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최근 논의되는 기업 구조조정 방안이 인력 감축과 조선소, 도크, 항만 등 자산 매각과 같은 단기적인 유동성 확보를 중심으로 한 기업 측 자구노력에만 국한되다 보니 ‘앞날을 보지 못하는 구조조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특히 조선업은 설계와 기술 인력 확보가 핵심이고 친환경 에코십(Eco-Ship) 등 우리나라만의 경쟁력을 갖춘 부문에선 숙련 노동자들의 이탈을 막고 연구개발(R&D) 투자를 오히려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지 않고서도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에 성공한 사례로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거론된다. GM사는 2009년 6월 완전자본잠식 상태에서 파산을 신청했지만 495억달러(57조원)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사를 살렸고 지난해에는 97억달러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6년 동안 단체행동을 자제하는 데 합의하고 숙련 노동자와 신입 노동자의 임금을 구분해 지급하는 이중임금 체계를 받아들이는 등 고통 분담에 동참했다. 대신 노조 대표 1명이 이사회 멤버로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서 자사의 주머니 사정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서 노사가 공멸이 아니라 상생의 방향으로 가는 길을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 사업주와 노동자에게 각종 지원 혜택을 부여하고 있고 울산 등 경남권 일부 지역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보다 더 적극적인 실업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핀란드는 국가대표 기업 노키아가 몰락하자 실직 위기에 처한 직원들을 스타트업·벤처기업에서 일할 수 있게끔 창업자금을 지원했다. IT업계에서 일해 온 직원들의 노하우와 기술력이 사장되지 않도록 또 다른 벤처 생태계를 육성한 것이다. 대기업에서 퇴직해도 자영업 전선에 나서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일각에서는 공익적 사모펀드(PEF)를 조성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부실기업을 인수, 기업의 고유한 가치는 물론 고용도 유지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도 있다. 우리 조선산업처럼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능력이 경쟁사보다 우수함에도 세계경제 위기 과정에서 설비 과잉을 조절하지 못해 부실에 빠지는 기업을 곧장 청산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이나 지역 내수경제, 실업 문제 등 더 큰 사회적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익적 사모펀드의 운영 주체는 성장사다리펀드 등 비슷한 공익적 사모펀드 운영 경험이 있는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중심이 될 수 있다. 육아와 노후에 대한 국가 지원이 필요하듯 기업의 태생기와 쇄락기에서도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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