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증권시장부장] 기업 구조조정이 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금융위원장부터 경제부총리는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연일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기업들의 체내(體內)에서 자라고 있는 악성 종양이 얼마나 곪아있는지, 또 이를 제거해 기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나 빠듯한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본다면 조선과 해운업종에 대한 경고음은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지난 2009년부터 심심찮게 제기됐던 게 사실입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않은 계속된 투자로 인해 이들 업종에서는 고질적인 공급과잉이 이어졌고 2009년부터 조선사들의 수주와 해운업체들의 물동량 급감이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경기가 살아난 것도 잠시, 또다시 2012년부터 업황이 악화됐고 급기야 금융당국까지 나서 “자산을 매각하면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라”고 주문했지만 해당 기업들은 머지 않아 경기가 살아날 것이란 막연한 기대로 버텼습니다.
누구나 건강에 이상신호가 있을 때면 먹는 음식부터 조절합니다. 그리곤 귀찮아도 꾸준히 운동도 하면서 군살을 줄이고 체력도 키웁니다. 필요하다면 병원에 가서 의사로부터 처방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내 조선사와 해운사들에게는 해당되는 사항이 없습니다. 이들이 선제적인 구조조정에 얼마나 게을렀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조선·해운업종과 함께 우리 정부가 가장 시급한 구조조정 대상인 5대 경기민감업종으로 꼽은 철강, 석유화학, 건설업종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이제 중환자가 된 기업들에게 남은 것은 과감한 외과수술 뿐입니다. 신속한 구조조정이 절실한 때입니다. 물론 앞으로 부실해질 우려가 있는 산업을 찾아내 상시 구조조정에 나서는 노력도 병행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기업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입니다. 기업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함으로써 건강에 이상이 있는지 파악하는 진단이야말로 환자에게 식이요법과 운동요법만 권하면 될지, 아니면 약(藥)을 쓸지, 최악의 경우 수술을 할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사실 부실 기업이 법정관리나 부도로 간다면 기업의 내부사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만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이나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으로 갈 경우엔 해당 기업 정보는 주채권은행과 금융당국 사이에서만 공유될 수 밖에 없습니다. 채권단과 당국, 기업이 밀실에 앉아 힘 겨루기와 여론 향배, 정치적 고려 등으로 구조조정을 좌우해선 안될 일입니다.
특히 새로운 기업구조조정촉진법 하에서 손실을 분담해야 하는 이해당사자 범위가 대폭 확대된 만큼 보다 정확한 정보의 공유는 이해관계를 원만하게 조정해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고 선의의 피해자도 미연에 막을 수 있는 길입니다. 이번 제23회 이데일리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 결과만 봐도 우리 신용평가사들의 역량이나 그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얼마나 커졌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활한 정보 공유를 통해 신평사들이 적절하게 부실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조정하고 그에 맞춰 시장 주도로 구조조정 방식을 정하는 일이 절실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