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죽어도 나는 살아야겠다`는 극단적이고 개인적인 정책이 유럽 대륙을 휩쓸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예금자 보호 강화가 그리스와 독일을 거쳐, 덴마크, 스위스 등으로 확산됐으며, 나머지 국가들이 합류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로써 `하나의 유럽`을 기치로 경제통합을 진행해 온 유럽연합(EU)이 출범 이후 최대 위기상황을 맞게 됐다. 목놓아 외쳐왔던 `통합정신`은 사라지고 각 국은 제 목숨 걱정하며 `각개 전투` 벌이기에 정신이 없다.
◇ 스위스·덴마크·아이슬란드도 `한도 상한`으로 합류
예금자 보호 강화의 첫 신호탄은 유로존 국가 중 처음으로 `기술적 경기후퇴(리세션)`에 진입한 아일랜드가 쐈다. 금융위기 우려로 예금자들이 현금을 대거 빼내는 `뱅크런`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주요 6개 아일랜드 금융기관의 예금 및 부채 총 5750억달러에 지급보증을 해주겠다고 공언했다.
각 국은 `반경쟁적인 행동`이라며 강하게 비난했으나, 결국 자금탈출을 막기위해 같은 전략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일단 그리스가 뒤따랐다. 2일 뱅크런이 시작됐다는 보도에 정부는 규모와 관계없이 모든 은행에 대한 예금자 보호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초 계좌당 2만7890달러까지만 보호받을 수 있었지만 사실상 보호 한도가 없어졌다.
5일에는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합류했다. 2위 모기지업체인 하이포 레알 에스테이트 파산으로 마음이 급해진 독일 정부는 7850억달러에 달하는 모든 은행의 개인 계좌에 대해 예금자 보호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관련기사☞`나만 믿어`..유럽 정부 보증 잇따라
스위스 정부는 은행 예금 보호 한도를 7만1310달러로 두 배 상향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안데르스 보르그 재무장관은 "위기 관리의 일환으로 이 같은 대책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정부 또한 이날 모든 국내 은행에 대한 예금 보증을 선언했다. 이와 함께 당국에 은행들의 자산을 인수할 권리를 부여했으며, 회생이 불가능한 은행들로부터 자금을 획득하기 위해 새로운 이사진들을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CNBC는 다음 타순은 오스트리아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인접국인 독일이 예금자 보호를 선언함에 따라 독일로의 자금 이탈을 막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정부 관리들이 나서 "오스트리아 은행업계는 문제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프랑스 정부 또한 압박을 느끼고 있다. 현재 프랑스의 최대 보장 한도는 9만5200달러. 스위스 등보다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전체 보호를 표방하는 주변국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포르티스와 덱시아로부터 자금이탈이 본격화되면서 BNP파리바가 해당 은행들 자산매입에 나섰지만, 패닉에 빠진 투자자들을 진정시키지는 못 하고 있다.
10여년만에 노던록에서 뱅크런이 발생해 위기감이 큰 영국도 보증 한도를 한번 더 상향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당초 6만1600달러에서 8만9000달러까지 한도를 상향 조정했지만, 금융사와 예금자들의 한도 상향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한편 유럽인들은 유럽 정부의 예금자 보호 강화 움직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CNBC가 `아일랜드로부터 촉발된 유럽 각 국 정부의 예금자 보호한도 움직임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5%가 `그렇다`고 응답했으며, `아니다. 위험한 것은 주주들이지 예금자들이 아니다`라고 응답한 사람은 16%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경제는 통합했지만 정치는 분리된` EU의 태생적 한계가 이 같은 상황을 불러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처음 강력한 적수를 만난 유럽 대륙의 통합 노력이 이대로 좌초될지, 위기를 통해 더욱 성숙한 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