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3008이 SUV로 과감하게 장르를 변경했다.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차량의 성격이 바뀌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앞서 출시한 소형 SUV 2008로 SUV의 가능성을 확인한 푸조는 자사의 MPV 라인업을 모두 SUV로 변경했다. 전략은 기가 막히게 먹혔다. SUV로 재편되는 세계적인 트렌드를 발 빠르게 반영한 덕분에 현재 푸조 판매량은 새롭게 정비된 SUV라인업이 주도하고 있다. 3008은 국내 시장에서 작년 한 해에만 1,880대가 판매됐다. 1,350대가 판매된 5008과 함께 푸조 수입원인 한불모터스를 먹여 살리는 효자 차종이 됐다.
현재 중형 SUV 시장은 디젤이 80% 정도다. 현대 싼타페가 독식하면서 기아 쏘렌토가 일부를 가져가고 있다. 르노삼성 QM6는 가솔린이 80% 이상 판매되면서 가솔린 SUV 시장을 개척하는 분위기다. 폴크스바겐 티구안이 그랬던 것 처럼 푸조 3008의 경쟁자는 바로 싼타페다. 도로에 흔하디 흔한 싼타페에 질린 소비자라면 장바구니에 3008을 담고 눈여겨 볼 필요는 있을 듯 하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3008 GT-Line을 만났다. 2019년형이다. 배기량을 1.5L로 줄인 Blue-HDi 디젤엔진이 탑재되고 변속기가 기존 6단 에서 8단으로 변경된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고양이과 동물을 디자인 모티브로 하는 푸조의 ‘펠린룩’은 해가 갈수록 과감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런 디자인 덕에 마니아도 생겼지만 판매에서는 그닥 호응을 얻지 못하는 등 호불호가 갈렸다. 하지만 준중형 해치백 308을 시작으로 새롭게 정립된 펠린룩은 특유의 날카로움은 유지하면서 대중성을 갖춘 디자인으로 변모했다.
2세대 3008 역시 차세대 펠린룩이 적용됐다. 세단이나 해치백보다 오히려 SUV에 훨씬 잘 어울린다. 할퀼 듯 날카로운 LED 헤드램프 디자인으로 전면부가 훨씬 날렵해졌다. 헤드램프를 파고드는 형태의 범퍼는 입체감을 더하고 SUV다운 과격한 이미지를 강조한다. 그 덕에 포효하는 사자 엠블럼에 시선이 꽂힌다.
후면부는 전면부에 비하면 과격함이 덜하다. 널찍한 면과 직선이 많이 사용돼 두툼하고 견고한 느낌을 준다. 자칫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블랙 하이그로시 패널, 바디 컬러, 두꺼운 크롬 바, 무광 플라스틱 등 각각의 층마다 서로 다른 컬러를 배치했다. 입체감이 느껴지는 디자인이다. 리어 램프를 최대한 위로 끌어올려 실제보다 차고가 높아 보인다. 야간에 멀리서 보면 포드 머스탱과 묘하게 닮았다.
범퍼 하단에 자리한 듀얼 머플러 팁은 사실상 장식에 불과하다. 페이크 머플러는 디자인 관점에서 보면 전혀 아쉬움이 없지만, 요즘 같은 겨울철에 한쪽 아래로만 새어 나오는 배기 수증기를 보고 있으면 웬지 모를 괴리감이 느껴진다.
특이한 것은 실내 곳곳에 직물 소재를 많이 사용했다는 점이다. 대시보드 하단과 도어트림에 적용된 직물 감싸기가 의외로 웬만한 인조가죽이나 우레탄 마감보다 고급스럽다. 만져보면 촉감이 꽤 좋다. 독특한 디자인의 시트에도 몸이 밀착되는 부위에는 여지 없이 직물을 사용했다. 몸을 잡아주는 느낌이 가죽보다 뛰어나다. 정확히는 입고 있는 옷을 잘 잡아주는 느낌이다.
상단, 하단이 모두 잘려 ‘Z’컷 스티어링 휠로 불리는 푸조의 스티어링 휠은 차의 크기에 비해 직경이 상당히 작다. 탈 때마다 마치 게임 컨트롤러처럼 느껴진다. 스티어링 뒤쪽이 움푹 패여 있어 일반적으로 쥐는 ‘2시, 10시’ 방향보다 3시와 9시 방향을 쥐었을 때 안정감이 좋다. 고정식 패들시프트를 더해 스포티한 느낌을 냈다.
