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당장 전기료 낼 돈도 없고, 학생연구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연구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사업비(주요 사업비)를 30% 가까이 삭감해 연구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사진=이데일리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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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대전 특구기자실에서 만난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연구자의 하소연이다. 정부가 비효율 타파와 낭비 방지를 이유로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연구자, 학생 등 과학기술로 국가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들은 허탈감에 사로잡힌 모습이다.
이같은 허탈감은 단체 행동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날 출연연 단체·노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조까지 나서 사상 처음으로 공동협의체를 만들어 정부에 예산안 삭감 시정을 요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앞서 지난달 29일에도 4대 과학기술원과 주요 대학 이공계 학생들이 성명서를 내고 정부에게 R&D 예산 삭감을 재고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예산안 삭감이 과학기술계에 일부 잘못된 관행이 있었고, R&D 투자 규모대비 질적성과가 낮다는 점에서 불가피하다고 설명한다. 국가 재정이 어려운데다, 국민 세금으로 연구를 한다는 점에서 낭비 줄이고 비효율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일부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정부의 대응과 소통 부재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6월 말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R&D 카르텔 혁파’를 지시하면서 예산 삭감은 불과 약 한 달 반 만에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도 출연연 등에 일방적인 통보만 있었다. 과학기술계를 이권카르텔로 규정한 부분에 대해서도 ‘모멸감’을 느낀다는 이들도 상당수다.
예산 삭감은 정부가 지적하는 연구비 나눠먹기나 갈라먹기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이 되기도 어렵다. 지난 20여년간 연구자가 연구비 수주 영업을 해야 하는 PBS(연구과제중심제도) 시스템이 정착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제도적 환경에 따라 출연연의 역할과 책임(R&R), 국가 전략기술에 따른 명확한 임무 재설립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한 뒤 예산안 결정, 임무 재정립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인한 과학기술계의 상처는 상당히 깊은 듯하다. 출연연 근무를 자랑스러워했던 일부 젊은 연구자들 사이에선 허탈감이 더 심한 상황이라고 한다. 가뜩이나 과학자를 기피하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향후 국가 미래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제부터라도 연구현장과 소통하며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수습할 방안을 찾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