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중국의 종말’의 저자 숀 레인 차이나 마켓리서치 그룹(CMR) 창립자 겸 매니징 디렉터는 변화하고 있는 중국을 강조했다. 경제가 고속성장을 거듭하면서 중국인의 삶과 문화는 말 그대로 하루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중국은 더 이상 값싼 노동자들의 땅이 아니다. 아이폰과 아르마니 셔츠에 열광하고, 건강과 환경문제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중국시장을 공략하려면 “중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먼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기본원칙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이데일리 ‘세계전략포럼 2013’ 참석차 방한은 레인은 지난 12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지난 15년간 세계 유수의 기업들에게 중국시장에 대한 효과적인 공략법을 조언해온 중국 경제와 비즈니스 전문가다. 중국 전문가답게 핵심 포인트는 단순하고 명쾌했다. 중국 사회와 문화의 변화에서 이에 따른 비즈니스 공략법까지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레인은 우선 중국 사회의 변화에 대해 강조했다. 경제 성장에 대한 낙관적인 믿음으로 미국인보다 오히려 더 소비를 즐기고, 잇단 환경사고를 접하면서 기본적인 삶과 인식도 바뀌고 있다.
레인은 “아직 중국 청년들을 저임금 노동자라고 경시하는 성향이 있다”면서 “중국 발전기에 태어난 80년대 이후 청년들은 중국 경제가 꾸준히 성장할 것이란 굳건한 믿음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6개월간 점심을 굶어 모은 돈으로 아이폰을 사고, 아르마니 셔츠를 사는 젊은층을 소개했다. 레인은 “그들은 저축을 하지 않고 월급을 모조리 소비하면서도 앞으로 내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에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30세 이하 중국인 회사원 5000명을 대상으로 소비생활을 조사했더니 저축률이 0%였다는 한 설문조사 결과도 예로 들었다.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명품에 대한 인식도 바꾸고 있다. 레인은 “중국은 세계 최대 명품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이제 남에게 과시할 수 있는 로고나 명품은 덜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대신 “깨끗한 공기와 물이 있는 곳에서 등산을 하거나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싶어 한다”면서 “한국을 여행하는 중국인들도 초창기에는 명품 매장을 기웃거렸지만 지금은 설악산 코스를 더 궁금해 한다”고 언급했다.
환경오염으로 떠오르는 산업이 또 있다. 바로 식품산업이다. 그는 “6살 난 아들을 둔 내 아내는 3개월에 한 번씩 한국에 들러 아이가 먹을 식료품을 구매한다”면서 “현지인들 역시 자국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특히 “자녀가 하나 뿐인 중국인들은 식료품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젊은 여성과 고소득층에 눈 돌리라
레인은 구체적인 중국시장 공략 해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특히 젊은 여성과 고소득층을 강조했다. 그는 “고령화 시대를 겨냥해 중국 노인들이나 중산층 공략법을 묻는 기업들이 많은데 이는 중국 사회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문화대혁명과 공산주의의 실패, 자본주의 도입 격동의 시대를 겪은 노년층은 국가로부터 복지 혜택을 받아본 적도 없고, 자국 경제에 대한 믿음도 없다”면서 “그래서 중국에서 저축률이 가장 높고, 돈을 쓰지 않는 세대”라고 전했다.
대신 젊은층의 부상 특히 젊은 여성의 소비 파워를 핵심 변수로 꼽았다
레인은 “중국 젊은 여성은 최근 소비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중국 여성하면 전족을 차고, 가부장제에 복종하며 자란 여성을 떠올리는 외국인이 많지만 현실은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현재 젊은 여성층은 남성보다 학력이 높고, 돈도 많을 뿐더러 결혼 비율도 낮아서 소비 파워가 대단하다는 설명이다.
중산층보다는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에 집중하라는 ‘모래시계’ 전략도 제시했다. 그는 “중국 중산층을 주된 공략대상으로 삼는 외국 기업들이 많은데 이 역시 잘못된 접근”이라며 “지난 10년 간 중산층의 임금상승률은 5%로 가장 낮았고, 따라서 소비 지출 의향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절대적인 금액은 크지 않지만 매년 월급이 20%씩 오르는 저소득층의 소비 여력이 훨씬 크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가격은 아주 비싸거나 아주 싸거나
모래시계 전략은 제품 가격을 결정할 때도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인의 소비 성향을 조사해 보니까 아예 비싸거나 아예 싼 제품을 산다”면서 중간 가격 브랜드들은 맥을 쓰지 못한다고 소개했다. 가령 갭(Gap) 청바지보단 차라리 구치나 게스 등 고가 제품을 사거나 아니면 유니클로 등 저가 제품으로 눈을 돌린다는 설명이다.
지난 15년 간 삼성과 LG 등을 상대로 컨설팅을 해왔다는 그는 한국 기업의 중국시장 진출 전략에 대해 “패션과 엔터테인먼트 등 소프트웨어 산업 위주로 공략하라”고 조언했다.
레인은 “한국은 이 부분에 있어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여러 번 언급했다. 우선 “중국은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다. 잇따른 영토 분쟁과 역사 망언 등으로 일본 물품 보이콧 운동이 꾸준히 반복되고 있다. 동시에 중국 사람들은 서구인에게 맞춰진 유럽이나 미국을 따라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아시아가 중국시장 공략에 있어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한국 패션이나 화장품 산업은 아시아적이면서도 세련돼 중국인의 선호도가 높다”면서 “드라마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같은 문화권이라 정서가 맞으면서도 중국이 가지지 못한 세련미와 특이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 중소기업 육성에 길이 있다
동아시아 경제를 전공한 레인은 한국 경제의 성장 전략에 대해선 ‘중소기업 육성’이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그의 결론은 박근혜 정부가 제시한 벤처·중소기업 육성, 더 나아가 경제 민주화 정책과 어느정도 일맥상통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가장 우려스러운 대목은 ‘재벌’로 불리는 소수의 대기업 집단”이라며 “거대 기업들이 독점적으로 시장 판로를 장악하는 등 균형을 깨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은 지난 30년간 고용의 70%가 50인 이하 사업장에서 나왔다”면서 “대표적 중소기업 강국인 독일처럼 작은 사업장이 여러 분야에서 힘을 발휘하는 경제가 더 유연하고, 저력이 있다”고 진단했다.
마지막으로 중국과 한국 기업의 협력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일본 아베노믹스는 ‘근시안적 돈 풀기 정책’이라고 비판한 그는 “일본의 인위적인 환율정책으로 중국과 한국 수출기업들이 고통 받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양국의 협력이 중요하다”면서 말을 마쳤다.
저자 숀 레인(SHAUN REIN)은
애플, 듀폰, KFC, 리치몬트 등 <포춘> 선정 500대 기업, 사모펀드, 헤지펀드를 대상으로 중국시장 자문을 해주는 상하이 소재 시장조사 기업 차이나마켓리서치그룹의 창립자이자 전무이사다. <포브스>와 <비즈니스위크>에서 리더십, 마케팅, 중국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으며, <월스트리트저널>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스> <타임> <뉴욕타임스> 등 세계 유수 잡지에도 활발히 기고하고 있다. 그가 매주 CNBC에 기고하는 중국 비즈니스 칼럼은 수백만 독자들이 읽는 인기 칼럼으로 유명하다. 블룸버그 TV, CNBC, CBS뉴스, CNN, NPR 등의 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출연하며 중국 경제 및 비즈니스 자문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맥길대학에서 동아시아학과 경제학 학사학위를,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중국 경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맥길대학 동아시아 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