공조장치 및 차량 설정 등은 기존의 UI를 사용한다. 인포테인먼트 기능은 별도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활용하는 방식이다. 마치 윈도우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한 대의 PC에 있는 ‘2 in 1 PC’ 같다. 두 가지 환경을 번갈아 가며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직관성은 다소 떨어지는 편.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한 소비자라면 다양한 기능을 무리 없이 조작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은 ‘T맵’제품이 탑재됐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에 비해 지도 업데이트 반영은 느린 편이지만 성능은 준수하다. 다만 내비게이션 사용 시 안내음성이 나올 때마다 재생 중이던 음악을 뚝 끊어버린다. 탑승객에 따라서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다만 센터 모니터 속에 완벽히 통합된 공조장치는 여전히 사용이 불편하다. 자주 사용하는 기능을 별도의 물리 버튼으로 마련해놓은 점은 다른 브랜드와 비슷하다. 그러나 현재 설정 온도를 확인하고 싶을 때나 공조장치를 조작할 때마다 공조메뉴 화면을 띄워야 하는 점은 옥의 티였다.
오류에 취약하다는 것도 약점이다. 시승차만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터치식으로 바람의 방향을 설정하는 버튼이 먹통이 되는 바람에 주행 내내 천정은 뜨겁고 바닥은 냉골인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센터페시아 버튼은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방식이다. 디자인이 독특하고 누를 때 직결감도 좋다. 항공기 조종석을 연상케 하는 부분 중에 하나다. 버튼이 모두 위를 보고있어 아이콘이 잘 보인다는 점도 칭찬할 부분이다. 그 아래에는 작은 수납공간을 마련해 12V 파워아울렛과 USB포트, 무선충전장치를 마련했다.
‘ㄱ’자 형태로 뻗어있는 전자식 기어레버는 조작이 간편하다. 손잡이처럼 생긴 형태 덕에 쥐고 있을 때 자세가 편안하다. 전방에는 시동 버튼과 드라이브 모드 다이얼, 후방에는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와 스포츠 모드 버튼이 마련됐다.
웬일로 제 자리를 찾은 컵홀더와 고급세단에서나 볼 법한 양문형 콘솔을 갖춘 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널찍이 뚫려있는 파노라마 썬루프는 기존 모델과 달리 열리기도 한다.
뒷좌석 에어밴트와 12V 파워아울렛도 갖췄다. 아쉬운건 국내 소비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2열 열선이 없다는 점. 운전석과 마찬가지로 몸이 밀착되는 부분에 사용된 직물 덕분에 겨울 탑승 시 마냥 차갑지만은 않다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까.
새로 매칭된 8단 자동 변속기는 효율에 집중했다. 기어레버에 별도 마련된 ‘M’버튼을 누르면 패들 시프트로 수동 변속을 할 수 있다. 여기에 ‘SPORTS’버튼을 누르면 2000rpm의 벽을 부수고 조금 더 경쾌한 주행이 가능하다. 다만 배기량의 한계와 낮은 회전 수에서 최대토크가 발생하는 디젤엔진 특성 덕에 rpm을 높여도 큰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랜 랠리 경험을 통해 수준급 코너링 실력을 갖추게 된 푸조답게 SUV 차체를 가졌음에도 코너링이 발군이다. 램프 구간처럼 깊은 코너에서도 큰 쏠림 없이 가뿐히 돌아 나간다. 직결감이 좋은 작은 크기의 스티어링 휠이 반복되는 코너에서 운전에 재미를 더한다.
차간거리 조절이 가능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과 차선이탈방지보조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차선 중앙을 유지하며 달리는 것이 아닌, 차선을 이탈하면 스티어링을 안쪽으로 살짝 튕겨주는데 그친다. 그냥 두면 핑퐁으로 차선을 이리저리 넘나든다.
이틀간 자동차 전용도로를 포함해 250km 가량 주행했다. 평균 연비는 13.5km/L다. 복합 연비인 14km/L보다 소폭 낮은 수치지만 주행거리의 대부분이 정체가 심한 도로에 더구나 출퇴근 시간대였음을 감안하면 무난하다. 큰 덩치에 1.5L의 작은 엔진을 얹고 있지만 무슨 짓을 해도 10km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는 연비를 보며 디젤의 경제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ㅁ
초미세먼지, 질소산화물 등 디젤 엔진에 대한 세계 각국의 규제는 점점 까다로워진다. 벤츠나 폴크스바겐 등 유럽을 대표하는 브랜드는 대부분 전기차로 방향을 선회했다. 특히 푸조는 디젤엔진의 뛰어난 경제성으로 많은 호응을 얻었던 브랜드인만큼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기대가 모아진다.
한 줄 평
장점: 푸조를 다시보게 만드는 독보적인 디자인, 소형차 수준의 유지비
단점: 자신감 넘치게 책정한 가격. 사륜구동의 부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