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인터뷰] 위명희 "마음의 위안 찾을 때는, 음악"

서울 홍대 앞 LP바 게리슨 바 오픈.."힐링 찾아 오세요"
20년 경력으로 현장서 활동하는 유일한 여성매니저
  • 등록 2013-10-11 오전 9:34:18

    수정 2014-01-14 오후 8:42:26

“나이? 학력? 그런 게 중요한가요?” 위명희(44) 지앤지프로덕션 음반사업부 본부장이 LP바 개리슨의 문을 열고 “마음의 위안을 주는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밝혔다. (사진=김정욱 기자 98luke@)
[이데일리 고규대 기자] 기타 연주에 귀를 기울린다. 튕기는 손가락, 떨리는 스트링, 리듬 타는 고갯짓. 지켜보는 이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튕긴다. 마치 기타 연주자라도 된 것처럼. 음악 소리로 가득 찬 서울 홍대 LP바 게리슨의 밤 풍경이다. 맥주 한 잔 앞에 두고 조용히 음악을 듣는 이, 옆사람과 귀엣말을 하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이, 이들을 지켜보는 한 여자. 음반 기획자이자 가수 매니저인 위명희(44) 지앤지프로덕션 음반사업부 본부장은 최근 색다른 일에 도전했다. 20년 가수 매니저 생활을 하던 이력을 살려 음악이 가득 찬 공간을 만들었다. “음악은 일이 아닌 취미로 즐길 때 좋은 거 같다.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재미있겠다’는 생각만으로 음악시장에 발들여

게리슨은 80년대 미국 드라마인 ‘게리슨 유격대’을 연상케 한다. 1800년대 미국 노예 폐지운동가였던 윌리엄 게리슨에서 이름을 땄다. 자유로의 희망을 담았다는 의미다. 또 게리슨으로 통칭되는 국내 미군 부대에서 50년대부터 흘러나온 LP의 공간이라는 의미도 있다.

게리슨은 홍대 인근에 있는 몇몇 LP바와 차별화하기에 힘썼다. 테이블 간격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변에 신경 쓰지 않고 음악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2만장의 LP 외에도 아이패드 안에 저장된 음원을 직접 선곡해 들을 수 있도록 마련했다. 아날로그에만 머물지 않고 노래와 노래의 연결과 흐름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하나의 곡이 각기 다른 가수, 다른 연주자에 의해 어떻게 변화되는지 들려주는 것도 이곳의 매력이다.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누구나 기타를 잡고 직접 연주도 할 수 있다.

위 본부장은 1994년 한 지인의 조언에 따라 음반기획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재미있겠다는 생각만으로 덜컥 음악시장에 발을 디뎠다. 처음에는 한 소규모 음반 제작사에서 신인가수의 음반 제작, 매니지먼트에 힘을 보탰다. 1997년 당시 메이저 음반사였던 신촌뮤직에 입사했다. 매니저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수 양파의 음반제작에 참여하는 행운도 안았다. 하지만 여세를 몰아 신인가수를 제작했다가 쓰라린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위 본부장이 OST 제작 등 가요 매니저로 자리를 잡게 된 때는 1999년 드라마 제작사인 팬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입사한 지 3개월여만에 드라마 ‘가을동화’ OST 제작에 참여하면서 대성공을 거뒀다. 당시 금전적인 어려움에 부닥쳤던 팬엔터테인먼트는 OST 판매 수익금으로만 80억원을 벌어들였다. 여세를 몰아 2000년에는 드라마 ‘겨울연가’ OST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겨울연가’가 한류의 태동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고도 생각한다”는 게 위 본부장의 말이다. 이후 자신의 이름을 딴 위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가수 박선주의 음반 제작에도 나섰다. 가수 김범수와 듀엣곡인 ‘남과 여’ 등 히트곡도 만들어냈다. 점차 음악시장이 대규모로 커지면서 자신의 업체를 접고 2006년 지앤지프로덕션 음반사업부 본부장으로 일하면서 인순이 등 가수의 매니저로 일했다.

▲가요계 여걸 “섹시함 포기 못하죠”

위 본부장은 ‘가요계 여걸’로 꼽힌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의 유일한 여성 이사이자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여성 매니저 중 유일한 20년차 이상 경력자다. 빼어난 미모와 말끔한 몸매를 가졌다고 ‘들이댔다간’ 큰코 다친다. 외양과 달리 가끔 거친 속어도 서슴지 않는다. 웬만한 남자도 그녀 앞에 서면 카리스마에 눌리고 만다. 그러나 위 본부장은 실상 자신도 천생 여자라고 쑥스러워한다.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밀어주는 게 어울리는 성격이란다. 원래 낯을 많이 가렸는데 ‘험한 가요판’에서 자신도 모르게 ‘터프 걸’이 됐단다. 국내 가요계 최대 행사인 드림콘서트가 열릴 때면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내로라하는 정치인·경제인을 만나는 의전담당으로 변모한다. 평소 ‘여의도 바닥’을 종횡무진하던 그녀만 기억하던 이들은 확 달라진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하기도 한다.

