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 팀장은 난감했다. 불모지인 이란에 온 지 벌써 보름째. 이대로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란 프로젝트에 공을 들인지 1년이 다 돼간다. 1년새 이란을 오가느라 여권만도 벌써 두 번이나 갈아치웠다.
경쟁사 가격을 우리에게 보여줄 정도면 우리 가격도 상대방에게 노출됐을 터. 수주에 대한 상식적인 룰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이대론 안되겠다'싶었다. 일단 시간을 벌기로 했다.
"본사와 연락한 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발주처의 문을 나서는 그는 발걸음은 무겁기만했다.
윤석원 두산중공업 워터(Water) BG장(전무)은 지난 2003년 발전BG 해외영업팀장이었다. 그에게는 이란 마프나 복합화력 발전 프로젝트용 발전설비 수주을 따내라는 특명이 내려져 있었다.
윤 전무는 "당시 이란은 정치적으로 혼란기였던데다 사회 네트워크가 전무한 상태였다"며 "그런 곳에서 수주를 한다는 것은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본사와의 전화는 커녕, 묵을 곳이 없어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기거했다. 발주처의 건물 수위부터 사장 비서까지 매일 한 바퀴씩 발주처를 돌며 정보를 수집했다. 당시 마프나社 직원중 '미스터 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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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무는 "결국 복합화력보일러 공급계약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던 당시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수주를 계기로 아직까지 이란을 비롯한 중동 발전시장에서 두산중공업은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에는 기술이 없어서 발주서류조차 낼 수가 없었다"며 "지금은 모든 기술을 갖추고 있어 참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두산중공업의 사업 영역은 크게 발전 부문과 물 부분으로 나뉜다. 윤 전무는 발전BG, 그 중에서도 해외영업쪽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룹 경영진은 그를 지난 9월 물사업을 담당하는 워터(Water) BG장에 승진·발령했다. 그만큼 그의 글로벌 경험과 추진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윤 전무는 "수(水)처리 사업은 두산중공업이 앞으로 개척해야 할 미래사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연말부터 물량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2~3년을 대비한 준비단계이 지금은 수처리 시장의 수준과 가격 등을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두산중공업은 미국 최대 수처리 엔지니어링 업체인 카롤로(Carollo)社와 기술협약을 맺어둔 상태다. 수처리관련 기술이 필요한 두산중공업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해외 네트워크가 필요했던 카롤로社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그는 "섣불리 시장에 뛰어들지 않고 충분히 분석한 이후 경쟁력을 갖춘 상태에서 시장에 진입할 예정"이라면서 "카롤로社와 공동입찰을 통해 중국, 인도, 중동 지역에서 조만간 수처리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수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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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현재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이미 세계 해수담수플랜트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두산중공업의 기술력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해수담수플랜트의 경우, 중동지역에서의 수요가 많은 탓에 유가 변동에 매우 민감하다. 유가가 오를 경우엔 대형인 MSF방식이, 유가가 떨어질 경우엔 RO방식이 유리하다. 이런 측면에서 두산중공업은 유가 변동과 상관없이 모든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한참 설명을 하던 윤 전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광펜을 손에 쥐고는 자신의 방 한쪽에 걸린 세계 지도를 가리켰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또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모두가 우리의 시장입니다". 그가 가리킨 곳은 한국의 동해안부터 중국 해안가와 동남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의 서쪽 해안 모두와 아프리카 서쪽 해안 등 결과적으로 전세계 모든 지역이었다.
그는 "최근 칠레 산티아고, 미국 마이애미, 중국 베이징 등에 지사를 설립했다"며 "전략지역에 책임자를 파견, 현지시장 공략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임 워터BG장으로서의 포부를 물었다. 윤 전무는 "두산중공업 직원들은 야생 습성에 이미 길들여져 있다"며 "발전사업과 물사업 모두 선진국과 경쟁해야 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성장한 만큼 두산중공업의 성장 DNA는 매우 강하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 1위를 유지하되 내실을 갖춘 세계 1위를 하고 싶다"면서 "RO사업과 수처리사업에서도 향후 세계 1위를 달성함은 물론, 두산중공업의 물사업을 안정적으로 육성해 '두산=워터'의 이미지를 세계 시장에 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