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 회장은 한국이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 스포츠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지도자로 이름을 알렸다.
이 회장이 스포츠와 본격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사대부고 재학시절이었다. 당시 레슬링 선수로 2년간 활동했고 1959년 전국대회에서 입상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고교 시절 맺어진 레슬링과의 인연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계속 이어졌다. 이 회장은 1982년 제21대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에 선출된 이후 1997년 IOC 위원에 선출돼 물러날 때까지 15년간 회장직을 맡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자유형 400m 예선에서 박태환이 실격 해프닝을 겪었을 때 마침 현장에 있던 이 회장이 탁월한 외교력을 발휘해 극적으로 상황을 반전시킨 일은 체육계의 유명한 일화다.
이 회장이 이끈 삼성그룹은 IOC와 올림픽 공식후원사로서 올림픽의 성공과 함께 했다. 올림픽 현장 곳곳에 이 회장과 삼성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도 직접 현장에서 발로 뛴 이 회장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이 회장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2011년 남아공 더반 IOC 총회까지 1년 반 동안 무려 11차례나 해외 출장을 다니며 유치활동을 벌였다. 날짜로는 170일이나 됐다..
특히 남다른 야구 사랑은 유명한 내용이다. 일본 와세대 대학 유학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다는 이 회장은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 당시 초대 구단주를 맡아 직접 구단 운영을 챙겼다.
이 회장이 구단을 이끌던 당시 1985년 삼성은 프로야구 최초로 미국 전지훈련을 떠났다. 최초의 2군 전용훈련장인 경산볼파크도 건립했다. 이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선진시스템을 일찌감치 구축한 삼성은 단숨에 명문구단으로 발돋움했다. 이는 곧 한국 야구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