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레스토랑, 재즈는 처마를 타고 입맛은 분위기를 타고

  • 등록 2007-01-18 오후 12:29:00

    수정 2007-01-18 오후 12:29:00

[조선일보 제공] 대들보 아래로 흐르는 재즈를 들으며 먹는 샌드위치 맛은 어떨까. 처마 사이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즐기는 와인 한잔은 더 향기롭지 않을까. 한옥을 직접 수리해 이사할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다. 대신 인심 넉넉한 이들이 세련된 식당으로 꾸민 한옥 레스토랑을 찾아 숨쉬는 나무의 멋을 즐겨보자. ‘우리의 집’에서 먹는 요리는 먼 나라 음식인데도 정겹게 느껴진다.

재즈가 흐르는 한옥에서 샌드위치 한 입- 레써피

18평짜리 ‘미니’ 한옥을 개조해 만든 이탈리안 레스토랑 ‘레써피(Recipe)’. “친한 친구 불러 맛있는 음식을 나눌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는 주인 신경숙(37)씨의 바람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다. 신씨는 “레스토랑을 준비하던 2003년 당시 한옥만 고집하려던 건 아니었다”고 했다. 사는 곳과 가까운 광화문 부근에 자신의 뜻과 맞는 안정감 있는 집을 찾으러 다니다 우연히 한옥을 접한 후 어린 시절 서울 정릉의 할머니 집에 놀러 갔을 때 ‘참새 날아다니던 처마 끝 하늘 풍경’이 계속 아른거렸다. 향수에 젖어 한옥을 덜컥 계약하고 나서는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참신함'을 위해 한옥 공사 경험이 없는 업체에 시공을 맡겼으나, 이 업체는 2개월 만에 두 손을 들었다. 할 수 없이 신씨와 도시공학을 전공한 남편 장민수(41)씨가 직접 나섰다. 한옥에는 문외한이었던 부부는 관련 서적을 밤새 읽어가며 직접 공사를 ‘진두지휘’ 했다. 나무 상태를 살펴 남길 것과 버릴 것을 골라내고 지붕을 다시 얹고 상한 나무를 새 것으로 바꾸는 등 공사에만 꼬박 1년이 걸렸다.

‘레써피’의 특징은 두 사람이 겨우 일할 만한 작은 ‘오픈 키친(open kitchen)’이다. 신씨는 “따로 주방을 마련할 공간이 없는 탓이지만, 가정집처럼 요리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미니 주방이 맘에 쏙 든다”고 했다. 위로 향한 간접 조명과 구불구불한 대들보 덕분에 손님들도 이 공간에선 마음을 놓는다. 주인이 바빠 보이면 먹고 난 음식을 주방에 갖다 줄 때도 있고 새로 선보인 메뉴에 어울리는 소스를 사와 “한 번 넣어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밤이면 나직한 재즈 선율이 진공관 앰프를 거쳐 울퉁불퉁한 천장을 가만가만 휘감는다. 신씨는 “물받이를 하지 않아 비 오는 날이면 처마 끝에서 바닥까지 ‘비 커튼’이 쳐진다”며 “처마 사이로 보이는 풍경을 즐기기 위해 정원 쪽 벽을 모두 트고 통유리를 댔다”고 했다. 바로 앞에 위치한 2층 주택이 하늘을 반쯤 가리운 것이 아쉽다. 

햄과 ‘그뤼에르’ 치즈를 넣은 레써피 샌드위치 8900원, 고추냉이와 새우, 루콜라가 들어간 새우 고추냉이 샌드위치 9900원, 안심스테이크 2만8000원, 샐러드·수프·전채·디저트를 곁들인 저녁 코스는 4만3000원이다. 매일 아침 새로 장을 봐 그날 치의 재료를 준비하기 때문에 저녁 코스는 하루 전에 주문해야 한다. 테이블 3개, 좌석은 15석이 전부이므로 예약은 필수. (02)736-7301 www.bestrecipe.co.kr

골격은 그대로, 소품과 요리는 ‘컨템포러리’-오키친

“한옥의 가장 큰 장점은 아름다우면서도 편안한 멋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테리어가 화려한 청담동 일부 식당들처럼 손님을 주눅들게 하지 않죠.” 미국 뉴욕서 요리사로 활동하다 2001년 귀국해 ‘오정미 푸드아트 인스티튜트(연구소)’를 운영하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오정미(45), 스스무 요나구니(57)씨 부부는 지난해 11월 서울 가회동에 레스토랑 ‘오키친’을 열었다. 연구소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직접 실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아울러 손님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합리적인 레스토랑을 만들자는 욕심도 있었다.

