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창용의 공간·공감]은마아파트와 오벨리스크 콤플렉스

  • 등록 2017-12-09 오후 12:00:21

    수정 2017-12-09 오후 12:00:21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제시한 ‘49층 계획안’.(사진=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 캡처)
지난 10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주민의견수렴 및 주민설명회를 안내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창용 Architects H2L 대표] 오벨리스크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와 함께 분묘의 기념비로 건립된 탑이다. 일명 방첨탑(方尖塔)이라고도 불린다. 대부분의 오벨리스크는 20~30m 사이로 알려져 있는데 고대인들에게 이같은 높이의 첨탑은 태양에 가장 가까운 지점이자 태양신의 권력 그 자체로 인식됐다. 이집트 문명의 상징 중 하나인 이 오벨리스크는 이후 대부분 유럽으로 약탈됐다. 결국 고대의 ‘힘’을 얻고 싶었던 새로운 세력들의 욕망, 그리고 앞선 문명을 짓밟고 빼앗은 권력이라는 ‘상징성’을 위한 전리품이었다.

이집트에서 시작된 ‘높이, 더 높이’는 중세를 거쳐 신을 위한 교회 첨탑으로 이어졌다. 이어 도시화가 진행된 이후에는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높이의 초고층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20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인간에게 높고 뾰족한 탑이 전달하는 감성은 고대와 현대가 일치하는 것이다. 혹자는 남근의 형태를 모방한 생명과 힘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혹자는 바벨탑과 연관지으며 우상의 숭배를 논하기도 한다. 건축적으로 인간이 높은 탑을 보며 갖게 되는 의식적 감성은 바뀌지 않았다. 현대의 마천루는 고대의 오벨리스크의 형태적·인식적 오마주(hommage)인 셈이다.

같은 듯 다른 이야기인 은마아파트 재건축을 들여다보자.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는 49층의 초고층 아파트로의 재건축을 꿈꾸며 끊임없이 서울시 건축위원회를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난달 중순 추진위가 제안한 ‘49층 계획안’을 들춰보지도 않았다. 심의 자체를 하지 않았다. 주거지역에서의 최고 층수는 35층이라는 기존 룰 안에서 다시 계획하라는 설명이다. 이같은 설명에도 은마아파트 조합은 기존 14층 높이의 4424가구를 49층 6054가구로 재건축하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이슈는 많은 의문을 낳게 한다. 은마는 무엇을 위해 ‘높이’를 꿈꿀까. 추측컨대 ‘사업성’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왜 한국의 아파트는 높아지면 값이 오르는 것일까. 단골 손님인 ‘조망권’을 거론할 수 있겠지만 ‘대치동’은 입지적 특성상 뛰어난 조망점을 찾기 어려운데다 35층 높이만해도 조망에 불리한 조건이라고 하기에는 주변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은 그리 높지 않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 왜 높아지면 값이 오르는 것일까. 기업의 사옥도, 독재자의 성전도 아닌 ‘집’임에도 말이다. 높아져야만 가격이 오르고 그 돈이 권력이 되기에 ‘집’조차도 마천루를 꿈꾸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우리는 오벨리스크 콤플렉스(obelisk complex)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은마의 욕망은 두가지 측면에서 우리사회의 왜곡을 보여준다. 우선 개념적 차원에서 우리 사회에서 집이 갖는 다양한 무형적 가치들이 철저히 무너져 있고 동시에 재화와 교환되는 대상으로 왜곡됐는지를 드러낸다. 이와 함께 실증적 차원에서 한국인의 삶이 비상식적 수준으로 얼마나 ‘부동산’에 잠식됐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집’은 가장 편안한 공간이자 우리의 삶의 정서들이 형성되는 세상에 하나뿐인 공간이다. 은마의 왜곡된 도전의 과정에서 엄마의 품과도 같은 집은 철저히 도구화된다. 그렇게 도구화된 ‘집’은 젊은이들과 희망과 신혼부부들의 꿈까지 발목 잡고 있다. 기성세대가 ‘거주’의 가치를 망각하고 ‘집’을 불로소득과 일확천금의 수단으로 보는 행태를 멈추지 않는 한 우리 후세대는 끊임없이 ‘집’에 발목을 내 주게 될 것이다.

현창용 Architects H2L 대표.
☞현창용 대표는?

- 현(現) Architects H2L 대표

- 현 중앙대학교 건축학부 겸임교수

- 건축사/건축학박사/미국 친환경기술사(LEED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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