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겉모습은 하나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쉽게 ‘하나’라는 단어를 붙이기가 망설여진다. 세계에서 드물게 단일 민족이 한반도라는 좁은 땅에서 살고 있지만 소득과 세대, 이념 차에 따라 각기 다른 극단의 삶을 살고 있어서다. 소득, 세대, 지역간 격차가 각종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나아가 안정적인 경제 성장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소통’과 ‘사회통합’에 대한 인식은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최저 생계비 직업군 67개..심화되는 빈부격차
민간 어린이집 교사 2년 차인 김모(30)씨는 매월 세금을 제하고 120만 원을 조금 넘게 받는다. 정부가 정한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163만 원)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몸이 아픈 부모와과 대학에 다니는 동생 뒷바라지를 하다 보면 외식 한번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김씨는 “결혼, 출산, 교육 등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워크넷’ 조사에 따르면 김씨와 같이 연봉이 2000만 원 이하인 직업이 전체 784개 중 67개(8.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택시운전사, 텔레마케터, 경비원 등이 이런 직업군에 해당한다.
이런 저임금 근로자는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최근 금융감독원과 국세청이 2012년 기준으로 연말정산 신청자를 분석한 결과 총급여 3000만 원 이하 근로자는 2008년 976만9210명에서 2012년 1016만159명으로 4년 만에 4.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고임금 근로자도 늘고 있다. 총급여가 1억 원이 넘는 근로자는 2008년 19만4939명에서 2012년 41만5475명으로 늘었다. 전체 연말정산 신청자의 2.6%다. 중간층이 갈수록 줄면서 소득구조가 양극화하고 있는 것이다.
끊어진 ‘교육사다리’..빈곤의 대물림 고착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주부 이모(45)씨는 매월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200만 원에 이른다. 영어·수학 등 4과목 학원비 110만 원에 용돈, 교재비, 휴대폰비 등을 포함한 금액이다. 저소득층의 한 달 월급이다. 이런 ‘자본’ 투입으로 사립초중학교, 외국어고등학교, 일류대(유학)로 이어지는 엘리트 교육 사다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실제 올해 초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연간 가계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5분위(상위 20%) 가구의 월평균 교육비 지출액은 50만4300원으로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 7만6600원의 6.58배에 달했다. 소득 수준별 월평균 교육비 지출액을 비교하면 2분위(하위 20~40%) 20만1800원, 3분위(40~60%) 25만 8700원, 4분위(60~80%) 37만5700원 등으로 소득이 높을수록 교육비로 더 많은 돈을 썼다.
세대 전쟁 ‘밥그릇 쟁탈전’으로 확전
세대간 갈등은 정서적 충돌을 넘어 경제적 충돌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1970~1980년대 고도성장의 과실을 챙겼던 기성세대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저성장·저고용 시대의 직격탄을 맞은 20·30세대와의 갈등이 본격화하는 것이다.
정년 연장, 일자리, 국민연금, 부동산 집값 등을 두고 세대 간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엇갈리고 있다. 기성세대는 핵심 자산인 집값이 오르길 바라고, ‘2030세대’는 떨어지길 원한다.
정년연장을 두고서도 늘어난 수명만큼 일을 더 하길 원하는 중년 세대와 이를 ‘일자리 빼앗기’로 여기는 젋은 세대 간의 인식차도 크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작년 말 발표한 ‘정년 연장과 기업 인사 체계에 대한 근로자 인식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44.2%가 ‘정년 60세 법제화 이후 세대 갈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50대 이상의 답변(16.1%)에 불과했다.
조성배 사회갈등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국사회는 지난 100년간 극심한 변화를 겪으면서 각 세대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경험과 공감대가 너무 달라 이념 갈등, 세대갈등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정부가 소통을 통해 적극적인 신뢰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극화의 고착화..한국사회 발전 걸림돌
갈라진 사회를 단박에 통합할 순 없다. 그렇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격차는 더 벌어지고, ‘업그레드 코리아’는 요원하다. 박명호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가 올초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통합지수는 OECD 31개 회원국 가운데 하위권인 24위에 머물렀다. 지난 1995년 21위였던 순위는 2000년 22위, 2005년 24위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010년 기준으로 산출한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도 0.72를 기록해 종교분쟁을 겪고 있는 터키를 제외하고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았다.
격차해소의 첫 단추는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격차의 원인을 해소하려는 노력보다는 격차만 부각시켜 갈등을 부추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소득계층은 물론이고 노사, 지역, 세대 간 갈등이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가운데 정치권에 의해 이 같은 갈등이 더욱 조장되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사회통합을 우리나라가 재도약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로 꼽고 있다. 카이스트(KAIST) 미래전략대학원이 지난달 3일 발표한 정치인과 언론인, 교육자, 기업인, 공무원 등 국내 오피니언 리더들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장의 한계 원인으로 경제 민주화와 복지 및 분배, 남북분단 등 사회통합 요인을 꼽은 비율이 무려 60%에 이르렀다. 기술 혁신과 인적자원, 자본 등 성장 동력(27%)이나 성장 패러다임(9%), 환경문제(4%) 등을 압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