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의원 장관 기용에 반대했던 여당 초·재선 의원들은 9일 다시 모임을 갖고,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면서 청와대를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주말을 고비로 진정 국면으로 접어든 것처럼 보였던 여당의 불만이 다시 폭발한 것은 청와대가 8일 유 의원 장관 내정은 ‘차세대 지도자 키우기 차원’이라고 밝힌 것 때문이다.
이날 모임은 마치 노무현 대통령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고 한다.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며 오전 11시부터 2시간30여분간 진행된 모임에선 25명이 발언했다고 한다.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어제 밤에 잠을 못잤다”며 “청와대가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 오산(誤算)”이라고 했다.
◆차세대 양성론은 봉건시대 발상
여당 의원들이 가장 분노한 대목은, 유시민 의원 입각이 ‘차세대 양성’ 차원이라는 청와대 윤태영 비서관 글이다. 이상민 의원은 “지금이 봉건 왕조시대냐, 그야말로 한심한 발상”이라며 “청와대가 그간 표명해온 당정분리 원칙과도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종걸 의원은 “노 대통령은 누가 키워줘서 대통령이 됐느냐”며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고 했다. 김영춘 의원은 “대통령이 인물 만들기에 개입해 성공한 역사가 얼마나 있느냐”며 “대통령이 걱정해 주는 것은 좋지만 대통령이 개입해서 (지도자를) 만들고 안 만들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한 초선의원(익명 요구)은 “장관이 무슨 지도자 양성소냐”며 “그런 식의 인식이 너무 몰상식해 말하기도 싫다. 정말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수도권의 다른 초선의원도 “노 대통령은 일관성 없이 어떨 때는 제왕적 총재처럼 당 일에 간섭하고 어떨 때는 나 몰라라 하는데, 벌써부터 퇴임 이후를 생각하는 것이냐”고 했다. 유필우 의원은 “청와대가 (차세대 지도자감으로) 특정인을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고, 오제세 의원은 “괜히 유시민 의원만 키워주는 것 아니냐. 아예 무시하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대통령 인사권이 성역인가?
이종걸 의원은 “대통령의 인사고유권이 인사독점권으로 잘못 통용되고 있는데 그건 과거 독재시대나 있던 개념”이라며 “인사청문회법 등을 감안한다면 여당은 대통령이 사전에 행사한 인사권에 밑닦기 식으로 정당성만 부여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했다.
충청 지역의 한 초선의원은 “장관 임명권이 대통령 고유권한이라는데, 그렇기 때문에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문병호 의원은 “국회의원의 입각, 특히 여당 의장의 입각은 사전에 당과 충분한 협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이 졸(卒)이냐?
송영길 의원은 “당이 청와대의 부속실이냐”며 “대통령이 정치를 하지 말든지…”라고 했다. 김영춘 의원은 “현재 열린우리당은 정신적 위기에 처해 있다”며 “대연정 이후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가, 과연 열린우리당은 있을 것인가 없어질 것인가”라고 했다.
한 초선의원은 “남편이 아내를 실컷 때려놓고 하룻밤 지난 뒤 괜찮다고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느냐”며 청와대를 ‘폭력 남편’에 여당을 ‘매맞는 아내’에 비유하기도 했다.
김선미 의원은 “당이 예속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고, 다른 초선의원은 “이렇게 된 이상 이제 청와대에 기대할 게 없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노 대통령이 면담을 거부하거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엔 당과 청와대가 별도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해찬 총리가 책임져라”
정장선 의원은 “이번 개각 파문의 전말을 알고 있는 이해찬 총리가 해명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수도권의 한 초선의원은 “총리가 당을 무시하고 당 의장을 빼갔다”고 했고, 다른 의원은 “대통령, 총리뿐만 아니라 정세균 전 당의장, 청와대 김완기 인사수석도 해명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고 전했다.
송영길 의원은 “이번 건을 그냥 넘기면 이런 일이 다음에 또 생길 것”이라고 했다. 김영춘 의원은 “이번 사태를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 당도 청와대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당 지도부와 중진들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지금까지 당 지도부와 중진들이 입각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청와대 앞에서 항상 움츠러들었다” “지금 당 지도부가 있기는 한 거냐”는 등의 발언이 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