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같은’ 바이오텍 경영 내려놓는 창업자들

제넥신·헬릭스미스 창업자들, 경영 일선 물러나 연구 집중
바이오텍 전문경영인 체제, 사업 효율 제고 측면에서 긍정적
SCM생명과학, 이병건 대표 선임 이후 M&A·투자 적극 추진
“혁신성 제고, 글로벌 지향 측면에서 전문경영체제 도입해야”
  • 등록 2021-07-15 오전 9:09:29

    수정 2021-07-15 오전 9:09:29

[이데일리 왕해나 기자] 국내 바이오 기업 창업자들이 십수년간 길러온 회사 경영을 내려놓고 있다. 그동안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경영모델은 창업자가 연구개발(R&D)은 물론 기업경영까지 맡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영일선에서 손을 떼고 R&D에 집중하고자 하는 창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성영철 제넥신(095700) 회장은 코로나19 백신 GX-19N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예정이라고 14일 밝혔다. 오는 9월1일까지는 현 체제를 유지하지만 이후로는 전문경영인(CEO)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성 회장은 전문 영역인 사이언스와 기술 개발에 집중, 미래먹거리가 될 코로나19 백신과 유전자 예방백신 원천기술 개발에 힘쓰겠다는 방침이다. 성 회장은 “제넥신이라는 사명을 정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연구개발에 집중할 것”이라며 “제넥신 뿐만 아니라 사회 국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성영철 제넥신 대표(왼쪽)와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사진=각 사)
김선영·유승신 헬릭스미스(084990) 대표도 지난 3월 경영에서 물러나 임상 및 연구에 매진할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주주총회 직전 전문경영인 후보자의 사임으로 외부 경영인을 영입하기 전까지만 대표이사직을 유지하게 됐다. 당시 김 대표는 “엔젠시스의 미국 임상 3-2상,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2a상, 샤르코마리투스병(CMT) 1·2a상을 차질없이 진행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데 힘쓰겠다”고 했다.

국내 바이오기업들은 대학교수나 연구자 등이 특정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해 경영까지 도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창업자들의 주요 기술이 기업 그 자체였다. 평생 연구에만 몰두해온 창업자들이 경영 측면에 미숙함을 보이는 경우도 종종 나타났다. 창업자들이 부진한 파이프라인을 구조조정하거나 사업적인 위험을 감당하는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때문에 최근 바이오 기업들은 창업자가 곧 CEO라는 공식에서 탈피해 적극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모습이다. 일찌감치 CEO를 영입한 SCM생명과학은 CEO 체제 성공사례로 꼽힌다. 송순욱 인하대 교수는 2014년 호미오세라피를 청산한 후 SCM생명과학을 다시 창업하면서 이병건 대표를 영입했다. 이 대표의 SCM생명과학 지분은 3% 남짓이었지만 송 교수는 경영에 대한 전권을 이 대표에 일임했다. 이 대표는 CEO 선임 이후 미국 코이뮨, 이탈리아 포뮬라 등을 인수하면서 파이프라인을 확대했고, SCM의 약자를 변경하면서 줄기세포에 국한됐던 이미지를 넓히는 등 과감한 혁신에 나섰다. 이는 SCM생명과학이 코스닥에 상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는 분석이다.

이 대표는 “바이오벤처 CEO들은 연구에도 참여하면서 경영 방향을 확립하고 투자 유치를 하는 것이 역할이다”라면서 “융합의 시대에 어느 기술이 자사의 기술과 시너지가 있을지 살피고 우리가 없는 기술이 요구된다면 과감하게 M&A를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줄기세포는 시장 형성에 시간이 걸리므로 길게 보자, 대신 면역세포회사를 인수해 파이프라인을 확대하자고 판단한 것”이라며 “독자 개발도 좋지만 라이센싱과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개발 속도를 올릴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전문경영인 체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일례로 mRNA 백신을 개발하며 미국 바이오벤처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떠오른 모더나는 2010년 설립 이후 2년 만에 스테판 방셀 CEO를 영입했다.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릴리와 비오메리으를 거친 그의 탁월한 경영능력은 모더나의 투자유치와 영업활동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원장은 “바이오 기업들은 혁신성이 요구되고 빠르게 성과를 내야 하며 전 세계 최초라는 키워드가 중요하고 글로벌 시장 접근성도 뛰어나야 한다”면서 “경영과 연구를 온전히 병행한다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바이오 기업들이 경영전담인 CEO와 기술전담인 최고기술책임자(CTO)의 각자 대표 형태로 책임감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기업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긍정적이며 앞으로도 확대되는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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