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관물대 속엔 스킨과 로션뿐 아니라 자외선차단제와 보디로션, 얼굴을 하얗게 해주는 화이트닝 에센스까지, 화장품을 3~4개씩 갖춘 장병들도 있다.
♣ 야전(野戰) 훈련을 떠나기 전, 서너 명의 병사들이 얼굴에 바르는 ‘위장크림’ 대신 여성 색조화장품인 ‘아이섀도’를 꺼내 들었다. 군대에서 보급하는 위장크림을 얼굴에 발랐다가 피부가 거칠어진 경험을 한 병사들이 위장크림으로 아이섀도를 쓰는 것이다.
대한민국 군인들이 예뻐지고 있다. 거친 피부, 거무튀튀한 얼굴, 짤막한 스포츠 머리 등 ‘전형적인 군인’의 모습은 신세대 장병의 자랑거리가 아니다. 여성 못지 않게 화장품을 쓰고, 외박이나 휴가 때 사용할 가발을 단체 주문해 쓰는가 하면, ‘몸짱’이 되기 위해 근육강화제를 사는 병사들까지 생겨났다. 최근 젊은층 사이에 유행인 ‘완소남(완전 소중한 남자)’ 열풍이 젊은 사병들까지 번진 것이다.
◆화장품은 종류별로, 가발은 단체 주문
강원도 한 부대에서 근무하는 한모(21) 병장은 한 달에 목욕 용품과 화장품에 투자하는 돈이 평균 11만원에 이른다. 샴푸와 린스는 기본이고 스킨, 로션, 자외선차단제, 에센스, 폼클렌저까지 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여드름 전용 화장품’까지 사서 쓰다 보니 돈이 더 든다. 겨울에는 손과 발의 건조를 막기 위해 핸드크림과 풋크림까지 썼다. 제대를 2개월 앞둔 한 병장의 월급은 8만원 정도. 월급으로는 모자라 가족이 부쳐주거나 휴가 나가서 받은 용돈으로 화장품을 산다. 한 병장은 “군대 와서 얼굴이 검어지고 피부가 거칠어져 걱정인데 휴가 때 여자친구 만나려면 관리해야 한다”며 “나뿐만 아니라 자기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2~3개 정도 쓰는 동료들이 많다”고 말했다.
‘화장하는’ 병사들이 늘면서 군대 매점의 화장품 매출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전국의 군대 매점 1100여 곳에 화장품을 공급하는 ㈜아모레퍼시픽은 올 1~7월 군대 매출액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85%나 급증했다. 공군부대와 해군부대 30여 곳에서 점포를 운영해오던 화장품 업체 ‘미샤’도 군대 매출이 예상보다 크자 올해에는 육군 2100여개 부대 매점에도 화장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미샤 홍보팀 이혜영 대리는 “군부대 매출이 매달 평균 15%씩 늘고 있다”며 “최근엔 얼굴에 수분을 공급하는 마스크 팩이 가장 인기제품”이라고 말했다.
휴가 때 가발을 쓰는 장병도 늘고 있다. 광주에서 군생활을 하는 지모(22) 병장은 최근 휴가를 앞두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영화배우 이준기 스타일의 가발을 샀다. 이 병장은 “우리 부대에서 나 말고도 3~4명이 더 가발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발 전문 인터넷쇼핑몰 ‘퍼니위그’ 권경순(32) 팀장은 ““최근 강원도 춘천의 한 군부대에서 가발 10개를 단체로 주문 받고 직접 배송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신세대 장병들의 이런 ‘외모 가꾸기 열풍’에 대해서는 군 내에서 우려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특수부대 한 장교는 “젊은 사병들이 단체생활의 규율과 군대라는 특수상황을 참고 견디기보다 외모에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갖고 개인을 중시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육군 모사단의 한 영관급 장교는 “이런 현상은 군인뿐 아니라 전체 젊은 남성들의 트렌드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고 했다. 그는 “대대장 시절 신세대 장병들의 이런 변화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여 행군을 나서기 전 피부가 약한 병사들에겐 자외선 차단 로션을 직접 사서 발라주기도 했다”며 “그 뒤 병사들이 훈련에 더욱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