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에서 중1 딸 아이를 키우는 이모(43)씨는 요즘 아이와 밤마다 전쟁을 치르고 있다. 교육용으로 지급된 태블릿PC 때문. 딸 아이는 새벽에도 몰래 스마트기기를 사용한다. 교육용 스마트기기는 교육용 외에는 사용하지 못하게 설정돼 있지만, 디지털기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청소년들은 이를 우회해 게임 등으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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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교육용 태블릿·노트북PC인 ‘디벗(디지털 벗)’을 2025년까지 서울시내 전체 중·고등학생에게 보급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학부모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스마트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큰 상황에서 ‘교육용’이란 명목으로 교육청이 태블릿·노트북PC를 무료로 나눠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조 교육감의 ‘디벗’ 확대 보급에 일부 학부모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이들은 아이들의 스마트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과의존위험군 비율은 37%로 전 연령대에서 최대치를 차지했다. 원격수업이 장기화되면서 스마트기기에 대한 의존율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학부모들은 교육청에 스마트기기 사용 제한을 요구하는 민원을 넣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양천구에서 중1 아들을 키우고 있는 김모(47)씨는 “개인 휴대전화도 관리하기 어려웠는데 디벗은 더 관리가 안된다”며 “아이에게서 스마트기기를 뺏고 싶어도 사춘기여서 오히려 반감만 생길까 전전긍긍하는 상태다. (학교가) 아이에게 스마트기기만 주고 관리를 하지 않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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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학생들은 이러한 시스템을 쉽게 무력화시켜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포털사이트에 ‘디벗 게임 설치’ 등 검색어를 설정하면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방법이 수없이 많이 나온다. 서초구에서 중1 아들은 키우는 유모(45)씨는 “아이들에게 교육 목적으로 쓰기로 약속하고 이런 시스템만 설치해놓는다고 제대로 관리가 되겠는가”며 “아이가 밤에 몰래 유튜브를 보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 엄마들은 아이가 음란 동영상을 보는 장면도 목격했다”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스마트기기를 개인이 계속 가지게 하는 것은 수업시간에만 활용하면 활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예습·복습에만 기기를 사용토록 하고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박 교수는 “학생·학부모·교사가 함께 스마트기기 활용 수칙 등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업시간에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들에게 처벌을 내리듯 스마트기기에도 이런 원칙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스마트기기 사용내역을 조사하고 음란 사이트 등 비교육 목적으로 사용했을 경우 이를 지도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