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중·고교 6년간 반 1등 안놓친 모범생

22세에 悲運의 퍼스트 레이디… 이젠 ‘한국의 대처’ 꿈꿔
80년대초 은둔시절 신학대학원 다니기도
부친 서거 소식에 “전방은 어떤가요” 물어
야당 대표때 ‘재·보선 불패신화’ 이끌어
  • 등록 2007-06-12 오전 9:45:47

    수정 2007-06-12 오전 10:34:09



[조선일보 제공] 박근혜는 1952년 2월 2일 대구에서 박정희와 부인 육영수의 장녀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엔 ‘온순하고 침착하고 차근차근하며 실수가 별로 없음. 남에게 호감을 받으나 특정한 아동들과만 노는 습관이 있음’이라고 평가됐다. 이후 생활기록부엔 ‘자존심이 강한 어린이’(3학년) ‘약간 냉정한 감이 흐르는 편이며 굳게 다물어진 입가에는 위엄이 엿보임’(4학년)이라고도 적혀 있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때인 1966년 11월 박근혜 전 대표 가족의 단란한 한때. 왼쪽부터 박지만씨, 육영수 여사, 박 전 대통령, 박 전 대표, 박근영씨. 박근혜 후원회 제공

 
◆모범생의 길

아버지가 대통령에 당선된 1963년 2월부터 청와대에서 살았다. 1964년 입학한 성심여중 1학년 2학기부터 3학년 졸업할 때까지 반장을 맡았고 성적도 줄곧 반에서 1등이었다. 2학년 때 검사한 지능지수는 127이다. 성심여고에서도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반에서 1등이었다. 담임의 의견란엔 긍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지만 2학년 때 ‘단 하나 지나치게 어른스러움이 흠’, 3학년 때 ‘지나친 신중성 때문에 과묵한 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1967년 박정희 전 대통령 호주 방문 시 성심여고 재학 중이던 박근혜 전 대표가 공항 출국장에 부모님을 배웅 나왔던 모습.

1970년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등·하교 때 신촌 로터리에서 관용차를 타고 내린 뒤 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경호원들도 정문까지만 따르도록 했다. 박근혜가 없어져 경호실에 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박근혜는 다음 날 친구에게 “학교의 샛문으로 빠져나가 영화를 보고 왔다”고 했다. 친구들에 따르면 몇몇 남학생이 박근혜를 좋아하긴 했으나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다. 한번은 박근혜에게 “빵을 사달라”고 조르던 후배 남학생에게 경호원이 빵을 한아름 안기면서 “앞으로는 근혜에게 빵 사달라고 하지 말라”고 했다. 박근혜는 며칠 뒤 그 후배를 불러 “본의가 아니었다.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했다. “박정희 대통령 물러가라”고 데모하다 2학년 때 퇴교당한 같은 과 친구 성기철씨는 “근혜는 자유로운 대학생활은 하지 못했지만 남에 대한 배려심은 돋보였다”고 했다. 성씨의 어려운 처지를 전해 들은 박근혜는 어머니에게 부탁해 성씨가 취직하고 복교하는 데 도움을 줬다. 대학 4년 성적은 4점 만점에 3.82로 수석 졸업이었다. 

▲ 박근혜 전 대표가 서강대 재학 중일 당시 학과의 가장행렬행사에 참여했던 모습. 맨 오른쪽 화살표가 가리키는 이가 박 전 대표.
 
◆비운의 퍼스트레이디

프랑스 유학을 떠난 뒤 6개월 만인 74년 8월 15일 귀국 길에 올랐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서였다. 22세의 ‘퍼스트 레이디’는 향후 5년간 공식 행사에 참석하고 외국사절을 영접했다. 오전 7시30분 아버지의 아침상을 준비했고, 중앙정보부의 일일 특별보고를 아버지와 함께 읽으며 국사(國事)를 얘기했다. 1979년 김영삼 총재 제명 때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왜 국회의원 옷을 벗기느냐. 중앙정보부가 아버지가 쌓아온 업적을 부수고만 다닌다”고 비판했다고 한 청와대 인사는 증언했다. 박근혜는 1975년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최태민 목사와 만나 구국봉사단 일을 함께 시작했다. 중앙정보부는 최 목사를 뒷조사하고 그 결과를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1979년 10월 27일 새벽 2시 잠옷차림으로 깨어난 박근혜는 김계원 비서실장이 “각하가 서거하셨습니다”라고 하자 “전방의 상황은 어떻습니까”라고 말문을 열였다. 1979년 11월 청와대를 나서는 박근혜에게 P회장은 “한남동 저택으로 모시겠다”고 했다. 박근혜는 “제게 호화주택이 뭐 필요합니까”라며 부모가 살던 신당동 집으로 돌아왔다. 이삿짐은 트렁크 6개였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 집무실 등에서 9억원을 찾아 전달하자, 박근혜는 이 중 3억원을 수사 격려금조로 돌려줬다.

▲ 박근혜 전 대표가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던 당시 방한한 뉴질랜드 멀든 총리와 건배하는 모습.

◆은둔과 인고의 세월

박근혜는 1980년대 초 한 학기 동안 예장신학대학원을 다니다 그만두었다. 당시 일기(1981년 3월5일)엔 “자기를 은혜로이 돌보았지만 언제 어떻게 돌변하여 총을 겨눌지, 욕을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 찬 도시, 또 그러한 사람들이 영웅시되는 사회는 도덕이 바로 설 수 없다”고 돼 있다.

