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테러사건 이후 근 한 달이 지난 시점에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그 황량한 땅에 공습을 퍼 부었습니다. 이것 저것 재어보고 준비하여 꽤나 많은 양의 폭탄과 미사일을 사람도 얼마 없는 황무지에다 쏟아부은 듯 한데, 국내 금융시장은 의외로 차분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기야 웬만한 악재란 악재는 이미 주가나 환율에 다 반영되었다고 본다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닙니다. 추석 이후에는, 아니면 공습 이후에는 뭐가 달라져도 달라지겠지 하는 딜러로서의 기대감(?)이 없지 않았으나 지난 주 이틀과 월요일 장세를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의 적정환율은 1300원, 적정 주가지수는 500 정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굳히게 됩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 하면 말이죠...
◇원죄의 해결 없이 신천지(新天地)는 없다.
1998년 10월 중순에 지수 1380을 바닥으로 급등세를 시작한 나스닥 지수는 2000년 3월 경 지수 5000을 넘나들던 것을 정점으로 하여 끝없는 추락세를 이어 옴으로써 월요일 공습 이후 열린 장에서의 마감지수는 1605.95로 나타나고 있다.(지난 9월 22일 1400 아래로 미끄러졌다가 그나마 FRB의 공격적인 금리인하 정책 덕분에 많이 회복한 것이 이 수준이다). 그런 물 좋은 시절을 절대 놓칠 리 없는 여의도 사람들도 같은 시기에 종합주가지수 300 언저리를 발판으로 삼아 1999년 7월과 2000년 1월에 두 차례에 걸쳐 종합지수 1000을 넘나 들었었다. 웬만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날 그 날의 마감 주가지수 정도야 훤할 테니까 옮길 필요도 없지만 월요일(8일) 마감지수는 496.13이다. 장 중 한 때 지수 500을 회복하기도 했으나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권 이웃 나라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나스닥 지수선물이 하락폭을 넓혀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필자가 자주 쓰는 말 중에
"한 번 망가진 장이 회복하는 데에는 좋았던 시절의 몇 배에 해당하는 고통의 기간이 따른다."는 것이 있다. 다 지나고 나서 뒤돌아보니 한 바탕 일장춘몽(一場春夢)이었건만, 그동안 극소수의 졸부와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별똥처럼 스러져간 스타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몇 푼 안 되는 여유자금과 쌈짓돈이 허공에 날아갔는가? 1년 반 정도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미국과 한국의 기업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주가가 3.5배 이상 튀어 오른단 말인가? 무엇으로 돈을 벌겠다는 것인지도 애매한 닷컴 기업들의 주가가 천정을 알 수 없다는 듯이 치솟고, "모 아니면 도"이기에 용어 자체가 모험이나 위험을 의미하는 벤처(Venture)인 기업들의 주식이 상장만 하면 상한가 행진을 이어 갈 수 있었던가?
그렇다. 무슨 게이트니 스캔들이니 하며 그 숨겨졌던 내막들이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지만, 미국의 나스닥 열풍도 한국의 Buy Korea 열풍도 결국은 쉽게 남의 돈을 벌어 보겠다는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한 바탕 어우러져 일구어 낸 "돈 놓고 돈 먹기 야바위판" (조금 듣기 좋게 표현하자면 Money game 정도라 할까?)에 불과했었고, 그 판을 짰던 사람들이 한 몫 단단히 챙기고 나간 뒤 집에 갈 차비라도 건져 보겠다고 빈 지갑 들고 서성거리는 것이 요즘의 국내외 증시다.
지난 7월 모처에서 강의 중 "신문에서는 Summer rally가 있을 것 같다는데, 정말 이번 여름에 주가가 오를까요?"라는 질문을 받고 필자는 서머랠리는 없다고 단언한 적이 있다. 지난 99년 장세는 이른바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큰 장"이었는데, 그 장에서 돈을 번 사람보다 잃은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오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주가지수 그래프에 함께 나타나는 거래량 막대기들을 짚으면서 그 막대기들의 적분(積分)에 해당하는 자금이 신규로 들어와야 증시에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부연 설명하면서 그 돈이 어디에 있는가 라고 반문 한 적이 있다. 新경제 新경제 노래를 불렀지만 근본적으로 신경제라고 불렸던 그 체제 안에 이전과 다른 그 어떤 부가가치를 창출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한 그 동안 들러 붙었던 거품(bubble)은 철저히 제거되어야 다음 얘기를 해 볼 수가 있으며, 그 이후에도 소위 악성매물이라고 일컫는 "물린 세력들의 대기매물"을 소화해 내는 과정을 거치기까지는 미국 증시도 국내 증시도 그렇게 빨리 좋은 시절을 다시 맞기는 쉽지 않다.
