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조용 기계를 만드는 B사는 연구개발 및 시제품 준비 과정에서 소량의 화학물질이 필요했다.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에 따라 해당 물질 등록 면제를 위해 관련 서류를 준비하는데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했다. 승인까지 3개월 이상 걸릴 예정이어서 시제품 준비에 어려움이 커졌다.
산업계의 이 같은 애로사항은 이르면 내년부터 다소 해소될 전망이다. 정부가 민간 주도의 경제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면서다.
|
주요국보다 높은 화학물질 등록 기준…서류 비용도 부담
화평법·화관법은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심사하고 평가해 유해화학물질 취급 시 종합적 안전관리 체계를 만들기 위해 마련됐다. 기존에도 기업들은 화학물질 명칭과 제조·수입량, 용도, 성분 등 각종 정보를 환경부에 등록해왔는데 더 철저하게 관리한다는 취지였다.
서류 제출에 필요한 비용도 상당하다. 신규화학물질을 환경부에 등록하기 위해선 인체 및 환경 유해성 등 최대 47개의 시험자료를 첨부해야 한다. 시험 기관에 테스트를 맡기거나 외국 기업이 보유한 기존 시험 자료를 구매해야 하는데 시험자료 확보에 필요한 비용은 약 2700만원이다. 매년 1500여종의 신규화학물질이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데 이 중 약 20%가 100kg~1t 범위로 등록된다고 가정하면 시험비용만 연간 약 83억원에 달한다. 오는 2030년까지 등록해야 하는 약 7000여개의 기존화학물질도 고려하면 비용 부담은 더 커진다.
염료안료 제조기업 관계자는 “최소 7~9종의 시험자료 생산에 드는 비용이 1000만원~3000만원, 시간은 4~6개월 정도 소요된다”며 “차라리 제품 개발을 포기하는 게 나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
화관법도 기업들이 큰 부담을 느낀다. 유독물질 등 유해화학물질 사용 기업이 갖춰야할 취급시설 요건을 까다롭게 규정하고 있어서다. 화관법은 안전교육 인원 확보뿐 아니라 내진설계나 경보장치 등 413개의 시설 기준을 맞추도록 하고 있다. 화평법에 따라 유해한 화학물질은 유해성 정도에 관계 없이 유독물질로 분류되는데, 유해성이 낮더라도 화관법에 따른 엄격한 시설기준을 맞춰야 한다. UN이 마련한 국제 기준은 급성독성·만성독성·환경유해성 등 3가지로 유독물질을 분류하지만 우리나라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과하게 규제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기업들 46% “복잡한 규제 이행 어려워”…34%는 “비용 부담” 호소
기업들의 부담은 통계로도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화학관련 대기업 120곳 중 46.3%가 복잡한 화학물질 규제 절차로 이행이 어렵다고 답했다. 과도한 비용지출이 33.9%로 집계됐고 경영 불확실성 증대(7.8%), 핵심사업·신규사업 차질(6%) 등의 순서로 많았다.
|
조용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신규물질 등록 기준이 완화되면 다양한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데에 장벽이 낮아져 신제품 개발이 보다 용이해질 것”이라며 “비용 부담에 민감한 중소기업일수록 규제 완화 혜택의 체감이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