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찾아서)③GM의 교훈, 한국노조 이제는

GM 몰락-도요타의 성공..노사관계 중요성 재조명
생존위기 속에서도 투쟁만 외치는 모습 사라져야
  • 등록 2008-12-26 오전 10:25:35

    수정 2008-12-26 오전 10:30:29

[이데일리 김종수·김경인 기자] '가동중단, 감산, 감축, 공포, 추락, 비상경영···'
한국 경제 현장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말들이다. 그만큼 경제흐름이 만만치 않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가면서 산업 현장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수출과 내수 모두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여만에 찾아온 위기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모두들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기를 직시하되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우리는 달러가 없어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나라를 수년만에 세계 5대 외환보유국으로 바꾼 저력을 발휘했다. 세계개발은행은 이를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기적은 또 있다. 전쟁 폐허를 겪은 세계 최빈국을 수십년만에 메모리반도체· LCD, 디지털TV· 조선 세계1위, 조강(철강)생산 세계5위, 자동차생산 세계6위의 10대 세계경제대국으로 탈바꿈시키는 힘을 보여줬다. 

희망이 없으면 노력도 없다고 했다. 희망만 가지면 그곳에서 행복의 싹이 움튼다고도 했다. 위기가 불러오는 불안속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외환위기를 극복해 낸 경험이 축적돼있고, 10년전에 비해 크게 개선된 산업경쟁력과 기술력, 우수한 인재를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제 그 자산을 써 볼 '기회'가 왔다. 위기는 곧 기회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땀 흘린다면 위기극복이라는 알찬 열매가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편집자)

 
파산 위기에 직면했던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가 정부의 지원 결정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의회 승인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몰락'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던 운명의 시계는 일단 멈췄다고 할 만 하다.
 
그러나 미국 자동차 '빅3'의 장기 회생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부 지원은 한시적 처방인데다 대출금 또한 내년 3월까지 자구안을 현실화하지 못 할 경우 반납해야 한다.
 
자동차 업계의 고질병 중 하나로 꼽혀온 강성노조에 대한 비난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미자동차노조(UAW)는 막대한 영향력을 무기로 과도한 임금을 받는 것은 물론 퇴직자들에게까지 엄청난 복지혜택을 누리게 함으로써 빅3를 위기에 몰아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1월 미 상원의 자동차지원안 부결 결정에도 노조가 한 몫 했고, 향후 빅3의 회생을 위해서도 노조문제 해결이 필수다. 
 
◇공룡노조 GM의 몰락..도요타, 노사안정 기반으로 `세계 1위`
 
미국 빅3의 경우 전통적으로 대립적 노사관계를 가진 기업의 전형으로 인식돼 왔다. 특히 전미자동차노조에 대한 과다한 인건비 부담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전문가들 대다수의 견해다.
 
실제 임금과 연금 및 건강보험료를 포함한 근로자 1인당 노동비용을 비교해 보면, 도요타가 48달러 수준인데 반해 크라이슬러는 75달러, GM은 74달러, 포드는 71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 미국 빅3와 전미자동차노조는 회사가 퇴직자들에게 평생에 걸친 의료혜택을 제공키로 합의함에 따라 연간 56억달러에 달하는, 도를 넘어선 퇴직비용을 회사가 떠안고 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1만2000명의 해고자가 무려 4조7250억여원에 이르는 돈을 받아간 것으로 추산된다. 
 
키방크 캐피탈 마켓츠의 브렛 호셀튼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는 "GM과 크라이슬러가 내년 1분기 추가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노조와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며 "노조의 빠른 양보 없이는 양사가 장기적인 회생을 모색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도요타는 생산적·협력적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강력한 기업 경쟁력을 구축한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빅3 지원을 추진해 온 미국 민주당 의원들조차 임금 수준과 노사관계를 도요타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거듭 촉구했다.
 
1950년대 이미 도산 위기를 겪은 도요타는 이를 계기로 노사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생산적이고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했다. 그 결과 도요타 경쟁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도요타 생산방식'을 탄생시켜 위기극복은 물론 지속성장의 단초로 삼았다. 
 
독일의 경우 노·사·정 중심의 협의와 고통분담으로 노사관계를 안정시켰다. 회사가 어려워지면 노사는 인원감축과 공장폐쇄 대신 임금인상 없는 근무시간 연장을 택하고 있다. 지멘스과 BMW 등이 대표적이다. 
 