◇환율의 경우는?
먼저 다음 표를 한 번 훓어 보고 얘기를 풀어 나가보자.
달러/원(평균) 연중최고 연중최저 엔/원(평균) 달러/엔(연말)
2001년 1290.75 1365.30 1232.90 1068.62 119.80
2000년 1130.63 1275.00 1103.80 1048.91 114.41
1999년 1189.14 1249.00 1125.00 1048.56 102.23
1998년 1398.88 1840.00 1185.00 1074.41 113.40
1997년 951.11 1995.00 840.00 784.02 131.00
1996년 804.78 846.00 774.60 739.59 115.30
1995년 771.04 745.83 103.38
1994년 803.62 805.80 99.73
1993년 802.73 718.00 111.80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첫째,
수출경쟁력을 논의할 때 이제 더 이상 환율타령은 접어야 한다.
97년 말 황망하게 "IMF 외환위기"를 맞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는 800원 근처의 환율과 100엔당 800원 근처의 원/엔 환율 하에서도 열심히 수출하며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여 왔다. 원/엔 환율이 1100원을 넘나드는 요즈음, 수출이 부진한 것은 원화가 고평가 되어있어서가(환율이 낮아서가) 아니라 세계경제의 동시불황으로 인해 우리 나라 제품을 사서 이용할 만큼 형편이 넉넉한 나라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형 할인마트에서 손에 잡히는 웬만한 물건들에 "Made in China" 상표가 붙어 있는 판국에 우리 기업들은 이제 예전처럼 가격경쟁력에만 의존하여 해외에 나가 물건을 팔 생각은 접어야 한다.
둘째,
엔화의 움직임에 목을 매다는 거래행태도 지양되어야 한다.
최근 10년 동안의 기간 중 엔/달러 환율이 가장 높았던 것은 지난 98년 8월에 기록한 147.50인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당시 원/달러 환율은 1360원이었다. 금년 4월 초 엔/달러 환율이 127엔의 턱 밑에서 꼬꾸라지기 전에 우리는 1365원을 찍었고, 한국은행이 "외환보유고를 동원한 시장개입 가능성"을 경고하지 않았더라면 그 당시 기세로는 1400원도 기어이 올라서 보겠다는 분위기였다. 유난히 나라 바깥의 위기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서울 외환시장의 속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로 국내 외환시장참여자들은 환율하락 요인보다는 환율상승 요인에 더욱 민감해지면서 환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한 쪽으로만 치우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시장체질을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셋째,
앞서 언급한 증시의 경우와 같은 논리로 원/달러 환율도 작년과 같은 급등세를 보이기는 어렵다.
작년 11월 하순부터 금년 4월 초까지 이루어졌던 환율 급등세는 아무 때나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몇 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큰 장"이었음은 틀림없고 그 혼란의 시기에 달러를 들고 있다가 큰 돈을 만진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여기에도 "물린 세력"들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800원 900원 하던 환율이 1900원대까지 치솟던 시절, 우리는 그 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데..."하는 느낌을 가졌었다. 이후 급격히 환율이 하락 반전하고서 우리는 "과연 원화의 적정환율은 어디쯤인가?"하는 문제로 고민하게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레벨이 1200원 혹은 1300원이었다. 작년 상반기까지 외국인 주식매수자금의 유입으로 인해 도도하게 이루어지던 원화절상 추세를 외환당국은 매수개입을 통해 힘겹게 막아 내던 중 미국과 일본의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면서 달러 대비 엔화가치가 급락하는 와중에 "IMF 이후 최고의 환율상승율"을 기록한 이후 지금까지의 시장 흐름으로 보아서는 결국 1300원 근처가 모두에게 편안한 레벨로 굳어지고 있다.
칼럼이 너무 길어지는 듯 하여 오늘은 여기서 줄이고 왜 1300원 정도가 모두에게 편안한 레벨인지는 다음 기회에 정리하도록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첨가할 내용은 지금 서울 외환시장에는 "당국"이라고 하는 巨人에 맞설 만한 힘을 갖춘 시장참여자들이 없다는 점이다. 역외세력도 이미 이러한 점을 간파하고 필수적인 헤지(Hedge) 매수세 이외에 투기적으로 달러를 매수하고 원화를 매도할 의욕은 잃어버린 듯 하다.
수 차례에 걸친 체면도 염치도 잊은 일본은행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 이후 엔/달러 환율은 다시 120엔 아래로 내려서고 유로화는 0.92대를 회복하고 있다. 유가는 안정적인 가운데에 달러화가 다시 약세로 돌아서는 기미를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 증시가 튼튼히 버틴다는 점에서, 이 나라에 수입업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출업체도 있다는 점에서
필자는 섣부르게 달러 강력매수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