정말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변변한 IR 한번을 제대로 하지 않고도 대규모 회사채를 발행하는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기가 막히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과 문화 속에서 회사채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발행기업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기업설명자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기업설명자료는 기본적인 기업실적의 전달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나마도 예전보다는 진일보한 것이지만 여전히 빈약한 수준이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연간 사업보고서에서 보듯이 핵심이슈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과연 불가능한 일인가? 끝으로 시장의 이슈형성 능력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의 투명성이 크게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맹신이 결국은 SK글로벌과 신용카드의 실패를 불렀다. 믿기 위해 의심하는 것은 신용분석의 본질이다. 지속적으로 깨어 있기 위한 노력만이 시장을 지켜준다. 강세장일수록 원론을 간과하기 쉽다. 원론이 성과를 만들어주지는 못하지만, 원론을 무시하면 모든 성과는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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