“여성으로 가요 매니저를 하는 게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 젊을 때는 집적거리는 남자들 내치느라 정신이 없었다니까. 배우 매니저할 때는 섬세한 여성의 성격도 필요하지만 가요 매니저는 순간마다 결정할 게 많아서 공격적인 면도 있어야 한다. 그 틈에서 20년 넘게 버텼다는 게 참 용하다 싶다.”

툭 내뱉는 말투 너머에는 구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슈어홀릭’ 여성의 스타일도 숨어 있다. 패션 소품 중에서도 유독 구두를 좋아한다. 마음에 드는 신발이면 같은 디자인으로 색깔별로 사들일 정도다. 한때 각양각색의 하이힐을 보관하느라 방의 한쪽 벽면을 신발장으로 꾸몄다. “섹시함과 여성스러움을 갖춘 하이힐은 패션을 완성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라고 평한다. 위 본부장이 신발에 꽂힌 이유는 어찌 보면 일 때문에 남성적으로 변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일 수 있다. 실제로 20년 넘은 옷을 최근에 꺼내 입고 한 유명 패션잡지의 화보 촬영에 나설 정도로 빼어난 ‘스타일리스트’다. “나를 오래 본 사람들은 이미지와 달리 여성스러운 매력을 잘 안다. 섹시함은 결코 포기하고 싶은 게 아니지 않나?”

▲“가요시장 분업화된 시스템 필요”

위 본부장은 현재 신예 그룹 타이니지,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스 오브 코리아’ 출신 샘쿠 등의 제작에 나섰다. 타이니지의 멤버 도희는 케이블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주인공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타이니지는 2일 정오 세 번째 싱글 ‘보고파’를 공개한 데 이어 3일 케이블채널 엠넷 ‘엠카운트다운’으로 복귀 무대를 가졌다. ‘보고파’는 김태우·인순이·레인보우 등을 프로듀싱한 레드로켓(Red Rocket)의 작품이다. “걸그룹 한 팀 만드는 게 웬만한 사업보다 더 힘들 거다. 뚝딱 만들어내는 줄 알지만 해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옛날에는 1인 사장시대였지만 지금은 혼자 못한다. 바이럴마케팅까지 해야 하니 분업화된 시스템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오래 남는 여성 매니저로 자리 잡고 싶은 것도 숨길 수 없는 꿈이다. 배우 분야에 여성 매니저가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가요 분야에 여성 매니저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위 본부장은 트렌드를 읽어내는 데 자신감이 있어 드라마·영화 OST 제작에 자신감을 느끼고 있다. 위 본부장은 혼자 모든 것을 꾸려가던 1인 사장시대를 끝내고 분야별 전문가를 모아 협업을 통해 의미 있는 가수를 키워내고 싶다. 양파·박선주·인순이 등 가창력 있는 여성 가수를 만나면서 자신만의 음악적인 취향도 갖게 됐다. “흔히 말하는 보컬리스트 취향이다. 퍼포먼스 아이돌보다 노래 잘하는 그룹도 키워내고 싶어요. 요즘에는 에일리같은 가수에게도 끌리더라.”

▲문 연 LP 바는 ‘힐링의 공간’으로 만들려

위 본부장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이유도 바로 자신의 음악에 대한 변화된 태도 덕분이다. 게리슨을 열기에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음악이 취미가 되어 마련한 공간. 이제 놀아보렵니다’라는 글로 자신의 변화를 공표했다. 일로 만나던 음악을, 취미로 만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마음의 위안을 찾게 됐고, 그 위안을 사람과 나누고 싶어졌다. 흔히 말하는 ‘힐링’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말로는 표현 못 해도 몸으로 알게 됐다.

“LP 바가 추억이나 향수를 판다, 그런 의도는 버리고 싶다. 순전히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음악을 듣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다시 말해 힐링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음악이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위 본부장은 대답 대신 얼마 전 남자 손님 두 명의 대화를 들려줬다. 한 명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나머지 한 명은 그 결혼을 앞둔 이의 고민을 듣고 있었다. 우연하게 들리는 목소리. “마음의 위안을 찾을 때는 술보다는 음악이다.” 위 본부장도 20년 남짓 음악을 일로서 만나다 마음으로 접하게 된 터라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위명희 본부장이 페이스북에 남긴 게리슨 인테리어 당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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