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윤수은 기자]
“광해군이 죽어서 어디에 묻혔는지 아세요?”
며칠 전 지인과 지상파 사극에 대해 이야기했다. 광해의 생애에 대한 지인의 질문에 “글쎄요, 인조반정으로 폐위되고 강화에 있다가 제주도에서 여생을 마감한 걸로 알고 있는데…”하고 머뭇거렸다. 그는 양평 가는 쪽에 광해의 묘가 있었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네이버로 검색하니 광해군의 묘는 남양주에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의 광해군에 열광하면서도 정작 역사에 기록된 광해군에 대해선 모르는 게 더 많았다.
| 2012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주연 이병헌 사진 가운데)가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이후 지상파 사극은 광해군을 다각도로 비추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MBC ‘불의 여신 정이’ 광해군 역 이상윤, KBS ‘왕의 얼굴’ 서인국,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화정’ 차승원과 KBS ‘징비록’의 노영학 사진=이데일리DB, 방송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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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후 지상파 사극은 광해군을 다각도로 비추기 시작했다. 같은 해 대선을 앞두고 개봉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한 이후다. 광해군은 MBC ‘불의 여신 정이’에서 조선 최초 여자 사기장과 신분을 초월한 로맨스를 펼쳤다. KBS ‘왕의 얼굴’에선 16년간 세자시절의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왕위에 오른 ‘성장형 인간’의 모습을 보여줬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MBC ‘화정’의 광해군은 주연급 조연이다. 여기서는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계모를 서궁에 가두고 이복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폭군으로 등장한다. 반면 KBS ‘징비록‘에선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전쟁을 통솔하며 진정한 왕의 길을 꿈꾸는 세자로 나온다.
실제로 광해군은 세자시절 임진왜란이라는 큰 전쟁을 치렀고 수습에 애썼다. 왕위에 오른 뒤에는 대동법을 시행해 민생 회복에 주력했다. 명이 쇠락하고 후금이 강성해지는 대륙(중국)의 정세를 읽고 어느 쪽에도 치우지지 않은 실리외교를 펼쳤다. 그는 성군이라 평가받을 자질이 충분했지만 반정으로 폐위되고 폭군의 누명을 써야했다. 대략 살펴보아도 광해군의 생애는 드라마틱한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점이 사학계에서의 재평가와 영화의 흥행과 맞물려 TV에서 일대 유행을 일으키고 있다. ‘광해붐’이라 할 만하다.
지상파 사극에서 ‘광해붐’이 일고 있는 이유가 단지 이야기 소재로서 적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광해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와 극중에서의 모습에서 21세기 한국정치에 던지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바로 ‘이상적인 정치지도자에 대한 갈망’이다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이 극도로 치달을수록, 이 난관을 해결할 길을 제시해줄 새로운 리더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광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기성 정치의 구태의연함을 깨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칠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미디어를 통해 투사된 결과가 아닐까? 미디어는 결코 대중이 바라지 않는 것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사극은 현재를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한꺼풀 벗기고 들여다보면 과거를 다룬다는 식으로 우회하면서 오늘날 시청자가 처한 현실 이야기를 하는 걸 눈치 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의 역사가 E.H.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언을 남겼다. 광해군은 패륜과 부덕을 명분으로 내세운 반정세력에 의해 폐위됐다. 하지만 정작 반정의 주역인 서인들은 정치에서 자신들의 무능함을 드러내고 말았다. 서인들의 무능함은 국가를 두 차례나 전란(정묘호란·병자호란)에 휩쓸리게 만들었다. 명분을 내세우며 유능한 군주를 몰아낸 서인들과 이념 논쟁으로 분쟁만 일으키며 민생을 소홀히 하는 지금의 정치권의 모습은 400년이 지나도 다르지 않다. 한 시대의 문화는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욕망과 의지를 담기 마련이다. 지상파 사극의 광해 열풍 이면에는 현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가 배어있을지 모른다는 점을 가벼이 넘겨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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