원래 옷 가게로 쓰였던 2층 한옥을 빌려 부부가 레스토랑으로 직접 꾸몄다. 대들보와 서까래 표면이 거칠고 비뚤어져 오히려 정감이 갔다. 노란 비닐 장판이 깔려있던 바닥은 마루로 바꾸고 알록달록한 꽃 벽지는 뜯어낸 후 흰 페인트를 칠했다. 의자, 테이블 접시 등은 연구소에서 쓰던 것을 갖다 놓아 새것이 주는 어색함을 피했다.


▲ 오키친

창문에 말린 나뭇잎을 붙이고 부부와 학생들이 음식을 주제로 제작한 커다란 액자를 걸어 현대적 감각을 더했다. 깃털과 철제 등으로 이뤄진 조명도 최대한 현대적인 것으로 골랐다.

오씨는 “연구소 학생들이 서빙을 하기 때문에 전문 웨이터·웨이트리스처럼 서비스가 똑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때문에 레스토랑은 이 같은 풋풋함을 이해해줄 수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회원제로 운영한다. 인터넷이나 레스토랑에서 가입 신청할 수 있고 회비는 없다.

오징어먹물 링귀니 1만4000원, 로스트 호박과 파마산 크리스피를 곁들인 샐러드 8000원, 그날그날 바뀌는 코스 요리(칠판에 ‘오늘의 메뉴’가 적혀 있다.) 3만5000~4만5000원선, 직접 볶은 커피로 내린 에스프레소 3500원. (02)744-6420 www.ofoodart.com

와인 저장고가 있는 통유리 한옥- 카델루포

서울 효자동 ‘카델루포(CA’ DEL LUPO)’에 들어서니 작은 칠판에 분필로 쓴 문구가 손님을 맞았다. ‘나는 와인으로부터 자연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와인으로부터 기다리는 미덕을 배울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손님은 소박하고 예쁘장한 한옥에서 와인을 음미할 수 있어 좋다.

‘카델루포’는 이탈리아어로 ‘늑대의 집’. 이빛나(34) 사장은 이를 ‘행운이 깃든 집’으로 풀어 해석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늑대’를 안 좋은 뜻으로 일컫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늑대는 아주 똑똑하고 의리 있는 동물이에요. 이탈리아에서는 행운을 상징하죠.”
 

▲ 서울 효자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카델루포’. 

원래 갤러리였던 건물은 20평 남짓. 바닥 벽면 기둥 등 기본 바탕은 그냥 두고 인테리어만 바꿨다. 커다란 와인 저장고가 한쪽 벽면, 낡은 피아노가 또 다른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피아노는 실력만 된다면 누구나 연주할 수 있다. 한쪽 창에는 가로로 긴 흰색 블라인드를 드리웠는데, 나무 골격과 의외로 잘 어우러진다. 테이블은 단 6개, 한 지붕 아래 식사를 하다 보면 어느새 모두 친구가 된 듯한 기분이다.

봄이 되면 작은 정원에 허브를 가득 심는다. 요리에 넣는 것이 주 목적이지만, 손님이 원한다면 따가도록 그냥 둔다. 마당 건너 별채에는 테이블 하나만 놓여 있어, 프러포즈용으로 인기다. 이씨는 “한옥이 감싸고 있는 아늑한 뜰이 가장 마음에 든다”며 “침대 생활을 하다가도 피곤해지면 더운 바닥에 등을 대고 싶은 것처럼, 한국 사람은 본능적으로 한옥에 끌리는 것 같다”고 했다. 해물 스파게티, 새우 들어간 크림 파스타 등 각종 파스타 1만3000~2만원, 런치 코스는 생선 2만7000원, 안심 스테이크 3만5000원, 디너 코스는 5만원(안심이나 연어 중 선택), 6만5000원(양갈비나 왕새우 중 선택). (02)734-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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