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적용 대상을 민간으로 확대할지를 두고 유통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현실화될 경우 고가의 선물을 선호하는 수요를 맞추지 못하게 돼 다가오는 추석 대목 장사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자영업자들은 특히 코로나19 장기화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으로 김영란법을 확대 적용한다면 ‘불난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라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 지난 3일 이마트 성수점에서 모델들이 ‘추석 언택트 사전예약’을 소개하고 있다.(사진=이마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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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업계에 따르면 유통업계는 올해 추석을 앞두고 출시한 선물 상품의 고가 비중을 작년보다 늘리는 추세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가 육류·수산물 선물의 냉장 비중을 냉동보다 늘리고 있는게 대표적인 사례다. 냉장은 신선식품이라서 냉동 제품보다 가격이 고가에 형성되는 게 보통이다. 이런 영향으로 작년 추석보다 10만원 이상 제품은 늘어나고 이하는 줄어들고 있다.
고가 선물 선호 현상은 코로나 19가 확산하면서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가족을 비롯해 서로 교류가 뜸해진 데 따른 아쉬움을 메우고자 하는 일종의 보상 심리가 고가 선물 구매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 앞서 올해 설에도 같은 현상을 확인했다. 이마트가 올해 설 선물 세트를 사전 예약 판매한 실적을 보면 가격대별로 10만~20만원은 129.1%, 20만원 이상은 46.8% 각각 전년보다 증가했다.
현재는 당시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해 올해 추석에도 교류가 원할하지 못할 것으로 보여 고가 선물 선호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주요 유통채널은 프리미엄 제품 비중을 전보다 늘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이런 계획이 틀어지고 해당 선물을 하려는 수요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20만원치 선물을 계획한 소비자가 10만원짜리 두 개를 구매하지는 않는다”며 “선물 상한이 정해지면 수요가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대형 유통 채널에서 판매가 부진하면 여파는 산지로까지 이어져 농가의 출하 계획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대형마트는 제품을 매입해서 재판매하는데 선물 수요가 줄면 제품 매입 규모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한발 물러서 민간 김영란법을 도입하더라도 선물 상한액은 재조정해야 한다는 요구도 따른다. 지난해부터 지속하는 코로나19로 물가 전반이 상승한 와중에 식료품 물가가 상대적으로 더 오른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물 상한이 현행대로 고정된 상태에서 제품을 꾸리면 작년 이맘때와 비교해 질이 하락할 수 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만족도가 하락하는 셈이다.
하태식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 위원장은 “돼지 사육 농가 사료 값이 올랐지만 김영란법에는 이런 사정이 반영돼 있지 않다”며 “민간에 김영란법을 적용하는 데 반대하지만 적어도 물가 상승분을 선물 상한에 반영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