가슴속 슬픔을 삭이던 박근혜는 1988년 박정희 기념사업회를 발족했고 1989년엔 근화봉사단을 조직했다. 아버지를 기리는 ‘겨레의 지도자’라는 책도 냈다. 1989년 박정희 10주년 기념식을 성대히 치른 그녀는 “1989년은 수년간 맺혔던 한을 풀었다고 해도 좋을 한 해”(1989/12/30 일기)라고 썼다.

▲ 박근혜 전 대표의 성심여고 시절 학생기록부.
그러나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1990년 동생 근령을 지지하는 ‘숭모회’가 “어린이 회관 고문인 최태민 목사가 각종 전횡을 일삼는다”며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내놓으라고 하자 1992년 이사장직을 동생에게 물려줬다. 당시 일기엔 “그 많은 보람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가져다 준 고통과 슬픔이 너무나도 컸기에 고통스럽게 추억될 뿐”(1992년 5월21일자)라는 심정이 담겨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 추도식 때도 모습을 감췄다. “그 자리에 모인 분들과 마주치기 싫어서였다”고 추후 술회했다. 1992년부터 단전호흡을 시작한 박근혜는 서서히 내면의 평화를 찾기 시작했다. 1993년과 1995년엔 수필집을 냈다. “삶은 소중한 것이기에 한계가 있는 것이기에 이 세상에서 생을 허락받은 시간 동안 그 가치를 충분히 느끼고 그 기쁨을 만끽하고 그리고 후회 없이 마감해야 하는 것이다.”(1993년 6월24일 일기)

박근혜에게 남자는 미스터리다. 대졸 즈음 어머니가 구체적으로 혼담을 추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머니가 사망한 후 아버지와 주변에서 시집가라고 할 때마다 박근혜는 “안 하겠다”고 했다. 사촌오빠 박재홍 전 의원은 “청와대에 있을 때, 그리고 1980년대에 시집가라는 말만 꺼내면 근혜는 ‘그런 얘기 하려면 돌아가세요’라고 했다”고 전했다. 한 측근은 “박 전 대표가 맘에 두고 있었던 사람이 있었으나 그 남자가 다른 길을 택하면서 마음을 닫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청와대를 향한 도전

1998년 4월 재보선 때 대구 달성에서 당선돼 정치권에 진입했다. 2004년 봄 한나라당 대표를 맡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역풍으로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위기의 한나라당을 121석으로 만들었다. 2년4개월 동안 여당 대표 8명을 상대하며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연전연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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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프로필

1952.2.2 대구시 삼덕동 출생

64.2 장충국민학교 졸업

67.2 성심여중 졸업

70.2 성심여고 졸업

74.2 서강대 전자공학과 졸업

74~79 ‘퍼스트 레이디’ 대행

74~80 걸스카우트 명예총재

87 자유중국문화대 명예문학박사 학위

82~92 육영재단 이사장

〃 영남대 재단 이사장

93~現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94~2005.2 정수장학회 이사장

97.12 한나라당 입당

98~2000 제15대 국회의원(대구 달성 보궐선거)

2000~04 제16대 국회의원(대구 달성)

02.5~02.11 한국미래연합 대표운영위원

02.11~02.12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공동의장

03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

04.3~06.6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04.4~現 제17대 국회의원(대구 달성)

출생지: 대구시 중구 삼덕동 5-2

본적: 경상북도 구미시 상모동 171

혈액형: B형

신장: 162cm

체중: 비밀(허리-26인치 반)

종교: 무

가족관계: 동생 박근령, 박지만

취미: 산책

좋아하는 음식: 향토음식과 나물

싫어하는 음식: 다 잘 먹지만 기름진 음식은 별로

신체 비밀: 목에 어머니와 똑같은 곳에 점이 있다

성형수술을 한다면: 테러당한 상처 부위

즐겨 찾는 곳: 민속촌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 세 가지: 신뢰할 수 있나, 최선을 다하나, 진취적인가

가장 자신있는 요리는: 비빔밥

살면서 가장 고마웠던 사람: 부모님

꼴불견이라고 생각하는 것: 무책임하고 거짓말하는 사람

결혼은 언제쯤: 이미 나라와 결혼했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스 해소법: 단전호흡, 산책

살면서 가장 창피했던 적은: 글쎄… 최근엔 스타킹에 구멍이 났을 때

나의 패션: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 남들은 공주 패션이라 한다

자신이 잘하는 스포츠: 테니스, 탁구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은: 빌 게이츠

좌우명은: 바르고 현명하게 살자

가장 좋아하는 책은: 중국철학사

주량은: 소주 1잔. 4잔까지 마셔봤다

좋아하는 영단어: Courage

화났을 때 하는 행동은: 말을 안한다.

특이한 습관·버릇: 메모. 수첩공주 아시죠?

내 주위에서 이런 건 없어지면 좋겠다: 가난, 어린이 유괴, 성폭력

어린 시절의 꿈: 선생님

나의 라이벌은: 나

직업을 바꾼다면: 대학교수가 되고 싶다

요즘 받고 싶은 선물은: 지혜와 용기

생일날 어떻게 보내나: 동생들과 함께

존경하는 정치인(국내외 상관없이): 아버지, 대처

지금 가장 부러운 사람: 가족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

내가 보기에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다

지금 잃고 싶지 않은 것 세 가지: 건강, 싸이 1촌, 조카 세현이

애창곡: 천생연분(솔리드), 빙고(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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