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1997년 의류시장에 불황이 몰아닥치고 IMF 외환위기가 터지며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을 맞는다. 직원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고, 창고에는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박회장은 구조조정의 칼을 빼든다. 28개의 계열사를 8개로, 사업부 역시 72개에서 51개로 대폭 줄였다. 3,200백만 달러의 외자유치에도 성공하며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고비를 넘긴 박회장은 2000년 3월 대내외에 ‘지식경영’을 선포한다. 다시 도약하기 위한 혁신의 키워드로 지식경영을 선택한 것이다. 성과관리 개념을 도입해 사업부, 팀, 개인별로 성과를 측정하기 시작했고, 직원들의 업무 노하우를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공유해 높은 호응을 얻었다. 이후 3년간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낸 이랜드 경영진과 직원들은 2003년 봄 이랜드의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당시 회사 안팎에서는 ‘이랜드의 혁신 1000일’이 회자됐다.
이랜드 위기의 본질은 과도한 몸집 불리기에 따른 급격한 부채 증가다. 티니위니를 팔기 전 부채율이 300%를 넘겼고, 지금도 24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더 이상 방치하면 위험해질 것이라는 신용평가 기관들의 경고에 부랴부랴 사들였던 브랜드들을 M&A 시장에 내놨다. 지분 매각에 성공하면 부채비율을 크게 낮출 수 있지만 여의치 않으면 당분간 자금난 꼬리표를 떼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랜드 혁신의 상징인 지식경영의 힘은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직원들한테 나왔다. 그들이 하나하나 쌓아올린 업무 노하우과 영업방식이 오늘의 이랜드를 일군 원동력이 됐다. 결코 현란한 M&A 테크닉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