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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요즘 같이 숨이 턱턱 막히는 더운 날, 시원한 탄산 음료나 얼음을 잔뜩 띄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생각만 해도 더위가 가시는 듯합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체인 얼음이 어떻게 액체인 물 위에 뜨는 걸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과학 선생님이 비슷한 말씀을 했던 것 같습니다. 물은 고체인 얼음이 되면 부피가 커지기 때문에 가벼워져서 물 위에 뜬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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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얼음이 되면서 부피가 커지고 그래서 가벼워진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신기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생활 속에서 늘 보는 현상이라 당연하다고 여겼죠.
하지만 지구 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물질은 고체가 되면 부피가 작아져 무거워집니다. 고체가 액체보다 가벼운 물질은 물이 거의 유일합니다. 얼음이 물보다 가벼운 현상은 과학의 눈으로 보면 신기함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물이 지구 상의 다른 물질처럼 얼음이 되면서 부피가 작아져 물보다 무거워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물론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이 생뚱맞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 보면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는 상당히 차원 높은 명제에 다다르게 된답니다.
우리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 바로 지금부터 얼음이 더 이상 물 위에 뜨지 않고 물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러면 우선 커피 위에 떠 있던 얼음이 컵 바닥에 깔리겠네요. 처음 보는 광경이라 신기하긴 하겠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시원한 맛을 즐기는 데는 차이가 없고 우리는 곧 익숙해질 겁니다.
이 현상이 자연 속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겨울에 강과 호수가 얼면서 얼음이 생기면 얼음은 물 위에 떠 있지 않고 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할 겁니다. 겨울이 깊어지면서 날씨가 더 추워지면 호수와 강바닥에는 점점 더 많은 얼음이 쌓이기 시작하겠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강과 호수는 큰 얼음 덩어리로 변해 물속에 사는 모든 생물은 얼음 속에 갇혀 죽게 될 겁니다. 결국 물고기와 같이 물속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단 한 번의 겨울을 지나고 나면 모두 죽게 되는 거죠.
물 속에 사는 생물만 생명에 위험을 느끼는 건 아닙니다. 북극곰과 펭귄처럼 얼음 위에서 사는 생물도 삶의 터전을 잃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현실로 돌아오겠습니다. 테이블 위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은 물 위에 떠 있나요? 다행스럽게도 방금 전에 상상했던 끔찍한 일은 지구상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겨울철 얼음이 생기면 물 위에 뜨게 되고 이 얼음은 물을 덮어주는 덮개 역할을 합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 얼음 두께도 점점 두꺼워져 차가운 공기를 차단하는 보온재 기능을 하게 됩니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져도 얼음의 보온 기능 덕분에 얼음 아래 물은 얼지 않습니다. 얼음 아래 물 속에서 사는 생물도 얼음 위에서 사는 생물도 안전하게 겨울을 날 수 있게 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불편하게 느끼는 이 현상도 자연 속에서는 꼭 필요한 기능입니다. 큰 바위가 작은 돌멩이를 거쳐 보드라운 흙이 되는 풍화 현상이 바로 물이 얼음이 될 때 부피가 커지는 현상 때문에 가능합니다.
틈 사이에 스며든 물이 얼어 팽창하면서 큰 바위는 깨져 작은 바위가 되고 작은 바위는 자갈로, 자갈은 모래를 거쳐 결국 흙이 됩니다. 물이 얼면서 팽창하지 않았다면 보드라운 흙은 만들어질 수 없고 다양한 식물은 볼 수 없었을 겁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안에 담긴 얼음을 보면서 잠시 이런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요?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곰곰이 생각하면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최종수 연구위원(박사·기술사)은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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