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를 움직인 허경욱 차관의 `흰 백조`論

  • 등록 2010-04-15 오전 9:32:50

    수정 2010-04-15 오전 10:28:43

[이데일리 윤진섭 기자] 이번에 한국 신용등급을 올린 무디스의 톰 번 부사장(수석 애널리스트)은 한국경제를 가장 잘 아는 해외 인사로 꼽힌다.

▲ 허경욱 기획재정부 제1차관
1997년 외환위기 이전부터 현재까지 무디스에서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평정 업무를 맡아왔다. 부인도 한국 사람이다. 너무나 한국을 잘 아는 탓인지, 북한 문제에 대해 유별나게 우려를 하는 인물이라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껄끄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의 허경욱 제1차관은 그런 톰 번 부사장과 가장 오랫동안 교류해온 국내 인사다.

지난달 27일 토요일. 허경욱 차관은 번 부사장과 저녁 약속이 예정돼 있었다. 번 부사장은 무디스 평가단이 한국을 떠난 뒤 개인 일정으로 홀로 국내에 남아 있던 차였다.

하지만 허 차관은 실례를 무릅쓰고 이 약속을 전격 취소했다. 바로 전날(26일) 밤 천안함 침몰이라는 돌발 변수 때문이었다. 대신 허 차관은 나흘 뒤인 31일 번 부사장에게 천안함 사고와 관련한 한국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Korea is calm(한국 경제는 차분한다)"이란 문장으로 시작된 이 편지에서 허 차관은 약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개별 사건의 위험(천안함 사태)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이나 국가부도 위험도를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 수치가 안정적인 점을 진솔하게 설명했다.

이 같은 내용의 편지는 무디스 뿐 아니라 피치, S&P에도 전달됐다.

그래도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됐다. 등급 상향 조정은 꿈도 못 꿀 일이 돼버린 듯 했다.

허 차관은 "톰 번 부사장을 27일 만났다면 내내 천안함 사고에 대한 이야기만 했을 것이다. 가뜩이나 북한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는 사람인데, 사고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그를 만날 경우 괜한 오해만 낳을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결례가 되더라도 약속을 취소하고, 대신 편지를 보낸 게 전화위복이 됐다"며 "남북문제에 관한 블랙스완(검은백조, 발생확률이 극히 낮은 예상치 못한 변수 출현) 리스크가 있더라도 백조는 일단 하얗다(안정과 평화의 확률이 절대적으로 높다는 의미)고 가정하고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설명이 톰 번 부사장을 비롯해 무디스의 마음을 움직인 듯 하다"고 덧붙였다. 
 
행시 22회인 허 차관은 현직 관료중 최고의 국제금융 전문가이다. 영어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도 유명해 정부 내에서 최고라는 평가도 받는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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