 
 
 
 
 
 
 
 
 
 ◇구조조정 역행 강성노조, 공멸 불러올수도
 
이처럼 생산적·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이 기업의 성쇠를 좌우한다는 것은 대립적·갈등적 노사관계로 기업 및 국가경쟁력 저하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08년 세계경쟁력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은 55개 조사 대상국 중 31위를 기록, 지난해 보다 2단계 더 하락했다. 특히 노사관계 항목은 최하위인 55위를 기록, 2003년 이후 6년 연속 꼴찌라는 불명예를 안게됐다.
 



 

 
 
 
 
 
우리나라 전반의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무엇보다 노사관계의 변화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설명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KIET) 팀장은 "유럽의 노조도 최근 임금인상 없는 근로시간 연장에 합의하는 등 노조의 변신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한국 노조가 산업생산의 중단 등을 무기로 계속 강성으로 가며 세계적 구조조정에 역행한다면 노사 모두 공멸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타까운 현실..생존위기 속에서도 '이기주의'가···
 
최근 자동차업계의 위기는 미국 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자동차 회사들도 내수와 수출이 모두 줄어 조업 단축에 들어갔다. 정부가 개별소비세 인하 등 지원을 통한 구제에 나섰지만 정부 지원만으로는 업계를 살릴 수 없다. 자동차 업계 스스로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경쟁력 강화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미국 빅3가 붕괴 위기에 놓이면서 세계는 한국차와 일본차를 주시하고 있다. 빅3를 대신해 세계 자동차시장을 풍미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미국 언론 스스로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기술과 품질을 높이고 잘못된 노사관계만 바로 잡는다면 당면 위기는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나 현실은 안타깝다. 현대자동차가 위기극복을 위해 비상경영을 선포하자 노조가 반발하면서 현대차 노조문제가 다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쌍용차는 한달뒤를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사 기로에 서 있는데도 회사의 구조조정 방침에 노조가 맞대응에 나서면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메이저업체들조차 구조조정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있는 상황에서 위기극복에 동참해야 할 노조가 '투쟁'결의를 다지는 것은 결국 조합원 전체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에서는 울산공장 생산현장 조장과 반장들의 모임인 반우회 회원 800명이 위기극복 결의대회를 갖고 전조합원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자동차업계가 판매부진을 타개하기 공장가동을 중단하거나 정규 근무시간을 줄이는 등 비상경영에 돌입한 상황에서 우리의 일터를 지키기 위해 앞장 서겠다"고 밝혀, 회사의 비상경영에 공감하고 위기극복에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 내에서는 물론 최근 업계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노사가 인식을 같이하고 공동대응하려는 노력을 그동안 간간이 보여오기도 했다.  
 
지난 9일 노사가 대규모 배치전환에 합의한 것이 좋은 사례다. 에쿠스 단산에 따른 생산 유휴인력 498명을 각각 다른 공장에 배치전환키로 한 것. 앞서 기아차 노사는 지난 4일 '노사합의문'을 발표했다.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과 전 종업원의 고용안정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체질개혁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밖에도 최근 은행연합회와 금융산업노동조합이 노사전체 대표자회의를 열고 올해 임금을 동결키로 한 사례 역시 노사공생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경우다. 이들은 대신 사용자는 고용안정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신규 채용에도 나서기로 했다. 예년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노사간의 아름다운 양보다. 
 
대한항공 노조는 고유가에 따른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 올해 3월 임금동결과 단체협약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사측에 위임했다. 금호석유화학 노조의 경우 `항구적 노사 산업평화 선언`을 발표, 20년 무분규 전통을 이어갔다.
 
◇노사 '상생의 어깨동무'해야 위기극복 가능하다

이처럼 최근의 불황을 ‘상생의 어깨동무’로 극복하려는 사례도 늘고 있다. 회사와 노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거센 풍랑을 헤쳐가기 위해 잇따라 손을 잡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금융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한 9월 이후 노사화합 선언을 한 사업장 수는 652곳으로 전년동기대비 3배를 넘었다.
 
이처럼 협력적 노사관계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국민적 합의에 이를만한 수준의 노사협력을 위해선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비정규직, 복수노조, 노조 전임자 임금 난제가 쌓여있다. 산별노조의 이중교섭에 관한 문제나 노조의 과도한 경영참여에 대한 문제 등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서 우리 기업과 노조의 '상생을 위한 동반자적 협력관계야 말로 위기극복을 위한 근본적 경쟁력 제고방안이라는 점이다. 
 
한국노동혁신연구소 이문호 소장은 "경영진이 개방된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하고 노조는 어려운 회사의 현실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며 양측이 문제 해결에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팀장은 "노조 입장에서 볼 때 파업을 통한 실(失)보다 득(得)이 많았던 것이 파업을 부추겼다는 측면에서 경영진의 과오가 상당부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며 "양측이 서로를 동반자로 인정하고 직면한 문제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한 후 진지하게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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