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스트레이팅은 시장이 주는 일종의 알람이다. SRE 자문위원들은 신용평가사가 워스트레이팅에 오른 기업들을 좀 더 꼼꼼하게 살펴 발 빠르게 신용등급에 위험요소를 반영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지난 9회 SRE에 이름을 올린 STX는 14회부터 지금까지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SRE를 통해 지속적으로 경고가 이뤄진 셈이다. 결국 지난 4월 STX조선해양은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했고, STX건설은 PF보증사업장 부실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사실 STX조선해양의 자율협약은 이미 예견돼 있었다. 지난 4월 SRE 설문 당시 시장참여자들은 STX조선해양에 대해 투자적격 등급인 ‘BBB’ 자격이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자율협약 신청 후 STX 계열사의 신용등급은 일제히 투기등급으로 강등됐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14회 SRE에 처음 등장한 후 17회까지 워스트레이팅에 포함됐다. 16회 SRE 이후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가 한진중공업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내렸음에도 여전히 고평가 지적이 많다는 얘기다.
현대상선·동국제강도 ‘우려’
지난 16회 SRE에서 5위에 머물렀던 현대그룹은 그룹의 ‘가장’인 현대상선의 실적 부진으로 1위까지 올랐다. 현대상선은 차입금이 크게 늘면서 금융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게다가 올해 만기도래 회사채 4800억원을 비롯해 연내 갚아야 할 단기성 차입금이 1조원을 넘는다. 반면 현대상선의 지난해 말 현금성 자산은 6000억원에 그치고 있다.
16회 SRE에서 10%의 표를 받았던 동국제강은 철강업황 부진 외 큰 이슈가 없었는데도 반년 만에 1위 그룹에 포함됐다. 건설과 조선업에 쓰이는 철강제품을 생산하다 보니 불황이 전이됐다는 평가다. 후판의 원료가 되는 슬라브 생산설비 투자에 나서면서 부채비율이 크게 높아진 탓도 있다.
두산중공업·대성산업의 ‘딜레마’
이번 설문에선 두산그룹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두산건설은 이미 2010년 워스트레이팅 1위로 꼽힌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엔 두산건설(15표)보다 두산중공업과 인프라코어(16표)에 대한 의구심이 눈에 띄게 커졌다.
건설과 중공업의 표를 합치면 31표에 달해 공동 1위 기업들을 제외하곤 가장 많았다. 두산그룹의 두산건설 지원 의지는 확인했지만, 두산건설의 리스크가 두산중공업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성산업은 디큐브시티의 수렁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16회 SRE에서 ‘제2의 웅진’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대성산업은 위기의 주범인 디큐브시티 사업을 거의 토해내기로 했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랭했다.
15표로 지난 회보다 표수는 많이 줄었지만 대성산업의 신용등급이 이미 한단계 하락했음을 감안하면 여전히 많은 몰표를 받았다는 평가다. 시장에선 현금창출처가 뚜렷하지 않은 만큼 자산매각 등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